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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부모님을 만나러 갑니다. 차창 밖을 망연히 바라보는 일은 제일 먼저 만나는 즐거움입니다. 조금만 차를 달려도 높은 건물은 금방 자취를 감춥니다. 나무들의 키도 커지고, 굵어집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그 차이가 저는 그저 신기합니다. 그렇게 큰 나무들이 제멋대로인듯 튼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말이에요. 얼마나 오래 됐을까, 앞으로도 저기에 있을까, 더 깊은 곳,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의 밤은 어떨까, 뭐 그런 게 궁금해집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나무가 무성한 숲. 그곳은 멀리서 바라보기에 참 아름답습니다. 평화롭죠. 하지만 잘 압니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얼마나 울퉁불퉁하고 치열한 삶이 펼쳐지는지. '삐뚤어지고 괴이'한 나무 한 그루의 삶을 상상해요. 그건, 평온하지도 안전하지도 않겠지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운집한 숲을 거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별 일 없이 지내는 것 같은 수많은 나무, 아니 사람들, 그들의 괴이해 보이기만 하는 삶을 생각했어요.
어떤 의심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와 그걸 읽는 독자의 불안(<구두>), 피곤한 한 나절을 보내는 성실한 사람의 하루 한 때가 잠시 조각나는 찰나(<팜비치>),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지만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개인의 불안(<오가닉 코튼 베이브>), 가장 가까운 사람을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어긋난 자아(<틀니>), 이기심과 자존감이 덩쿨처럼 뒤엉킨 누구와 누구의 동상이몽(<홍로>), 뻗을 수 있는 한 멀리 뻗어나간 오해(<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사랑하는 미지의 영역(<타투>), 휘어지고 휘어지다 끝내 부러져버리는 깜짝 놀라는 순간(<대머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 소유했다고 느끼는 공기 같은 욕구(<파란 책>), 밟히고 밟혀서 자세를 낮추고 있어도 절대 죽지는 않는 잔디 같은 삶(<집이 넓어지고 있어>), 그 모든 다른 모습의 나무들이 펼쳐진 숲을 거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이 책에서 만났습니다. 참 멋진 일이었어요.
무언가 부러져 떨어지는 순간을 평화롭게 지켜볼 수 있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이야기에서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다른 무엇보다 저는 이 단편들이 모두 좋았기 때문에 최정화 작가의 단편 활동을 계속해서 응원하는 마음이 듭니다. 거대한 서사를 상상할 수 있는 한 장의 사진, 같았어요. 어쩐지 그런 사진은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법이지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