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성인기 내내 내 일을 잘해왔다. 저녁상에 올릴 아기를 만드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겨우 몇 달 전 어느 날 누군가내가 더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내 일 역시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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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자의 얼굴에서 이제는 생명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돼지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을 때, 완전히 부적절한 비유, 죽은 300킬로그램짜리 돼지와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는 60킬로그램짜리 나를 연결하는 비유가 떠올랐다. 나는 이 돼지가 성인기 내내 제 일을 성실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일은 아기를 낳는 것이었다. 많은 아기를. 우리의 식탁에 오를 음식으로 바뀌게 될 아기를. 그러다가 어느 날 누군가 그녀가 더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일도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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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속담처럼 "생명은 탁 트인 들판을 가로지르는 산책 같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 한 번의 생애 안에서, 그리고 어쩌면 많은 생애에 걸쳐 경험은 나누어지지 않고 연결된다. 나는 내 경험이 전적으로 내 것이라는 인상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고, 그것이 나보다 더 선행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종종 있다. 어떤 경우는 경험은 반으로 접히고, 희망과 공포의 관계항을 통해 앞으로 뒤로 스스로를 참고한다.
— 존 버저, Pig Earth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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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미친놈이 임신을 아름답다고 그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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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가끔 그런 게 필요하다.
당장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갈 것은 아니라도, 벽에 히말라야 산맥의 사진을 걸고, 좋은 등산복을 사 두는 것처럼. 언젠가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위해 미리 뭔가를 준비해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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