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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말하기에 참으로 애매한 책이로군요. 제목부터 단호하게 자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그렇게 뚝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걸 저자인 사사키 선생이나 저나 여러분이나 절실히 통감하고 있을 것 입니다. 일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과연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지부터 갈피가 잡히지 않을 겁니다.


저자인 사사키 아타루의 약력을 훑어보고 고지식하게 '정신분석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어떤 의미에서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단호하게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모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서간문의 꼴을 빌린 에세이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차라리 철학사 혹은 서양 중세-근대사 개론으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저자의 집필의도 - 저자인 아타루 선생의 의견에 따르면 어찌 감히 그렇게 함부로 텍스트의 진의를 잘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과감히 재단해 보자면 - 만 놓고 봤을 때 '기도하는그 손'은 근 10여년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소피의 세계' 와 닮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하룻밤의 철학우화' 같은 노골적인 부제를 달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훨씬 더 품위있고 자라나는 이들에게 권해주고픈 그런 책 입니다.


라깡의 '쥬이상스 - 향유, 향락, 쾌락등으로 번역되는 정신분석학적 개념. 고정된 역어가 없기 때문에 역자마다 표현이 바뀐다. 이 책에서는 향락에의 추구라고 번역되었습니다만' 와 같이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아무런 준비운동 없이 쏟아 놓는 통에 첫번째 장은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다소 어안벙벙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아주 일시적인 현상일 겁니다. 나머지 네개의 장을 읽어나감에 따라 다소 모호해 보였던, 사람에 따라선 매우 고압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던 첫장의 내용역시 큰 흐름안에 포섭되어갑니다.


아타루 선생은 태초 - 아 !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가 이 행성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던 20만년전부터 지금까지, 다섯번의 대멸절과 다섯번의 혁명을 소개하면서 우리를 일깨우려 하는 겁니다. 혁명, 그것은 손에 돌을 쥔 성난 민중들의 피와 폭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것은 혁명과 함께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임을, 오히려 그 밑에는 '文' 이라는 함축적인 언어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뿌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말입니다. 기존의 고답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 만큼이나 인류 역사에 있어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활자와 독일어 성경의 출현 역시 혁명인 겁니다. 국가라면 막스베버가 말한 '폭력의 사유화 금지' 내지는 ' 법전, 영토, 국민' 정도만 앵무새처럼 외우는 우리에게 교황과 카톨릭의 위계질서가 곧 근대(modern)적 국가의 씨앗임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 아래는 모두 '文' 이라는 자양반이 밑받침 되고 있었다는 점 또한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가지의 혁명에 대해 논하는 다섯밤의 편지를 모두 읽고나면 명제는 자명해 집니다. 아타루는 몹시 낮은 자세로, 때에 따라선 고답적인 노교수가 연상될 정도의 목소리로 거의 성을 내며 계속해서 말하는 겁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어느날 과거를 버리고 떠나게 만들었던 그 목소리, 예언자 무함두가 대천사 지브릴에게서 들었던 그 목소리! 이꾸라! 이꾸라! 이꾸라! (Iqura : 아랍어로 '읽으라') 


태초부터 文이 위태롭지 않았던 시절이 없었으니 너는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다며 혀를 차는 애늙이는 처럼 굴지말고 그저 읽으라 읽으라 읽으라! 세계의 종말은 아직 요원하기만하니 너는 380만년 뒤의 영원을 기다리며 읽으라!


- 굳이 트집을 잡아보자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은 너무 짧아서 아쉽고 '아.. 이 대목은 제가 이전 책인 영원과 전장에서 아주 자세히 논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가 남발되어 아타루의 이전 저작인 '영원과 전장' 을 궁금하게 한다는 점 정도. 이 책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서 일어를 하지 않는 이상 딱히 읽을 방법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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