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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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몇 번 보았지만 막상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올해 출간된 <솔라>가 처음이다.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작가들 답지않게(?) 상당히 잘 읽히고 재미도 있어서 다른 책들도 전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라>는 그 제목처럼 태양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노벨물리학 수상자인 주인공이 태양광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다룬다. 소재만 들으면 상당히 지루할 것 같지만 내용전개가 완전 더글러스 케네디 뺨칠만큼 스펙터클하다. 5번의 결혼과 이혼, 외도, 발각, 성공, 좌절, 재기, 그리고 파멸. 전형적이고 자극적인 플롯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래서 초반에는 약간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재미있어서 좋긴한데 그렇다면 문학성이 높은 작품과 대중소설의 차이점은 뭐지?”하는 것 같은. 물론 읽을수록 선명히 느껴진다. 자극적인 소재를 통한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는 것이.

<솔라>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인 노벨 물리학 수상자 마이클 비어드의 여성편력과 그의 태양광 연구. 주인공은 못생겼지만 지성미로 어필하는 지식인 캐릭터로서 이성에게 유달리 관심이 많은데, 한마디로 여자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결혼을 무려 5번이나 했을 뿐 아니라 결혼생활 중에도 틈만 나면 바람을 피운다. 그는 유능한 동시에 대단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관계에 있어서는 상당히 불성실하다. 또한 그런 스스로에 대한 자기 객관화 따위는 전혀 없는데, 소설이 그런 주인공을 얼마나 무자비하고 거침없이 다루는지 읽으면서 아주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주인공에게 무자비한 작가는 오랜만이다. 건조하고 담담한 톤으로 전달되는 엄청난 시니컬함!

태양광 사업을 비롯하여 물리학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여간 소설 속 전개를 따라가기 위해 반드시 그 이론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궁금증이 생겨 물리학자인 남편에게 읽어주면서 이거 맞는 말이야? 하고 물어보았더니 개소리라고. 다 떠나서 상당히 재미있다. 그럼 된거지 뭐.

환경보호를 합시다, 지구를 지킵시다, 와 같은 교훈적인 내용은 1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왠지 모를 위기의식까지 느껴지는 것은 덤. 이런 것이 거장의 힘인가.

마지막 문장은 이 소설의 핵심이자 백미이다. 너무나 완벽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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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4분 뒤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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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자정 4분 뒤>를 읽었다. 93년도에 출간되었던 <환상특급>이라는 소설의 개정판으로 올해 제목을 바꿔 새롭게 출간되었다. <사계>의 뒤를 잇는 책이라기에 더 생각하지 않고 집어들었다. 그런데 아니 이보시오 작가양반, 중단편집이라니요.

<자정 4분 뒤>는 총 4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각각의 분량이 무려 300페이지에 달한다. 누가봐도 그냥 장편소설 4권이다. <사계> 역시 단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었지만 거기 실린 4편의 소설이 모두 200-400페이지에 달했었는데 역시나...그나마 이번에는 ‘단편’이 아닌 ‘중단편집’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장편이란 무엇일까, 1000페이지 정도는 되어야 장편으로 인정해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는 2권을 사서 4권 분량을 읽을 수 있어 좋지만 같은 작가의 장편소설을 연달아 4편을 읽는 느낌이라 중간에 살짝 지겨움을 느끼게 되는 면도 없지 않다.

<랭골리어>, <비밀의 창, 비밀의 화원>, <도서관 경찰>, <폴라로이드 개> 총 4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지라 <사계>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캐리>나 <샤이닝> 같은 본격적인 공포를 다루는 것은 아니어서 호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적당히 볼 수 있는 수준 같다. 미국 드라마 <The Twilight Zone> 시리즈 느낌도 살짝 난다. 국내에는 <환상특급>으로 소개되었는데 일드 <기묘한 이야기>의 미국 버젼으로, 오래되었지만 지금 봐도 꽤 재미있다.

<랭골리어>에서는 비행 중 눈을 떠보니 기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비밀의 창>은 한 유명 작가가 표절시비에 휘말린 사건을 다룬다. <도서관 경찰>은 한 남자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연체했다가 큰일을 당하는 이야기이며, <폴라로이드 개>에는 자꾸만 이상한 개가 찍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등장한다. 솔직히 <사계>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4편 모두 무척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늘 느끼지만 스티븐 킹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설명이 좀 불필요하게 긴 듯한 부분이 많다. 본인의 다른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제발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짧게 짧게 쓰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서관 경찰 - 비밀의 창 - 폴라로이드 개 - 랭골리어 순으로 재미있었다. 특히 도서관 경찰은 도서관에서 책 빌리고 제때 반납 안하면 ㅈ 된다는 이야기를 아주 길게 풀어놓은 느낌이라 무척 흥미로웠다고나. 예전에 대학교 도서관에서 어떤 사람이 책 빌려간 뒤 몇년간 반납을 안해서 연체료가 100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음...그 런 분들이 이 책을 읽어야 됨.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내가 예약한 책 빌려간 뒤 반납 안 하는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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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4분 뒤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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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자정 4분 뒤>를 읽었다. 93년도에 출간되었던 <환상특급>이라는 소설의 개정판으로 올해 제목을 바꿔 새롭게 출간되었다. <사계>의 뒤를 잇는 책이라기에 더 생각하지 않고 집어들었다. 그런데 아니 이보시오 작가양반, 중단편집이라니요.

<자정 4분 뒤>는 총 4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각각의 분량이 무려 300페이지에 달한다. 누가봐도 그냥 장편소설 4권이다. <사계> 역시 단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었지만 거기 실린 4편의 소설이 모두 200-400페이지에 달했었는데 역시나...그나마 이번에는 ‘단편’이 아닌 ‘중단편집’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장편이란 무엇일까, 1000페이지 정도는 되어야 장편으로 인정해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는 2권을 사서 4권 분량을 읽을 수 있어 좋지만 같은 작가의 장편소설을 연달아 4편을 읽는 느낌이라 중간에 살짝 지겨움을 느끼게 되는 면도 없지 않다.

<랭골리어>, <비밀의 창, 비밀의 화원>, <도서관 경찰>, <폴라로이드 개> 총 4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지라 <사계>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조금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캐리>나 <샤이닝> 같은 본격적인 공포를 다루는 것은 아니어서 호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적당히 볼 수 있는 수준 같다. 미국 드라마 <The Twilight Zone> 시리즈 느낌도 살짝 난다. 국내에는 <환상특급>으로 소개되었는데 일드 <기묘한 이야기>의 미국 버젼으로, 오래되었지만 지금 봐도 꽤 재미있다.

<랭골리어>에서는 비행 중 눈을 떠보니 기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비밀의 창>은 한 유명 작가가 표절시비에 휘말린 사건을 다룬다. <도서관 경찰>은 한 남자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연체했다가 큰일을 당하는 이야기이며, <폴라로이드 개>에는 자꾸만 이상한 개가 찍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등장한다. 솔직히 <사계>만큼의 감동은 없었지만 4편 모두 무척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 늘 느끼지만 스티븐 킹은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설명이 좀 불필요하게 긴 듯한 부분이 많다. 본인의 다른 책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제발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짧게 짧게 쓰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서관 경찰 - 비밀의 창 - 폴라로이드 개 - 랭골리어 순으로 재미있었다. 특히 도서관 경찰은 도서관에서 책 빌리고 제때 반납 안하면 ㅈ 된다는 이야기를 아주 길게 풀어놓은 느낌이라 무척 흥미로웠다고나. 예전에 대학교 도서관에서 어떤 사람이 책 빌려간 뒤 몇년간 반납을 안해서 연체료가 100만원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음...그 런 분들이 이 책을 읽어야 됨.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내가 예약한 책 빌려간 뒤 반납 안 하는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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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사울 레이터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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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하고는 한다. 화가들은 눈에 필터가 달렸나? 평범한 나무가, 꽃이, 풍경이, 지나가는 행인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특별한 모습으로 재탄생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에게는 단순한 색이 다양한 빛깔로 표현되는 것은 볼 때마다 놀라웠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는 유명한(비록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사진 작가인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그림들이 1-2줄 정도의 짧은 단상들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사진에 문외한이며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한 눈에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특별한 작품들이었다.

좋은 사진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름에도 무언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한, 그 전과 후를 상상하게 만드는 사진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진과 그림을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한 장 한 장이 미술관에 걸린 그림들 같았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 속에서는 하다못해 마네킹마저도 살아 숨쉬는 듯 했다. 예술가의 눈이란 이렇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사울 레이터는 화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가 사진을 해보라는 권유를 듣고 사진가로 전향했다. 이후 30년간 성공적인 사진가로 활동했는데, 영화 <캐롤>의 감독인 토드 헤인즈 역시 캐롤을 제작할 당시 사울의 사진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캐롤>은 내용도 좋지만 영상이 특히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 책에는 이제껏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그림들도 같이 실려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같이 작업을 하면서도 밤마다 그림을 그렸다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정말 아름답고 독특한 작품들이라 놀랐다. 더불어 자신의 분야에서 그토록 인정받는 예술가였음에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림에 대한 열망과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요하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진 및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그림(사진)과 아주 짧은 글만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동안 싱크대 앞에 서서 다 읽었다. 참고로 사진을 볼 때는 꼭 제목을 같이 봐야 한다. 단순하지만 기가 막히게 특징을 포착해낸 제목에서 그의 은은한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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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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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지하철 역마다 강아지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대역에도 매일같이 한 아주머니가 3번 출구 계단의 중간 부분에 앉아 있곤 했다. 앞에는 뚜껑이 없는 과일상자 크기의 작은 박스가 놓여 있고 안에는 태어난지 한달이 될까 싶은 어린 강아지들 7-8마리가 서로 붙어서 꼬물거렸다. 말티즈, 요크셔 테리어, 슈나우저, 골든 리트리버. 한동안 후문에서 바로 타기만 하면 되는 버스 대신 일부러 멀리 돌아 지하철역까지 걸어다녔다. 강아지들을 보기 위해. 아주머니가 ‘싸게’ 준다며, 만져보라고 권하면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러던 어느날인가는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강아지들을 만지고 말았다. 말티즈 한마리가 내 손가락을 물었다. 간지러웠다. 그런데 손가락이 물린 순간 전기라도 흐른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품안에 강아지가 있었다. 7만원이었다. 부모님께는 친구네 집에서 쫓겨난 강아지를 데려간다고 말했다. 아빠는 좋아했고, 엄마는 화를 냈다. 그때는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어서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강아지는 엄청나게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 상태였다. 잘 씻기고 먹이고 정성스럽게 돌봤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엄마도 어느새 정을 붙여 귀여워했다. 한달 정도 잘 놀던 강아지는 어느날인가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개에게 치명적인 파보와 코로나 장염이었다. 병원에서는 둘 중 하나씩만 걸려도 치사율이 70, 80%인데 둘 다 걸렸으니 95% 확률로 죽을 것이라며 안락사를 시키라고 했다. 됐다고, 안된다고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울고난 다음날 지하철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따졌다. 건강하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병든 강아지를 팔면 어떡하냐고. 다 죽게 생겼다고.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그럼 대신 다른 강아지를 하나 골라서 데려가라고 했다. 교환해준다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미안해보이는 얼굴도 없었다. 나는 아무말 없이 돌아섰다.

집에 돌아온 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강아지를 다시 동물병원에 데려가 소용없다는 수의사에게 난리를 쳐서 링거를 맞추고, 온가족이 일주일 넘게 달라붙은 끝에 어찌어찌 살려냈다. 그 강아지가 올해로 15살이 되었다. 이후로도 가끔씩 박스에 담겨있는 강아지들을 보면, 그때의 강아지들이 생각나곤 했다. 장염은 전염성이 강해서 아마 그 박스 안에 담겨있던 녀석들이 전부 감염이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죽었겠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서 어떻게 죽었을까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괴로워졌다. 강아지는 간신히 살려냈지만 그 때의 기억이 너무 괴로워서, 지금은 햄스터 한마리조차 기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생명을 기르는 것은 너무나도 무거운 일이다.

하재영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번식장, 개농장, 유기견 보호소, 도축장, 보신탕 업소 등을 다니며 한국 개 산업의 실태를 다룬 르포이다. 소설가인 하재영 작가는 어느날 우연치않게 지인으로부터 처치곤란 신세가 된 피피를 떠맡게 되고, 동물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동물복지 단체에서 활동을 하다 본격적인 르포를 쓰게 된다. 책에는 번식업자, 개농장주, 유기견 보호소장, 개 미용업자, 도축업자 등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간혹 동물농장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참한 상태로 살아가는 개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태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눈물이 나와 읽기가 어려웠다. 번식장의 개들은 평생을 강간(개들도 강간을 당하면 충격을 받는다. 암컷 뿐 아니라 수컷인 종견들도 강간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계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수컷을 인간들이 억지로 발기시킨 후 암컷의 생식기에 강제로 집어넣고 빼지 못하게 붙드는 방식으로 교배가 이루어진다고)을 통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그렇게 낳은 새끼를 바로 빼앗기는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체념하거나 미쳐버린다.

식용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개농장의 개들이나 관리가 안되는 유기견 보호소의 평생을 제대로 된 물을 마셔보지 못하고, 학교 급식소 등의 음식물 쓰레기 등을 먹으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음식물 수거 업체로 인증을 받기 위해 유기견을 데려다놓고 그대로 방치하여 좁은 우리에서 몇십마리의 개들이 굶어 죽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처벌받지 않는다. 한국은 동물관련법안이 매우 약한 국가여서 옥상에서 강아지를 떨어트려 죽이거나 남의 개를 훔쳐다 불에 구워 먹어도 벌금 몇십만원으로 끝난다. 그나마 ‘재물 손괴죄’를 적용할 경우에 이렇다.

책에서는 이와같은 개의 복지 관련한 문제의 근본원인이 개식용에 있다고 지적한다. 흔히 애완(반려)견과 식용견은 따로 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개는 가축이지만 축산물 관리 위생법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식품으로서 관리가 되지 않는 무법지대에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유기견을 비롯하여 타인의 반려견을 그냥 데려다가 잡아먹는 경우도 생기며 온갖 개들이 쓸모(애완, 번식, 기타 등등)가 없어지면 최종 결말이 고기로 전락한다. 살이 없는 소형견은 개소주를 만들 때 이용된다. 그럼에도 개는 식품이 아니기에 규제에서 벗어난다. 가축으로서 관리되지도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먹거나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된다.

그렇다면 ‘합법’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합법화에도 비용이 들기에 점점 줄어드는 제한적인 개식용 인구를 위하여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식용견’은 결코 식용이라 상관없다고 따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개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서로 얽혀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보신탕 논란이 있을 때마다, 보신탕을 먹지 않지만 보신탕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개를 제외한 다른 동물들을 먹고 있고, 앞으로도 안 먹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이미 동물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것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상황에서 무언가를 취사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다. 즉 소고기는 먹지만 개고기는 먹지 않을 수도 있고, 생선은 먹지만 랍스터는 먹지 않을 수도 있다.(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에세이 <랍스터는 생각해봐>에는 랍스터를 산채로 물에 끓이는 요리 방법을 예로 들면서 실은 랍스터가 보기와 다르게 엄청나게 통증에 예민한 생물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목소리 앞에서 그럼 소는? 돼지는? 닭은? 오리는? 생선은? 이라고 조롱하듯이 반박하지만, 이와 같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이야말로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문제에 관심이 있어도 계급문제에는 무심하거나, 노동문제에는 관심이 있어도 여성문제에는 편협한 사람들이 적지 않듯이, 빈민계층을 위해 애쓰면서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도 있듯이 모든 사람이 모든 부분에 대해 무결할 수 없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이제는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종”이나 “생명” 별로 차등을 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 책에서는 말한다.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하잖아요.”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더 괴로웠다. 채식 문제는 상당히 예민한 주제이다. 채식 뿐만이 아니라 먹는 문제가 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과 서평은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하고 또 불쾌할 수 있다. 채식과 관련한 첨예한 논란들이 떠오르니 골치가 아팠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불편함과 괴로움만이라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평생동안 고기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더라도, 그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알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은 육식을 비난하거나 금지를 촉구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니다. 계몽적이지도 않다. 다만 우리에게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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