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홍승민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누가복음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더불어 필라델피아 근교에 위치한 브니엘 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교회를 섬기면서 여러 신학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누가복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저자가 목회 현장에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설교하기 위해 고민하는 상황 속에서 나온 책이 바로 ‘누가복음 묵상’이다. 그래서인지 학문적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누가복음의 진리를 묵상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용어를 사용한다. 하나는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이란 단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완결적(Christotelic)’이란 단어이다. 먼저 ‘그리스도 중심적’이란 모든 성경의 내용, 특히 이 책의 본문이 되는 누가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리스도 완결적’이란 성경의 모든 계시가 점진적으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완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두 가지 성경신학적 관점과 역사 문법적 주해를 바탕으로 누가복음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데 관심이 있는 목회자나 신학생, 더 나아가 누가복음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이 책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독자 스스로 누가복음 본문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질문이나 궁금한 점을 다루면서, 독자 스스로 누가복음을 탐구하도록 이끄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누가복음 속에 나온 예수님의 삶과 사역, 고난과 부활이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모아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하신 구원 역사의 완성이자 중심임을 깨닫도록 돕는 책이다. 


한 가지 개인적인 팁, 이 책의 활용 방법을 제시한다면. 가장 먼저 책에 정해진 누가복음의 본문을 2~3회 천천히 읽는 것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4~5회 정도 정독하면 더욱 좋다. 그런 다음에 ‘본문 이해와 목상을 돕는 질문들’에 먼저 답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질문에 스스로 답을 적어보았다면, 그 다름은 나머지 내용들(문맥과 요약, 해설, 묵상)을 다시 천천히 읽는 것이다. 그러면 저자의 성실한 안내와 도움을 더 풍성하게 맛보고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누가복음의 중심 주제와 흐름을 따라 그리스도를 더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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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묵상
이강택 지음 / 감은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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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술적인 주석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묵상집도 아니다. 이 책은 독자가 마가복음을 스스로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며, 특히 ‘새 창조의 신학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관점에서 마가복음 전체를 조명하며 세부적인 내용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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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묵상
이강택 지음 / 감은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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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책의 집필자를 살펴보면, 이 책의 저자 이강택 목사는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복음서)으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그리고 국세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봉직했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세인트루이스 한인장로교회의 목사로 목회와 함께 모교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저자의 상황은 책의 특징과 그대로 연결이 된다. 이 책은 학술적인 주석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묵상집도 아니다. 이 책은 독자가 마가복음을 스스로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며, 특히 ‘새 창조의 신학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관점에서 마가복음 전체를 조명하며 세부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러므로 이 책은 목회자의 설교 준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일반 교인들의 성경공부에도 유익하다.


각 단락은 다섯 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① 문약과 요약 : 전후 문맥을 짚어주고 요약하여 내용을 쉽게 파악하도록 한다. ② 해설 : 분몬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한다. ③ 묵상 : 본문을 바탕으로 한 묵상 내용을 담고 있다. ④ 질문 : 본문 이해와 묵상을 돕는 질문을 제시한다. ⑤ 기도 : 말씀 묵상 후 기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시 말하지만 저자가 복음서의 성경해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므로 다루는 내용이 절대 가볍지 않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마가복음 전체를 숲과 나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묵상을 하다 보면 나무 하나하나에 몰두하게 되어 숲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목회자에게도, 성경을 사랑하는 일반 성도들에게도 흔하게 발견된다. 각 단락의 본문의 내용과 전체 메시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본 책은 각 단락을 깊이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다.


두 번째는 마가복음을 새 창조라는 관점으로 마가복음 전체를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내용과 비슷한 말이겠지만, 복음서와 같은 긴 책들을 읽고 묵상하고 자세히 공부하다가 자주 하게 되는 실수는, 그 과정들을 통해서 발견된 귀한 보석들(진리들)을 하나로 꿰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묵상이라는 이름으로 본문을 조각 내 버린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특히 새 창조라는 관점으로 마가복음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두 가지의 특징을 생각해 본다면, 개인적으로 목회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새벽 기도용으로 사용해도 좋을듯하고, 개인 성경연구용으로 하루에 한 단락씩 본문 연구를 하는데 가이드북으로 애용해도 좋을듯하다. 물론 마가복음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 싶은 성도들에게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특히 ‘본문 이해와 묵상을 돕는 질문들’을 잘 사용하면 개인뿐만 아니라 소그룹 안에서도 풍성한 나눔과 교제가 가능할 것이다. 마가복음을 더 깊이 새롭게 살펴보고 묵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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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을 위한 독서 - 책은 어떻게 교회와 이웃의 번영을 돕는가
C. 크리스토퍼 스미스 지음, 홍정환 옮김 / 죠이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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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의 특징(혹은 사명)을 두 가지로 말하라고 한다면 첫째는 ‘철저한 개인 구원’이고, 둘째는 ‘외적인 교회 성장’이다. 전자는 구원을 지극히 개인의 문제로 전락 시켰고, 후자는 지역 사회와 단절된 게토화된 ‘그들만의 교회’를 만들었다. 이것을 사회적인 맥락으로 표현을 바꾸면 ‘개인 구원’은 ‘자기 개발’이이 되고, ‘교회 성장’은 ‘세속적인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의 유일한 목표이고, 이 세상은 죄로 인해 완전히 망가졌으며(회생 불가능), 창조 신앙을 강조하긴 하지만 이 세상은 예수의 재림과 동시에 불타서 없어질 것이라고 가르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함몰되어 있다면, 이 책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깨어진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화해’나 ‘소명’, ‘제자도’와 ‘번영’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분에게는 너무 심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문제점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이런 관점이 없다면 이 책에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혹시나 책의 부제에 들어간 유혹적인 단어 - ‘번영’ 때문에 이 책을 펼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번영은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과연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이런 책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성경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서들을 읽음으로서 개인을 뛰어넘어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대안적인 공동체로 지역사회 속에서 화해와 번영을 이루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코로나 이후 붕괴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며, 교회 공동체는 ’왜’ 그리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사람에게, 신선하면서도 묵직한 도전과 제안을 던지는 책이다. 단순히 어떤 프로그램으로 이해하지 말고, 저자가 오랜 몸부림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책의 구성을 간단히 소개하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장과 2장, 마지막 9장은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3장과 4장은 독서와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나머지 5장, 6장, 7장, 8장은 독서하는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서 배움과 실천을 이루어갈 수 있는를 소개하고 있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곳곳에서 ‘아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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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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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도 겨울 선교단체에서 사역할 달동안 이집트에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책으로만 잠시 배웠던 콥틱 정교회를 제대로 접하게 되었고, 그들 안에 짧은 기독교 역사를 가진 한국 목사가 헤아릴 없는 어마어마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감으로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가교회의 입구에 알렉산드리아 주교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데, 1 주교가 마가였으며, 20 주교가 오늘 책의 저자인 아타나시우스였다. 그렇게 보면 한국 기독교는 이백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콥틱 정교회의 역사는 이천 년이 되어간다


더욱이 이집트가 이슬람화 되면서 그들이 박은 핍박과 순교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앞에서 내가 느낀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동방보다는 서방 기독교의 역사를 주로 배워왔고, 종교개혁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기 때문에 초기부터 동방 기독교가 어떤 역사적 배경과 문화, 전통 안에서 그들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 왔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들을 판단하고 심지어 정죄까지 한다. 어떤 목사들은 구교가 이단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한다. 구교가 이단이면 신교인 우리는 무엇인가


#2


가장 먼저 책의 저자인 아타나시우스에 대해서 잠시 살펴봐야할 것이다. 그의 출생년도는 정확하지 않은데 290년대 중후반인 같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아주 젊은 나이(30)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뭐가 대단하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알렉산드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대단했다.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 안에 가지 학파가 존재했는데, 안디옥 학파와 서방 학파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였다. 더욱이 그리스나 로마에 버금가는 학문과 사상과 종교가 한데 어울러지는 곳이 알렉산드리아였기에, 그런 젊은 나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는 것은 신앙과 학문과 실력 면에서 출중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아타나시우스가 남긴 업적은 가지로 요약할 있다. 첫째는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관련된 것인데, 로마 황제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던 아리우스파들과의 논쟁을 통해서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성경의 정경화 과정, 특히 신약 27권의 목록을 처음 확립한 사람이 아타나시우스였다는 것은 그의 가장 공로 중의 하나이다. 마지막 셋째는 46 동안 알렉산드리아 주교로 있으면서 아리우스파들의 반대로 다섯 번이나 추방과 도피생활을 하게 되는데(그것을 합치면 17년이다), 기간 동안 이집트 사막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인 안토니와 교제하게 되고, 그에 대한 책을 집필함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것이다


#3


이런 저자의 배경을 알고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읽는다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책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창조와 타락, 2~3장은 하나님의 딜레마와 해법인 성육신에 대하여, 4~5장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6~8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논박함, 마지막 9장은 결론이다. 먼저 아타나시우스는 말씀이 인간이 되신 일과 인간들 가운데 신적으로 나타나신 일에 대하여 변증하기 전에, 말씀을 통한 창조와 인간이 처한 곤경 타락에 대해여 설명한다. 이것이 먼저 설명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말씀이 인간이 되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아 본성을 잃고 죽어서 썩게 되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문제, 사망의 법이 창조된 인간을 압도함으로 벗어날 없는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는 이것을 하나님의 딜레마라고 표현한다. 무형이고 썩지 않으며 비물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구체적으로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인간은 물질적인 존재이기에 땅의 것들을 통해서 전능자를 찾는다. 타락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결과 땅의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게 되었다. 하지만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인간에게 오심으로 우상 숭배는 폐지되고 하나님을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아타나시우스는 말한다


#4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죽을 밖에 없는 존재이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말씀이 인간 가운데 거하신 것이다. 말씀이신 분은 자신을 죽일 수가 없기에, 죽을 있는 몸을 취하셔서, 인간을 대신해 자신의 몸을 바치심으로 율법의 정죄는 종식되었고 죽음은 () 돌아가게 되었다. 나아가 이런 죽음의 중요한 목적은 몸의 부활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부활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말씀께서 내주하신 몸이 죽은 것은 본질적으로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구주의 권능으로 몸에서 죽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명백히 드러났다.” 결과 인간은 죽음을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어서 아타나시우스는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이방인들의 조롱에 대해서 반박한다. 이들은 모두 말씀이 인간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불신앙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성경 특히 구약의 여러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셨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임을 증명하고 반박한다. 이어서 이방인의 조롱을 다룬다. 이들은 여러 가지 논리적 근거들을 가지고 조물주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아타나시우스는 책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여 점을 하나 하나 거론하며 길게 논박한다. 특히 성육신의 진리가 가져온 결과(이방인의 가운데) 강조하면서 그들의 조롱을 반박한다


#5


교회사와 교리사를 공부할 아리우스, 아타나시우스, 삼위일체 논쟁, 니케아 공의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본질, 단성론 등은 초기 교회의 역사와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들이었다. 지금 뒤돌아 보면 이해도 되지않는 내용들과 단어들을 달달 외워가며 공부했고 시험을 치루었다. 그들은 그렇게 논쟁을 했으며, 이것이 지금 우리들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하거나 적용점을 모색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냥 신학생이라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상식 정도로 배우고 끝났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다시 이름도 생소한 아타나시우스의 책을 직접 읽으면서 지난 시간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머리 아픈 신학적 논쟁들을 배경으로 하고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솔직히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책은 너무도 쉽고 평이했다. 복잡한 신학적 용어들이 난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접한 삼위일체 논쟁에 대한 2, 3차의 자료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고 오히려 마음을 뜨겁게 하는 내용이 많았다. 더욱이 치밀하게 논증하고 당시 사람들의 주장들을 반박하는 글을 통해서 어느 신학자보다 진리에 대한, 말씀으로 오신 주님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느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책은 머리만 시원하게 하는 책이 아니라 가슴까지도 뜨겁게 해준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우리가 믿는 진리를 어떻게 변증하고 전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이집트에서 오감으로 콥틱 교회를 체험하며, 그들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 부끄러웠고, 그들의 있는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고 전수하기 위해서 어떤 삶의 발자취를 밟았는지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통해서도 내가 얼마나 기독교 역사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우리가 가진 기독교 유산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모르고 있었음에 부끄럽고 창피하다. 더불어 지금 내가 있는 시대에 복음과 진리를 어떻게 변증하고 전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영성을 가지고 글을 있는 사람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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