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새시대 큰인물 12
햇살과나무꾼 지음, 김형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개혁을 꿈꾼 과학자 정약용

햇살과 나무꾼과 글 / 김형관 그림

주니어랜덤

 

 큰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남양주 조안면의 다산 유적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29345&cid=42856&categoryId=42856 로 문학캠프를 진행하는데, 독서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고 왔다. 다산 정약용의 시문학을 집중 탐구하겠다고 하는데, 너무 무지하면 부끄러울 듯 싶어서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고 가려고 아이들이 예전에 보던 책을 집어 들었다~ 이미 8월에 25명 이하의 참가 학생 선정을 완료하고,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 다산 정약용의 시 탐구 및 발표 수업을 3차에 걸쳐 마쳤다고 한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며 조정의 요직을 지낸 정치가요, 거중기를 만든 과학자인 정약용(1762~183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4491 은 5백 권의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남긴 저술가이자 학자 등으로 두루 유명한 인물이지만, 그 시 만으로도 일가를 이룬 출중한 시인이기도 하다. 다산이 살았던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는 변화와 혼란의 시기로 부패한 조선 후기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여러 방면에 걸쳐 연구하였고, 5백 여권의 책을 썼으며, 여러 기계를 만들기도 했던 사람. 그러나 당쟁에 희생되어 귀양살이를 하며 어려운 삶을 살았던 사람. 다산 정약용의 삶을 그렸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이며, 어머니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손녀로 해남 윤씨이다. 정약용의 자는 귀농 · 미용, 호는 사암 · 탁옹 · 태수 · 자하도인 · 철마산인 · 다산 · 여유당 등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15세 되던 1776년에 한 살 연상의 풍산 홍씨와 혼인하여 6남 3녀를 낳았으나, 그 중 여섯 명은 어려서 잃었고. 학연, 학유 두 아들을 두었다.
정약용은 1862년 음력 6월 남인 계열이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있는 실제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했던 그는 매형이던 이승훈의 도움을 받아 실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소과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도 많은 상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던 정약용이지만 대과에서는 네 번이나 떨어졌다. 당파 싸움에서 밀린 남인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벼슬길에 들어선 뒤에는 '정조'라는 개혁 군주를 도와 한강을 건너는 주교를 설계하기도 하고, 억울한 모함을 받았다가 풀리기도 하였으며, 기중기를 만들고 암행어사에 나서는 등 많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당파 싸움과 천주교도를 둘러싼 논쟁에 휘말린 정약용은 낮은 직책으로 옮겨가거나 귀향을 가게 되곤 했다.
옳지 않은 길을 가지 않으려던 정약용의 삶을 자세히 서술한 책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잘못된 세상사와는 관계없이 백성을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던 삶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2016.10.21.(금)  두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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