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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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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하겠다는 야심 찬 기획 (+★★)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인물의 생을 추적하는 방법(평전), 비슷한 여러 인물을 모아 전시하는 방법(열전), 특정 사건에 집중하는 인과적 서술, 최근 들어 각광받는 미시사 연구까지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정공법' 은 바로 시간순서에 따른 연대기다. 개개의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주욱 나열만 하면 되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쉽지 않다. 동시대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무수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야 해서 자료의 양은 눈더미처럼 불어나고 이내 개인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대표적인 편년체 사서인 '조선왕조실록' 이 왜 유네스코 기록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는지 생각해보자.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정리하기 위해 동떨어진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사건들, 그 안에서 제각각 뛰논 인물들의 궤적으로 하나하나 추적해 적는다는 것은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한 명의 기록자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여 주제가 무엇이 됐든 그 기원에서 종극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 구성으로 역사를 정리하겠다는 시도는 실로 야심 찬 시도다. 그 분야에 정통한 최고의 권위자가 아니고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며 기초학문 분야의 토대가 부실한 국내에선 더더욱 견물생심인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버트 서비스의 '코뮤니스트' 는 그 시도 자체만으로 별 다섯 개를 주고 시작할 만하다. 이 책은 공산주의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맑스-엥겔스 정도가 아니라 '비포어 맑스' 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맑스와 엥겔스가 영국 망명후 본격적인 프로파간다를 실시하기 전부터 어떤 인물들의 어떤 저작들을 읽었는지 부터가 시작이다. 그 기원은 프랑스 혁명이후 실시된 수평적 자유와 루크와 같은 사상가들의 자유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시작된 저자의 펜은 다음 장에서야 맑스와 엥겔스를 거쳐서 러시아 혁명, 2차대전, 동구권의 공산화, 미국 내의 공산주의 운동, 중국와 인도 차이나 반도에서의 혁명, 쿠바와 체게바라를 거쳐서야 비로소 1980년대 말 공산주의 종언에 도달한다.


방대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디테일 ( - ☆)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책은 시리즈로 된 기획이 아니라 한 권짜리 단행본이다. 물론 그 분량은 몹시 두툼하다만 100년도 전에 시작된 한 현상의 역사를 모두 다루기에는 또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다. 더욱이 저자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시작했다. 지구 상에 존재했던 공산주의 정권과 위정자라면 그 누구도 빠짐없이 짚고 넘어가는 '분량의 공산주의' 를 실천했다. 레닌과 트로츠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10월 혁명과 2월 혁명, 스탈린과 독소전과 같이 이야깃거리가 방대한 러시아의 경우를 제외하면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이라 한들 모두에게 나눠주니 몹시 제한적이다. 그래서 각 장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은 오히려 제한적이다. 저자의 독창적인 해석이나 사건의 전후 맥락을 깊이 파고드는 디테일은 없다. 그저 어느 해에 레닌이 편집장이 되고 다니 그라드로 돌아왔고 조직을 구성했고 임시정부를 장악했고 하는 사실들의 나열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얻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이미 공산주의의 역사와 역대 공산정권을 지배해온 독재자들에 대해서 최소한 들어서라도 알고 있는 이들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정리하기 위해서 읽으면 좋을 책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한 청년이라면 위키피디아가 더 친절하며 맑시즘이 궁금하다면 다른 맑스-엥겔스 선집을, 자파스타 혁명과 체게바라를 흠모한다면 체게바라 평전을 읽은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뼈대는 있지만 살은 없다.



식상하다 싶은 결론과 팍팍한 읽는 맛 ( - ☆)


그렇다면 이 야심 찬 기획과 압도적인 분량에 담긴 주제는 무엇인가? 지극히 당연하고 식상한 것이라서 다소 맥이 빠진다. 한마디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되겠다. 저자는 단순히 공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한 듯하다. 특히 공산주의 체제와 독재가 거의 필연적인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사실을 귀납적으로 독자들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중국의 개방에 이르기까지 그 수많은 꼬뮤니스트들을 하나하나 언급했던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 혁명을 수평적 해방의 이데올로기라 믿고 주장했다. 그러나 막상 본인들의 생활과 삶에서부터 권위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면모를 담고 있었다. 특히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과 필연적 혁명론은 기독교적 종말론과 메시아의 재림을 외치는 '천년왕국론' 을 기저에 깔고 있었음을 저자는 누차 강조한다. '종말 뒤에 오는 천년왕국론' 은 맑스 이후 수반은 공산지도자들이 정권을 잡을 때 이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맑스의 국가는 언젠가는 해체되어 개인들이 자유를 누리게 될 이상향이었지만 실제 공산국가들의 현실은 달랐다. 특히 '평등' 을 강제하기 위해선 각종 규제를 강제할 강력한 국가가 더욱더 필요했다. 이들은 단순히 경제적 수단과 분배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문화까지 억압했던 공통된 패턴을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소비에트 혁명이후 교복과 땋은 머리를 강요하는 폐색된 학교문화가 부활했다. 중국의 문화혁명은 일당독재와 추상과 같은 지도자의 권위를 강화했고 그 정점은 역시 북한의 김일성이 보여줬다.


일당, 일국, 독재자라른 꼭지점을 향해 모이는 '공포위에 세운 체계' 라는 말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맑스적 이상에 따르면 수평적으로 나눠지고 여러가지로 분절된 개개인들의 집합체일 것 같으나 그 구조를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당과 지도자 일극으로 수렴되는 피라미드 형태였다. 권력이 민중들에게서 나와 민중들이 힘을 행사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그냥 독재였다는 뜻이다. 공산정권하면 아이콘처럼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과 같은 독재자가 자리잡고 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까지도)들은 공산주의에 경기를 일으켰으나 시간이 일으킬수록 공산주의와 공산지도자들은 그 독재자와 똑같아졌다. 사실상 2차대전 이후에는 파시즘, 전체주의, 공산주의, 독재정치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져 간다. 마치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는 변종을 일으켜 여기저기 널리 퍼져 박멸하기 어려운 것처럼 현대의 공산주의도 그러한 것이라고 로버트는 진단했다. 


덧붙여 호치민과 아옌데처럼 비교적 긍정적으로 알려진 공산지도자들에게까지도 가차없다. 호치민의 베트남은 민중의 지지를 받았어도 그것은 애국이나 독립운동 탓이지 민주주의나 수평적 공산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독재였다며 비판한다. 사르트르와 같은 동시대의 지식인들이 베트남의 공산정권을 옹호한 데에 대해서는 '당시의 언로가 막혀있어 그들도 제한된 정보에 속았기 때문' 이란다. 민주적 절차 (직접선거)에 의해서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다 미국이 조종한 쿠테타로 실각한 아옌데는 '사람은 좋았어도 무능했다' 는 식이다. 한마디로 이 600페이지의 결론은 공산당이 싫어요, 공산당은 나빠요 정도가 되겠다.  


제 점수는요... (★★★)


결과적으로 원대한 계획과 묵직한 분량에 비해 다소 아쉬운 내용이다. 뼈대는 있으나 살이 없고 단순 사실의 나열이라 지루하다. 결론과 해석은 고등학교 교과서 만큼이나 평이하다. 특히 '공산주의' 라는 경제적 측면에 집중하면서 '사회주의적' 특성이나 이를 전체로 포괄하는 '맑시즘' 에 대해서 일부러 말을 극도로 아낀 인상이 강하다.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에 더없이 큰 영향을 준 헤겔이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상 없다. 방대했지만 그만큼 빛을 발하기는 어려웠던 연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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