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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우 시선 : 꿈속의 꿈 (레귤러판) ㅣ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공진호 옮김, 황인찬 서문 / 아티초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외래어 표기 규정에 따르면 에드거 앨런 포가 맞지만,
역자는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에드거 앨런 포우라 표기하였다. 리뷰에서도 그에 따르고저 한다.
포우는 주로 단편들로 유명하지만, 사실 청소년기에 시를 먼저 썼다. 그가 남긴 시와
비평들은 19세기 미국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까마귀The Raven」는 미국의 국민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생애를 설명하는
단어인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 소아성애는 유작 관리를 맡은 그리스월드의 악의적인 첨삭과 유포로 얻은 것이다. 오히려 가난이 그의 생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리라... 에드거는 3살이 되기 전 양친이 사망하여 위탁가정인 존 앨런 부부에 맡겨진다.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하나 이때쯤 존
앨런과의 사이가 나빠져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 우수한 학업 성적에도 불구하고, 술과 도박으로 인한 빚(상류층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함이었다는
말도 있다)이 많아지자 에드거는 대학을 중퇴하고 군에 입대한다. 복무기간 동안 인정 받아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하지만 사관생도로서 품위유지비조차
없어 자퇴를 결심한다. 그러나 존 앨런이 동의서를 써주지 않자 규율을 어겨 퇴학당한다.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볼티모어에서 고모 마리아 클렘을 만나 함께 산다. 가족들은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에 의존했지만 가난한 와중에도 사이는 좋았다 한다. 에드거는 외사촌 버지니아의 공부를 봐주며 창작활동에 전념한다. 1836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연금이 끊기자 가족을 책임질 필요성을 느낀 에드거는 버지니아와 결혼한다.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네살이었지만 당시 사촌 간
결혼, 어린 신부는 드물지 않았다. 에드거는 버지니아가 열여섯이 되어서야 부부로서 생활한다. 마약중독설은 사실무근이며, 버지니아를 잃고 우울증에
빠져 일시적으로 알코올중독에 이른 적은 있었지만 문예활동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독립신생국으로서 미국문학은 싹트던 시기였다. 에드거는 독자적인 문학 노선을 개척함으로써 미국 문학의 수준을 높인다. 그는 영국과 유럽을 휩쓴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화와 전설, 초자연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극단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작품에
투영된다.
포우의 시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그의 시론과도 관련이 있다. 그가 생각하는 시의 정수는
아름다움이고, 이를 잘 설명하는 것은 우울한 톤과 운율(음악성)이며, 그 소재는 미인의 죽음이다. 「애너벨 리」, 「울랄룸」 등을 생각해보면
된다. 사실 그의 시를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포우가 중시하는 시의 운율, 음악성은 '시를 위한 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그의
의도와도 관련있다. 시가 담아야 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운율이므로 번역본을 읽고, 원문과 대조하며 꼭 소리내어 읽어야 그의 의도를 알 것이다.
아티초크 출판에서 번역한 「꿈 속의 꿈」은 가장 최근에 나온 포우 시선으로, 간단한 작품 해설과 삽화가 실려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시선을
뒤잇는 안나 드 노아이유와 샤를 보들레르의 시선과 함께 〈다크로맨스 3부작〉을 이룬다. 미국의 대중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포우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것도 큰 기쁨이다...
지난 6월 작고한 크리스토퍼 리가 낭송한 「까마귀」이다. 원문은 영상 안에 있으며 번역된
시는 3연까지 올린다.
까마귀
어느 울적하고 깊은 밤
기운 없고 지친 나는 잊혀진 기이하고 진기한 이야기책들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꾸벅꾸벅 조는데 갑자기 똑똑 소리가 났다. 누군가 방을 살며시
두드리는 듯했다. 톡톡, 톡톡. "그냥 누가 찾아와 방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뿐이야." 나는
혼잣말했다.
아아, 쓸쓸한 십이월,
벽난로의 잿불이 방바닥에 허깨비 같은 그림자를 드리웠던 일이 생생하다. 나는 날이 밝기를 고대했다, 슬픔을 잊으려, 죽은 르노어, 그녀를 잃은 슬픔을 잊으려, 보기 드문 빛나는 소녀 르노어, 천사들이 이름 지은 르노어, 그녀를 잊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여기서는
영영(永永) 무명(無名)인 그녀, 영영.
나는 가만히 바스락거리는
부드럽고 슬픈 보라색 커튼 소리에 오싹해졌다. 처음 느끼는 근거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누가 늦게 찾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거야, 누가 늦게 찾아와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거야.
그뿐이야."
(중략)
-2015년 9월 15일 추가: 포의 알코올 중독에 대하여
본문에서 '마약중독설은 사실무근이며, 버지니아를 잃고 우울증에 빠져 일시적으로 알코올중독에 이른 적은 있었지만 문예활동에 지장을 주진 않았다.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라고 썼는데 리뷰 쓸 때 참고한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볼티모어의 에드거 앨런 포 학회' 홈페이지에서 본 '포와 약물, 알코올'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포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자료들을 볼 수 있고,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에서 확인바랍니다.
1. 볼티모어의 에드거 앨런 포 학회: http://www.eapoe.org/
(이 단체의 역사: http://www.eapoe.org/society/psbhist.htm)
2. 포와 약물, 알코올: http://www.eapoe.org/geninfo/poealchl.htm
다음은 2013년, 민음사에서 나온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에 실린 역자 해설 중 일부입니다. 전문은 책에서 확인 바랍니다.
3.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은 있었지만 술에 절어 살았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 무엇보다도 포가 이십 년가량의 길지 않은 기간에 발표한 수많은 시와 단편과 평론, 그 외에도 무기명으로 잡지에 실렸던 그 많은 글을 술에 취해 써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심하게 일에 몰두하는 일중독이 문제였다. 다만 아내 버지니아가 오랜 투병 끝에 1847년 결핵으로 사망한 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때도 버지니아 사후 이 년 뒤인 1849년에는 알코올중독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재기를 꿈꾸며 리치먼드로 돌아가 정착을 시도했다.」
다음은 D.H.로렌스의 『미국 고전문학 연구(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 6장, 에드거 앨런 포입니다.
4. 『미국 고전문학 연구』 6장: http://xroads.virginia.edu/~HYPER/LAWRENCE/dhlch06.htm
위키피디아도 훑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5. 위키피디아, 에드거 앨런 포: https://en.wikipedia.org/wiki/Edgar_Allan_P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