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 초반 지식인에 대한 동경에 목말라 있을 때 홍세화작가의 “빠리의 택시 운전기사”를 읽고 그의 지성과 소신에 감동했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한 똘레랑스는 지금까지 내 삶의 부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생각의 좌표는 홍세화 작가의 작품으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몇 년 전에 이 책을 읽고 나에게 질문이 시작되었다.
왜 지금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지금 2017년, 다시 이 책을 읽었다.
지금의 나는 생각의 좌표의 주인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또다시 질문 하게 된다.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여전히 나를 각성 시킨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작가가 이야기한 그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나의 생각에 주체성를 가질려고 하고 작은 행동이 시작되면 무엇이든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칠때쯤 그의 다른 문장이 다시 나를 깨운다.
p205~206
“인간을 사랑하는 한,
인간의 삶을 사랑하는 한,
인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그들에게서 인간 정서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 정서를 침묵케 한 잘못된 의식화 때문이며,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성실과 겸손과 끈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라는 점을.
나아가 이 시대의 과제는 의식을 깨우는 데 있다기보다는 잘못된 의식 주입에 의해
억압된 인간 정서를 해방시키는 데 있다는 점을.”
보잘것없는 미물도 성장하려면 허물을 벗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도 스스로 허물을 벗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장해나가야겠다고 새삼 결심해 본다.
그리고 역사는 아주 더디고 지루하게 조금씩 바뀐다는 저자의 말이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쉽게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변화에 언제까지 나의 작은 행동들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지는 요즘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변화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삶인가에 대한 선택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p238)
내가 선택한 삶이 인간이기에 지킬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말이
지금의 나에겐 그 무엇보다 힘이 된다..
p.15~16 따라서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자기성찰의 출발점이다......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가.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가진 생각을 나 역시 앞으로도 계속 고집할 텐데 대체 바뀔 가능성이 없는 나의 생각은 어떻게 내것이 되었을까?"라고.
18세기 프랑스의 교육철학자 콩도르세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으로 나누었다. 이는 다시 내 식대로 적용해보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를 물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왜냐하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라고 물을 때 자기 새각이 바꿀 가능성이 그나마 열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는,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남기 때문이다.
p69 사람은 회의하는, 즉 의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동물이다. 왜라는 질문을 가져야 마땅하다.
p80 진보 의식의 성숙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과정이어야 한다.
p131 볼테르의 말처럼 우리들의 부싯돌은 부딪혀야 빛이 난다. 서로 다른 견해가 표현되어 부딪힐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p203 말하자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희생을 무릅쓰면서 어렵게 싸워 왔는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나? 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래도 그들 덕분에 이나마 올 수 있었다. 라고 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