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여성학 강의 3
쥬디스 버틀러 지음, 김윤상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안녕하세요!

저는 버틀러 책'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역자 김윤상입니다.

우선 carrot님의 리뷰들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몇 가지 오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1월말 우연히 알라딘에 들렀다가 carrot이라는 아이디의 마이리뷰를 보았습니다. 우선 장문의 리뷰를 쓰실 만큼 제 번역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 것에 대해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carrot님의 리뷰를 보고 무력함을 느껴야했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타인에 대한 비판(내지는 비난)의 내용을 갖고 있는 인터넷상의 글의 일방성 앞에서 전전긍긍해야하는 저자 내지는 역자의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우선 carrot님의 과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책 리뷰가 갖는 기본적 성격을 벗어나 감정적 표현들 내지는 지나친 추측을 담고 있는 carrot님의 첫 리뷰에 대해 알라딘 측에 전화를 하였고 알라딘 담당자분께서는 회의결과 리뷰내용이 인신모독과 관련된 부분을 포함하기에 삭제결정을 내리고 carrot님께 전화를 드렸다고 합니다. 제 북리뷰의 기본적 성격을 벗어났다고 여기는 부분은 오역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표현들 때문입니다:

“... 드디어 도서관에 반납된 그 책을 빌려서 영어원본과 대조해보던 날밤, 나는 혈압 올라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성의없음과 불성실과 건망증의 극치인 번역으로 이루어진 책이었음이 영원본과의 대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에”, “이 책은 안 좋은 번역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단점들을 다 가지고 있다:”, “번역하다가 너무너무 귀찮다 싶으면 마지막 문장 하나 휙 빼먹어버리는 식으로”, “기본적인 문법들까지 틀려가면서, 문장의 순서와 인과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번역료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번역자도 문장의 주어를 모르게 되고 마니까 그냥, 주어를 빼버린 것이다 하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부분들이 계속 걸린다..”.

둘째로, carrot님께서 제가 이메일로 ‘협박’했다고 말하시는 부분은 carrot님께서 “기본적인 문법들까지 틀려가면서, 문장의 순서와 인과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면서 번역료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표현하신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명예훼손의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 것과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협박’이라고 표현하신다면 지나친 비약이겠지요.     

셋째로 저는 독일에서 10년간 공부했기에 제 번역이 틀릴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번역료만을 받기위해 아무렇게나 번역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그래도 독일에서 학문적 진지함을 배우려했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다음으로는 제 번역상의 문제점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carrot님의 지적대로 normativity를 materiality로 번역해 놓은 부분처럼 몇몇 단어들이 아마도 빨리 번역하다보니 다른 단어들로 대체되어 번역된 부분이 있고, 전체를 다시 보지는 않았지만 빠뜨린 문장들도 두어개 있더군요.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시간을 갖고 다시 검토수정하려고 합니다.

둘째, carrot님의 지적, 즉 “정신분석용어들의 번역을 보면, 하나같이 다 문제가 많다. articulation을 단순히 '정교화'로 번역해버린다던가, trauma를 '외상'이라는 널리 쓰는 번역은 왜 놔두고 '징후'로 번역해놓으면서 '징후'로 번역되는 다른 단어들과 혼동되도록 만들어버린다던가, foreclosure를 '권리박탈'로 번역한다던가, 치환 전치 대체 등등의 용어들을 마구 섞는다든가 등등”인 것 같은데, carrot님은 위의 단어들을 어떻게 번역해야한다고 생각하시며, 국내에서 통상 사용되는 번역어들에 대해 carrot님이 갖는 신뢰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articulation은 본래 ‘정교하게 발음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며 철학에서는(특히 헤겔에 있어서는) 개념의 모멘트들이 세세히 구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말로 ‘정교화’라고 번역하는 데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trauma를 국내에서 ‘외상’으로 번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trauma의 뜻이 ‘무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작용하고 있는 강한 정신적 쇼크’이기에 계속해서 작용하는 정신적 상처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징후’라는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foreclosure는 법률용어로 권리박탈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carrot님은 (만일 carrot님 고유의 번역어가 있으시다면) 정신분석학 및 버틀러가 기대는 철학들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기에 저의 번역에 대한 비판과 저의 '철학 및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를 주장하시나요? 분명 carrot님은 영한사전에 나온말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혹은 기존의 번역서들에서 사용된 용어들로 번역하지 않았다고 저의 번역을 비판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저의 메일에 대해 carrot님께서도 답신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나 carrot님께 보낸 메일에서나 개인적으로 격앙된 감정적 표현들이 동반되지 않은 그야말로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비판적인 리뷰’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carrot님께서는 만일 carrot님께서 조목조목 오역을 지적해주면 제가 소리 소문 없이 carrot님의 지적들만을 고스란히 고쳐 새로운 번역을 낼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어찌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세 개의 리뷰들에서 알 수 있듯이 버틀러에 대한 철저한 맹신 때문인지 오역본 일반에 대한 근원적 불쾌감 때문인지 격앙된 감정이 뒤섞인 어조가 지배적입니다. 저에게 보낸  메일에서 carrot님은 저를 “스타 번역가”의 위치에 놓고 carrot님 자신을 “일개 독자”의 위치에 놓으시면서 마치 학자들의 권위와 그에 대해 커다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반 대중의 구도를 인위적으로 만드셨는데, 사실 저는 “스타 번역가”가 아니며, 독자를 좌지우지할 권위나 권력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을 ‘일개 대중’으로 위치시키면 자유로이 말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보낸 메일이 carrot님께 불쾌감을 주었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김윤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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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7-02-21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chelling 님, 안녕하세요. 바로 밑에 carrot 님의 글에 댓글을 달았던 qualia입니다. 저도 번역비판에 관심이 있다보니, 여기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처음 carrot 님의 의견을 읽고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헌데, 제가 댓글을 쓰는 사이에 schelling 님께서 반박글을 올리셨더군요. 역시 schelling 님의 글을 읽고 또 다른 종류의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여러 가지로 제 자신을 돌아보며 제 문제점을 깨닫게 되는 결정적 순간인 듯합니다.)

제3자로서 qualia 저 자신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엄중하게 지켜야 하겠다고 절감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schelling 님이나 carrot 님 두 분에게 모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제가 참견할 자리는 아니나, 어차피 인터넷 게싯글들이 모든 누리꾼에게 개방되어 있는 것이고, 인터넷 게시판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의견교환의 큰마당이므로, 공정성과 객관성 그리고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제 자신의 견해나 비판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두 분께서 우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추스려야 할 줄 압니다. 두 분 모두 충분히 우호적인 상호비판 관계로 올라설 수 있다고 보입니다. 부디 두 분께서 학문적 우정을 쌓아가며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가을산 2007-02-2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윤상님, 난해한 책을 번역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번역자 입장에서는 오랜 고생 끝에 내놓은 책이 이런 서평을 받은 것이 속상하시다는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독자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 있을 때 이것이 원서의 잘못인지, 자신의 과문함 때문인지, 아니면 번역의 잘못인지 고민하는 때가 많은지라 carrot님의 글에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일일이 원서를 사서 확인할 수도 없고, 갑갑한 때가 많습니다

carrot님의 글은 감정적인 표현이 다소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 번역서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필요한 지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두 분께서 생산적으로 토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승주나무 2007-02-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애정의 과잉과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이와 같이 비판과 비난을 넘나드는 글을 쓸 때는 모든 독자들을 대표한다는 역할을 본의와는 상관 없이 갖게 됩니다.
하지만 독자님이 쓰신 설정에서는 '대표성'을 갖기에 다소 저어되는 표현을 쓰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좀 오버했다고나 할까요.
역자님은 작품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분이므로 이러한 비난을 일부 감수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역자의 대표성'이라고 한다면, 역시 역자님도 대표성을 갖기에는 다소 저어되는 점이 있다고 봅니다.
역자가 아니라 독자 대 독자의 충돌인 거죠. 안티 독자와 펜 독자 간의 충돌처럼요.
어쨌든 공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일들이기 때문에 '메일'을 이용해서 독자와 직접 대면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차라리 이와 같은 리뷰의 형식을 빌어서 독자의 글을 링크걸어 주고, 거기에 대한 해명을 조목조목 달아주고, 이로 인해 받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내용을 '제3자의 관점에 가깝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남은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쪽을 보아도, 저쪽을 보아도 다소 아쉬움이 많은 대목입니다.

번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고생합니다라는 말 밖에는..
저도 한문번역자를 꿈꾸는 입장에서 그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메이지유신 같은 게 필요하겠죠. 유신정권 말고요.. 주수구방이나 기명유신(周雖舊邦 其命維新 :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국운(국정방향, 철학, 정세 등이 종합된 개념)은 항상 새롭다)이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