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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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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비겁함 때문에 그를 미워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살아남았고 또한 다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물론 다행이었다. 모든 게 모순으로 가득하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내가 원하는 만큼 간단하지가 않아.

주위에 널린 흑인 시체들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랐다.(263쪽)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 그런 것'은 결코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에 담긴 폭력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집니다. 거의 몸에 대한 물리적 가해가 느껴질 정도라 간혹 소스라치게 놀라 두려움에 떨 때도 있습니다. 과민하달지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역시 무감한 것보다 훨씬 안전한 쪽이니까요.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고요.

한나 렌스트룀이 자신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의 땅, 뜨거운 그 땅에 도착해 만난 아나 돌로레스. 그의 말을 한 번 들어볼까요.

 

흑인들은 우리들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그들에겐 색깔이 없어요. 우리가 어둠속에서 그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신은 그들을 검게 만드셨어요.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돼요.(135쪽)

세뇨르 바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한나에게 흑인은 거짓말을 한다, 그들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나는 그런 말들에 곤혹스러움을 느끼죠. 고향에서 그 자신이 '가난한 노동자와 하인들 중 하나'였듯 이곳에서 흑인들은 '단지 피부색 때문에' 열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 뜨거운 땅에 대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은 그들대로 고향을 등지고 이 낯선 땅으로 이주한 저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없는 것을 찾아 헤매고, 중요한 것을 쉽게 내버리는 존재들을 말이죠.

 

모든 게 모순으로 가득해요. 세상이란 그런 곳이네요. 도무지 간단한 것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저는 두렵습니다.

 

한나가 정착하게 되는 정반대의 공간, 추위를 떠나온 곳의 더위, 희고 창백한 곳을 떠나온 곳의 진하고 검은 공간에서 카를루스라는 이름의 침팬지는 가장 놀라운 존재입니다. 카를루스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곤 하는 한나의 독백 또한 놀랍죠.

 

카를루스는 이미 오래전에 침팬지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으며 이제 인간과 여타 동물 사이의 중간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카를루스의 집은 숲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린 등이라는 것을.(289~290쪽)

중간 세계의 존재. 여기에 생각이 머무른 것은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세계에 사는 존재들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 믿었던 세상을 떠나온 한나의 깨달음, 인간 세상에서 자신을 찾은 침팬지의 깨달음이 참으로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함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호한 상태가 삶인 것은 아닌지.

 

<불안한 낙원>에서 한나가 곡절의 시간을 건너고 지나 자신의 두 발로 똑바로 선 채 자신의 삶을 직시한 끝에 마침내 아나 네그라가 되기까지의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아나 네그라가 모세스를 꼭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나 네그라로 원하는 것을 하며 남은 생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꿈 같은 이야기라 희망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희망하고 싶습니다. 세상 모든 아나 네그라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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