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남은 마지막 책. 여기는 영화 <매드 맥스>처럼 암울하고 폭력적인 세계이고, 당연히 대다수는 책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이 전쟁일 때 책의 가치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이들에겐 한 권의 책이 더 절실하며, 주인공은 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포석이 되고자 합니다. 변화는 매우 느리고 그는 일생이 걸려도 혜택을 입지 못할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엔 책이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등대의 불빛처럼 믿음을 주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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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민족문학연구소 엮음, 김미월 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젊은 작가들의 책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주제에 이런 책을 놓치고 지나갈 수는 없다. 콕 집어 젊은 작가를 바라는 이유는, 지금을 살아가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기존 문학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에는 괴리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절망, 새로운 무력감을 느끼고 있지만 이는 아직 문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배부른 소리라고 호통치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필요한 건 충고나 위로가 아니다. 필요한 건 이해와 해결책이다. 지금 젊은이를 그리기 위해서는 동 세대의 젊은 작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김사과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은 눈 먼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거북하다. 반면 그 분노에 공감하면, 분노 이면의 절망을 읽어내고 나면, 머리에 달라붙어서 떨쳐내기 어렵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불안감, 두려움, 무력함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단에서는 그 동안 젊은 작가들이 현실이나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하다며, 동세대의 독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평이 있었다. 이는 서로 바라보는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별 거 없는주인공의 개인사를 다루는 소설들은 어쩌면 개인으로 파편화되고 개인으로 침잠하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포맷하시겠습니까?] 20~30대 초반 세대인 작가들이 동세대의 삶을 실감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각자의 언어로 현실과 대결하며 현실 '너머'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다산책방 펴냄.

 

광기와 비극을 다루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하다. 편안한 공간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독자를 등장인물과 같은 비정상적인 상태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도망가는 쥐의 퇴로를 하나씩 차단하듯 단계를 밟아가며 치밀하게 사람을 내몰아야 한다. 이 작가가 플롯의 탄탄함, 겹겹이 구성된 진실을 파헤치며 독자의 혼을 빼놓는 솜씨는 믿을 만 하다. 저자의 다른 작품 [알렉스]는 정말 최고였다. 특히 1부의 긴박감은 여느 스릴러를 압도한다. 납치된 여자와 이를 수소문하는 형사의 시점이 번갈아 제시되는데, 여자는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데도 시점이 교차할 때마다 새로운 위험이 목까지 차오른다. 정말 피 말리는 과정이었다. 위기가 지나간 1부 이후로는 뒤통수를 맞는 과정이었고.

 

제일 좋았던 점은 문장이었다. 입체적인 인물상을 한 문단 안에 묘사해내는 실력과, 이미지와 상징과 사실이 적절히 결합된 표현 방식은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알렉스] 한 권만으로 이 사람의 책이라면 뭐든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기쁘게도 다산책방에서 순조롭게 출간될 모양이다.





[문 콜드2]

퍼트리샤 브릭스 지음, 이수현 옮김, 시공사 펴냄

 

 지금껏 본 어반 판타지 중 유일하게 마음 속으로 밀고 있는 시리즈. 1권 나온 후 출간 계획이 불투명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무사히 2권이 출간된 모양이다. 표지는 보다 얌전하게 바뀌었다. 원서 표지에서는 권수를 거듭할수록 여주인공 일러스트에 문신이 하나씩 늘어나는데, 국내판에서는 아예 인물을 빼버렸다.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만큼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지만, 얌전한 표지 쪽이 호응은 좋을 듯.

 

 여주인공 머시는 독일 클래식 카 전문 자동차 정비공이고, 자유자재로 코요테로 변신할 수 있다. 그녀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은 그렘린이고, 단골 고객 중에는 뱀파이어가 있고, 앞집에는 늑대인간이 산다. 이 세계관의 늑대인간들은 엄격한 서열제로 무리를 운영하는데, 늑대가 권력관계에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초자연적 존재들 사이의 그 알력다툼이 또 현실감이 묻어난다.

 

 이야기 군데군데 섞인 로맨틱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같은 로맨스라도, 달콤함과 끈적함이 넘쳐나 쉽게 질리는 책들과는 다르다. 메마르고 절제된 상황에서 언뜻 스쳐가는 두근거림이 참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른달까. 그리고 솔직히, 어릴 적 첫사랑부터 해서 연애 가능 대상이 여럿 나오긴 하지만 개중에서 여주인공 머시가 제일 매력적이다. 이 여주인공에게 반한 결과 코요테 사진집까지 구했다. 원서는 꽤 많이 나왔는데, 국내에도 계속 번역되길 바란다.

 



   

 

[신의 손1], [신의 손2]

구사카베 요 지음, 박상곤 옮김, 학고재 펴냄.

 

 의사는 전문직이기 이전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합법적으로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직업은 현대에는 군인과 의사밖에 없다. 의사는 보다 일상적으로 목숨을 다룬다는 점에서 군인보다 훨씬 도덕적 딜레마를 심하게 겪을 테다. 여기에 돈과 정치가 얽혀서 의학 미스터리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구사카베 요는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비롯한 가이도 다케루의 뒤를 잇는 작가라고 하는데, 과연 공통점이 많긴 하다. 현직 의사가 쓴 소설이라는 점, 의학계와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논쟁거리를 다룬다는 점, 이를 범죄를 다루는 미스터리에 녹여낸다는 점이다. 가이도 다케루의 소설은 가볍고 흥미진진하게 읽기 좋았는데, 과연 이 책은 어떨지.

 

 구사카베 요의 이력 중 외무성 의무관으로서 여러 곳의 대사관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노인 데이케어, 재택 의료에 종사했다고. 현장에 서 있는 사람의 문제의식이니만큼 그 깊이와 무게가 기대된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감동 실화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하면 일단 경계심이 생기는데, 아름답다는 이름으로 치장된 소비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건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로 충분하다. 하지만 질문에 마음이 움직였다. “우린 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러게, 우리가 이 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불치병을 다루는 소설치고는 신파보다는 재치 함량이 높은 소설일 듯 하다. 등장인물의 재기가 마음에 든다. 책 소개에 따르면, “주인공 헤이즐은 책 속에서 특유의 멋들어진 재치를 담아암 이야기란 원래 재미대가리 없는 거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죽음의부작용일 뿐이다.”라고 비꼬기도 한다.” 유머를 아는 인물은 언제나 좋다. 예문을 하나 더 첨부한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수학 이야기를 할게요. 전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 외에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죠. 물론 0 2 사이라든지 0과 백만 사이에는 더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저희가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이걸 가르쳐줬죠. 제가 가진 무한대의 나날의 크기에 화를 내는 날도 꽤 많이 있습니다. 전 제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하고, , 어거스터스 워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었기를 바라요.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난 이걸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거야.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폴라북스 펴냄

[작년을 기다리며]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폴라북스 펴냄


 PKD의 작품은 수없이 영화화되고 인구에 회자되었음에도 국내에 소개된 장편 작품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높은 성의 사나이] 이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다. 그런 점에서 폴라북스에서 내고 있는 PKD 작품집은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책도 예쁘겠다, 쑴풍쑴풍 잘도 나온다 했다. 다만 정신병과 마약에 시달린 위대한 작가답게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한 권 읽어 삼키는데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였다. 쭉 읽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정신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단편집이 다시 반가워지는 시점이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작년을 기다리며] PKD 작품집 중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이다. 전자는 단편집이고, 후자는 보다 말랑말랑한 게 우주적 스케일의 이혼 분투기라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이 작가에게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면,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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