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은 꾸준히 흐릅니다. 때가 되면 비가 내립니다. 계절이 어김없이 바뀝니다. 곧 눈이 내리고 해가 바뀌느라 세상은 분주하겠지요. 그 속에 일상이란 녀석이 심심하게 흘러갑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가끔 드라마를 꿈꿉니다. 재벌 상속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잃어버린 쌍둥이를 만나는 드라마, 복권에 당첨되는 드라마... 그렇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이 '일상'은 무엇보다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특별한 꿈을 꾸던 시절이 지나고 아무 일 없는 일상을 사랑하게 되는 나이가 됐습니다. 모두가 그 자리에 예전처럼 있고, 모든 것이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는 잔잔한 호수 같은 상태가 너무나 소중해 가끔은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로도 파문 일 수 있는 일상의 허약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요. 일상은 호수가 아니라 폭풍 전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을 하게 되는, 땅이 꺼질까 두려워하고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게 되는 시절입니다. 


책의 등장인물들 모두는 잔잔한 일상을 잃어버린(혹은 박탈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삶은 적대적이고, 폐쇄적이고, 비밀스럽고, 고통스럽고, 고달프고, 인색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기도 하고 세상이 그들에게 그렇기도 합니다.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이들은 공격을 택하거나 은둔을 택합니다. 자의라기도 타의라기도 어려운 그들의 선택된 삶에는 꿈꿀 만한 드라마가 없습니다. 다만 진한 땀과 피와 담배 냄새가 있을 뿐이지요. 

이런 상태가 너무나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애처롭고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 이 책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어디서 본 것 같아요. 이 사람들. 



 세상은 갈수록 인색해져 가난한 늙은이에게 더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 113쪽,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여기에 우리 아버지가 있습니다. 평생 육체노동으로 삶을 꾸린,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남자 경구. 정신 없이 달렸왔지만 문득 정신 차려보니 그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늙은 몸뚱이만 남았을 뿐. 경구는 '가난한 늙은이'입니다. 이혼한 아내를 생각하면 울화가 오르고, 어쩌고 다니는지 이제는 말 한 마디 섞지 않는 딸내미를 보면 화가 나다가도 불쌍하고, 아들 녀석이야 빨리 군대나 가버렸으면 싶어요. 경구가 지키고 싶었던 삶이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가 서 있는 곳은 바로 이 자리입니다. 

경구는 궁금합니다. 대체 왜 제 삶이 이렇게 됐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 화가 된 걸까요. 아니면 이놈의 욱하는 성질머리 때문일까요. 따져보아도 명쾌한 답은 없습니다. 길을 벗어난 경구의 삶은 이제 벼랑 끝에 있습니다. 삶은 결코 경구의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구불구불 뱀처럼 끝도 없이 이어진 밭고랑 저 끝에서 뒤꿈치를 따라오는 수치심에 대해 쓴 적이 있던가? - 79쪽, <왕들의 무덤>

여기에 우리 이모가 있습니다. 잘 풀린(?) 중년 소설가 정희는 육십 평 대 아파트에 삽니다. 아침에 일어나 충분히 원하는 만큼 샤워를 하고 팬이 선물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유학 중인 딸과 간단히 통화를 하고 (남편 아닌)남자와 데이트를 할 예정입니다. 남들이 부러워 할 일상입니다. "사진관 앞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처럼(63~64쪽)" 좋아보이는 겉모습이니 말이지요. 

하지만 제법 단단해 보이는 정희의 일상에 낮게 엎드린 상처는 육중한 무게감으로 그녀를 끌어내립니다. 빨갱이를 욕하던 아버지, 붙박이처럼 땅에 앉아 일만 하던 엄마, 그리고 어떤 능멸의 경험. 한 번도 말해지지 않은 어둑하고 두려운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품은 정희는 한 번도 고향 이야기를 쓰지 않았고 도시적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끝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는 인간에게 물린 개의 인생이나 개를 물어야 하는 자신의 인생이나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라는 기분이 들었다. - 153쪽, <전원교향곡>

여기에 우리 삼촌이 있습니다. 도시에 지친 사람들이 '전원'의 꿈을 찾아 떠날 때 정환 역시 대안적인 삶을 찾아 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하고 나물을 찾아 산 속을 다니고 아이를 낳고... 꿈 같은 시간을 아내와 함께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정환을 부러워하고 수시로 정환을 찾았죠. 정환의 귀농은 잘한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집 근처에 돼지 축사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빚을 내 시작한 돼지 감자 농사가 가격 폭락으로 완전히 망해버리고 아내와의 사이는 점점 나빠지기만 합니다. 드라마 같던 그들의 생활은 비루한 일상으로 남았지요. 드라마만 믿고 삶 전부를 걸었던 정환은 이제 술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도시로 다시 떠났으며 혼자 남은 그는 지독한 돼지 축사 냄새와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전원 드라마는 결국 그를 '개를 물어야 하는' 인생으로 내몰고 말아요. 


인생의 종착역은 원래 그런 것일까? 밤새 고통스러운 기침을 하고, 맛이 고역한 소다를 한숟가락씩 퍼먹으며 배에 구멍을 뚫어 고무호스로 오줌을 빼내는? 그래서 녹용이 빠져버린 한약처럼 쓰디쓰기만 한? - 195쪽, <우이동의 봄>

그리고, 여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죽음을 언제나 두려워하는 우리가 여기에 있어요.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 할아버지를 보는 '나'의 심정은 복잡합니다. 그의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대단한 애정이 있지도 않습니다. 전라도 치는 안 된다고 하는 할아버지의 말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할아버지를 보는 '나'는 그를 통해 인생을 생각합니다.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계속 살아갑니다. 가끔은 좋은 손자 역할을, 대개는 소시민의 한쪽을 담당하면서요. 



실용주의자들의 세계에서 소설이야 예전처럼 제 목소리 내기는 어려워졌습니다만 소설이 우리 삶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책에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가끔 꿈만 꾸었던 어떤 순간이 집요하게 펼쳐져 있어요. 그 순간들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우리는 자꾸 기시감에 빠지지만 소설의 어떤 충격적인 사건도 현실의 그것을 뛰어 넘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야기에 집착하게 됩니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무일 없는 일상을 소중하게 끌어 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용기를 내봅니다. 


그래, 까짓것. 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 백반 좀 먹고 빠구리 좀 치다 가면 그뿐이지. - 110쪽,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