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지은이: 클레어 키건 /홍한별 옮김
출판: 다산책방
출간일: 초판 48쇄 발행 2024년 3월 20일
가격: 13,800원
저자 소개: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따.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용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이릇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디건>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2021년 출간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소설부문)을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라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재 아일랜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영화로 제장 중이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첫 문장)
'1985년 아일랜드 작은 도시에 사는 빌 펄롱'과 주변 사람들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24)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만약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22쪽)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펄롱은 엄마가 열여섯 살 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미시즈 윌슨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시내에서 몇 마일 떨어진 큰 집에 혼자 사는 개신교도였는데, 펄롱 엄마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미시즈 윌슨은 엄마를 그 집에서 지내며 일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고 또한 엄마가 죽고 나서도 미시즈 윌슨은 그를 학교 공부도 시켜주고 돌봐 주었다.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른 채,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을 부양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펄롱은 그럴수록 조용히 버티고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 하겠다는 생각으로 쳇바퀴 도는듯한 생활이지만 열심히 해 나간다. 그는 야적장에서 석탄이나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 등을 팔았다. 펄롱의 일상은 매일 똑 같았다. 그는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29). 가끔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하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는 가끔 생각했다.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룽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기술학교에서 나와 여름에 버섯 공장에서 일하던 때가 떠올랐다. 출근 첫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버섯을 땄음에도 손이 더뎌 다른 사람들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마침내 라인 끝에 다다랐을 때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멈춰 작업을 시작한 지점을 돌아보았는데, 거기에서 벌써 새끼버섯이 배양토를 뚫고 올라오는 걸 보고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여름 내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44쪽)
매일 쳇바퀴 돌듯 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멈추어 서서 생각해 볼 시간도 없이 나날이 똑같은 일의 반복되는 일상...'새끼버섯이 배양토를 뚫고 올라오는 걸 보고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반복되겠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는 펄롱의 마음이 공감이 간다. 쉴 새 없이 그의 일상은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석탄을 갖다 주기 위해 수녀원을 방문했다가 펄롱은 석탄광 안에 여자아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조용하지만 결코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 음습한 수녀원에서 창고에 갇혀 있던 소녀를 다시 수녀원장한테 되돌려 주고 나왔지만, 석연치 않았고, 여자애를 내버려두고 나온것이 위선자 같아서 괴로워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로,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게 착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학대에서 눈을 돌리고 산다. 비리를 알면서도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봐 모른 척 하고 살아간다. 펄롱에게도 그 일에 말려들지 말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펄롱은 만약에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하고 생각했고, 미시즈 윌슨이 그의 엄마를 구해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여기 있다고 생각에 미친다. 결국 펄롱은 여자애를 구해내기로 작정하고 수녀원으로 향한다. 그는 앞으로 그 일로 말미암아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하고 또 겪어야 하는지 두려움으로 내다보았지만, 결심을 바꾸지 않고 시행한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펄롱이 기운을 돋웠다. "조금만 가면 집이야."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날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120~121쪽)
펄롱이 어느 날, 수녀원 앞에 갔다가 빠져 나오던 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며 길을 찾아헤매다가 한 노인에게 길을 물었을 때, 노인은 이렇게 말했었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54쪽). 어두운 숲속 좁은 길에 염소 옆에서 죽은 엉겅퀴를 낫으로 베고 있던 노인...그는 왜 거기 있었을까. 소설을 다시 읽으며 문득 이 노인이 마치 심판대 앞에 선 예수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로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자네가 책임지는 걸세'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120~쪽)
남의 불행을 모르는 척하고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 나와 내 가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위를 위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비방과 비난의 시선을 감수하고서라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하고 선택하는 펄롱. 미시즈 윌슨이 그의 엄마를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펄롱은 자신의 엄마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선뜻 받아주었던 미시즈 윌슨이 있었기에, 펄롱의 엄마도, 아버지도, 그리고 펄롱의 현재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나는 펄롱이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가 문득 문득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 데서, 바삐 돌아가는 버섯 공장에서 일하다가도 '잠시 멈춰'(44) 생각하던 버릇,생각의 힘이(?) 불의를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고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과 같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거대한 힘 앞에서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있는 선택을 하는 주인공 펄롱...! 소설은 독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소설은 간결한 문장, 빠른 전개로 금방 읽어지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용은 짧지만 함축과 암시로 가득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소설은 독자에게 묻는다. 최악의 상황이 이제 시작되리란 걸 내다보면서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꼭 해야 할 일, 도와야 할 일 앞에서 그대는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 묻는 것 같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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