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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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산문

난다


 학부모 독서모임인 '동치미'에서 지난 달에 읽은 책,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시인 박준의 첫 산문집을 5월의 도서로 선택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박준 시인이 그간 제 시를 함께 읽어주고 함께 느껴주고 함께 되새겨준 여러분들에게 보내는 한 권의 답서이자 연서라고 소개하고 있다. '시인 박준'이라는 '사람'을 정통으로 관통하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산문집과 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은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시집에 나왔던 「마음 한철」이라는 시를 여기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나도 통영에 다시 가보고 싶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의 40년 전이라고 해야할 1979년 쯤 글을 잘 쓰던 연기라는 친구가 떠올랐다. 그 이후에 훌쩍 시간이 흐르고 교회오빠의 결혼식에서 오빠의 신부가 된 그 친구를 다시 목격하게 되고는 긴 시간을 별다른 연락도 못한 채, 그렇게 잊혀져갔는…, 조카가 취업해 싱가폴에 가면서 그 오빠와 다시 연결이 되고 그래서 뒤늦게 예전 인맥을 떠올리게 된 사연을 담고 있다. 내 오랜 기억 속에 그 친구는 여느 작가 못지않게 일상적인 산문을 제법 잘 써냈고, 그래서 학교에서 문학상 같은 상을 타고는 했었다. 그런 능력이 부럽기도 하고 아련한 아픔도 따라서 떠오른다.
총 4부로 나뉘어 있지만, 그런 나눔에 상관없이 아무 페이지나 살살 넘겨봐도 또 아무 대목이나 슬슬 읽어봐도 그 이야기의 편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글이다. 드러낼 작정 없이 절로 드러난 이야기의 어린 손들을 우리들은 읽어가는 내내 잡기 바쁜데 불쑥 잡은 그 어린 손들이 우리들 손바닥을 펴서 손가락으로 적어주는 말들을 읽자면 그 이름에 가난이 있었고, 이별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인지, 산문인지 아리송하게 느껴졌는데… 1부의 세 번째 나오는 「두 얼굴」에 이르러서야 아~ 산문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책 읽을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리뷰를 작성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져서 예전에 매일매일 책을 읽고 매일매일 서평을 쓰던 날들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지난 일들을 기록해놓은 메모도 없고,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쓸 재주도 없는데, 이제는 이야기를 읽어낼 시간과 여유조차 없으니 말이다.
더불어 이 책은 시와 산문의 유연한 결합체임을 증명해 보인다. 어느 날 보면 한 권의 시집으로 읽히고 또 어느 날 보면 한 권의 산문으로 읽힌다. 특히나 이번 산문집에서는 박준 시인만의 세심하면서도 집요한 관찰력이 소환해낸 추억의 장면들이 우리를 자주 눈물짓게 한다.

198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처음 가보게 된 벽제 화장터. 그리고 그 당시 느꼈던 아픔과 슬픔을 「벽제행」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려 본다.

 「낮술」, 「일상의 공간, 여행의 시간」과 「취향의 탄생」등에서 눈에 띄는 글귀를 발견하고 책 한 귀퉁이를 접어놓는다. 게으름을 탓하지도 못하고 조금만 애를 써서 포스트잇이라도 부쳐놓으면 될 것을 자신을 탓하기는 커녕 책꽂이 끈이 없다는 점이 다소 불편하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2018.5.20.(일)  두뽀사리~ 

61쪽
봄을 반기며 마셨고 여름 더위를 식히자고 마셨고 가을면 서늘하다고 마셨고 겨울이면 적막하다고 마셨다.

110쪽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126~127쪽
섬진강에 봄이 오면 하동의 재첩국과 수박 향이 은은히 번지는 구례의 은어를 접했다. 여름 신안의 민어와 흑산도의 홍어, 가을에는 포항의 과메기와 서천의 박대를 즐겼다. 겨울 영월의 곤드레와 수안보의 꿩고기와 서귀포의 방어도 빼놓을 수 없다.

127쪽
봄을 맞은 통영의 동백섬과 여름이 머무는 고성이 화진포, 그리고 가을 제주의 비자림과 용머리해안, 겨울 철원의 고석정을 비롯한 전구그이 많은 곳곳을 어떤 계절과 시간에 찾아야 눈앞에 선경이 펼쳐지는지 나는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소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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