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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아이작이 큰 야망을 품고 부엘(아이작이 살았던 지역)을 떠날 때와 친한 친구 포가 중간에서 아이작을 배웅하기 위해 동행할 때까지만 해도 ‘십대의 도전과 반항을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유의 소설이면 당연히 등장하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기대했었고, 책의 두께로 보아 적어도 5건 이상의 에피소드가 나올거라 예상했다.
나의 방식대로라면 첫 번째 에피소드는 산업화의 녹(rust)인 폐쇄된 철광소 건물 안에서 일어났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 들어간 아이작과 포는 부랑배인 세 명의 남자와 다투게 되고 그 와중에 아이작은 칼로 목이 눌려진 채 잡혀 있는 포를 구하기 위해 공장에 버려진 베어링을 던져 그 중 한 명을 죽이게 된다. 이 대목에 이르러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류의 재미와 웃음을 기대한 나의 소설읽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형사 해리스의 등장과 더불어 다시 나의 소설읽기는 범죄 스릴러로 초점이 맞춰졌다. 살인의 주범인 아이작은 집에 들렀다가 사건이 불거지자 다시 집을 떠났고 포는 자신의 풋볼 점프를 현장에 두고 오는 바람에 체포되어 수감된다. 이쯤이면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형이라든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위해 갚힌 친구의 누명을 풀어주는 영웅적 인물형을 통한 감동적인 우정 앤(and) 범죄 스릴러의 전개는 당연한 듯 보이게 마련이다.
범죄 스릴러라면 당연히 CSI에서의 치밀한 범죄현장조사를 통한 기상천외한 과학수사와 셜록 홈즈의 놀라운 통찰력, 논리를 뛰어넘는 기발함이 등장하여 독자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하고 인물과 인물이 내뿜는 물고 물리면서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전개는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아메리칸 러스트’에는 눈을 닦고 코를 비벼 씻고 봐도 비범의 ‘비’자에 가까운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소설읽기의 두 번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고 이런 평범한 비(非)영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하려했는가라는 작가의 심중을 다시 훑기 시작했다.
꽤 분량이 많은(545쪽) 소설인지라 어떤 이야기로 이 많은 지면을 채울까 궁금해 하면서 계속 읽었다. 플롯은 단순하였다.
① 가출하던 중에 살인을 저지른 두 친구 ② 한 친구는 감옥에 잡혀가고 다른 한 친구는 또다시 가출하여 도망침 ③ 주인공 아이작의 아버지와 불행한 결혼생활 중인 누나(포와 애인 사이), 주인공 포의 어머니와 포의 어머니와 연정 사이인 해리스 형사반장 등의 인물들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이는 행동을 각자 이름을 소제목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대단원은 포를 구하기 위해 목격자인 부랑자 2명을 해리스가 몰래 해치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포는 조만간 감옥에서 풀려날 것이고 자수를 하려 온 아이작은 해리스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났으니 멀리 떠나라는 말을 듣고 경찰서를 나선다.
경제붕괴의 여파로 경제활동의 어려움을 겪는 등장인물들의 몸과 마음에 ‘녹’이 슬고 필연적인 결과로 서로간의 비정상적인 애증(愛憎)이 과장 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소설이자 모험소설이나 스릴러소설이 아닌 인간의 속성을 차분하게 파헤친 환경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치열한 내면의 모습을 차분히 그려낸 소설이었다.
나의 소설읽기의 마지막 유형은 ‘나와 너의 인생 이야기’이자 ‘끈적끈적한 인간굴레’의 속성을 갖춘 ‘(소시민의) 심리소설’류로 귀착하였다. 1910~20년대 영국문학을 풍미한 ‘의식의 흐름‘과 같은 집요하고 복잡한 심리보다는 밀란 쿤데라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보여준 인물들의 가벼운 심리를 잠시 엿보았다.
인물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해리스 형사반장이었다. 포의 엄마인 그레이스와 애정을 나누면서 가식이 아닌 진심을 내보이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진정으로 그레이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그는 범죄현장에서 포를 본 목격자를 처치한다. 이 장면에서 그를 통해 나는 구원자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정의를 찾아보기 힘든 현대사회에서 ‘정의의 사나이’를 보는 듯하였다. 아쉬운 점은 해리스와 아이작의 아버지인 헨리 잉글리시를 좀더 깊이 탐구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은 한 사회의 번영과 몰락을 동시에 보았고 현재 사회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입증할 수 있는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필립 마이어의 첫 장편소설을 읽고 앞으로 더 진화할 그의 소설이 기대되었다. 내일도 태양이 뜬다는 간단한 진리의 수준을 넘어 내일의 태양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드러낼까라는 흥분된 기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