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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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낙서같은 글을 sns에 끄적이곤 한다. 내 이야기의 소재는 언제나 엄마, 아니면 아버지, 아니면 책과 고양이들이다.

내 이야기라고 써내려가는 글이지만 결국 내가 쓰는 가족의 이야기다. 아이들이나 옆지기의 이야기보다 아버지와 엄마의 이야기가 늘 많다. 엄마와 아버지(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나는 참 궁금하다.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유와 같을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서 자라던 때가 가장 행복하게 기억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생고생을 하며 자란 유년일지라도 엄마와 있어서 당당했고 아버지가 있어서 든든했던 시간. 이제는 나를 키우던 엄마의 나이보다 더 나이 들어버렸고, 나를 이뻐하던 아버지보다 더 쓸쓸하지만 엄마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나는 귀여운 딸래미일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 엄마가 아버지가 쓰셨다는 원고 이야기를 했다. 짐 정리를 하는데 아버지의 원고가 나왔다고..얼른 보내달라고 했으나 어쩐지 엄마는 소식이 없었다..무슨일인가 싶었는데 엄마가 전화를 했다. 아버지의 원고 사이에서 두 분이 결혼 전에 나누던 편지들이 빼곡하게 나왔다고..그 편지를 읽고 있자니 편지 가득한 아버지의 글씨와 낡고 낡은 아버지의 원고가 뒤섞여 차마 나누고 싶지 않다고 했다. 더 기다렸다가 당신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 때 편지만 따로 정리해서 태워달라고, 그 때 원고를 봐도 되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되고 말고요.

전화를 끊고 여기저기 써두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널어 놓은 글들..잘 쓴 글은 아니지만 잘 모아두었다가 '엄마 이때 기억나?' 하며 같이 읽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나온 김탁환 작가의 '엄마의 골목'

작가와 어머니가 같이 걷는 진해. 어머니의 기억과 작가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 혹은 온전히 어머니의 기억에의해 그려지는 지점, 작가의 기억이 머무는 지점..진해는 다만 군항제만 열리는 곳이 아니었다.

이 책의 모든 주어는 '엄마'라고 말하는 작가. 그랬다. 교직에 계셨던 어머니는 반듯하고 고우시지만 여전히 소녀같았고, 이제 지긋이 나이가 든 작가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아들이었다.

낯설지 않은 대화와 풍경들. '엄마'라는 말이 부르는 일종의 공감일게다. 우리 엄마도 그랬지. 어머, 나도 이랬는데..

엄마와 나, 나와 내 아이들, 세대를 건너서도 전해지는 애틋함.

책을 찬찬히 읽었다.

우리 엄마와 같이 걷듯..천천히. 다리가 안 좋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으며 이야기하듯 천천히 읽었다.

 

이제야 봄인 것 같은 때..나른하게 어리광 부리고 싶어지는 책을 읽는다.

 

"내 생애 딱 한 번 엄마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너무 이른가. 이 책을 낸 후 엄마의 남은 나날은 어쩌지? 이런 상상을 해본다. 집필을 10년 늦춘다면, 엄마와 함께 골목들을 다니긴 어려우리라. 작은 방에서 엄마와 나누는 이야기도 흥미롭겠지만, 엄마와 실외로 나가 함께 걸으려면 지금 써야 한다. (p158)"

 

엄마와 같이 내가 자란 수원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간절히..

 

"[거짓말이다]를 애 쓰려고 마음먹었느냐는 엄마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딱 한 명만 죽이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딱 한 명만 살리고 싶은 적도, 죽이고 싶은 사람도 저였고, 살리고 싶은 사람도 저였어요. 똑같은 말을 그에게서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 꼭 쓰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힘주어 쓰면, 살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무거워져 그쪽으로 기울거라 여겼거든요. 소설은 완성했지만, 결국 저는 실패한 겁니다.(...) 그 시도가 아무리 옳고 맹렬해도,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진 않습니다.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고 소설가란 업의 한계입니다.'

엄마가 말했다.

"그게 어떻게 소설가만의 한계겠니?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단다 너무 자책하지 마."(p166-167)"

 

엄마는 늘 가장 아파하는 걸 묻고, 쓰다듬어 주시곤했다. 괜찮다고 ..

 

걸어본다 시리즈를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표지를 펼쳐 진해의 지도를 짚어가며 읽었다.

흰 종이를 하나 꺼내 내가 기억하는 곳의 위치를 그려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가 보이던 골목들..엄마가 기억하는 내가 뛰어 놀던 골목들..

어쩐지 내 손바닥 위의 손금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득, '엄마 거기 기억나?' 하며 수다 떨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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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3-16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걸어본다 시리즈 저도 참 오랜만에 보네요, 몇 권 읽어보진 못했지만 읽었던 책들이 모두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나타샤님의 글을 읽으며 참 훈훈하고 따뜻하고 때론 저릿한 책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만나보고 싶은 책이예요~^^

나타샤 2017-03-17 00:16   좋아요 0 | URL
네..배냇저고리를 만나는 느낌같은~~^^

나와같다면 2017-03-17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 거기 기억나?‘ 라는 말이 뭐라고 눈물이 나는지..

나타샤 2017-03-17 07:21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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