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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
조금 멀게는 김영하 작가님부터 가깝게는 같은 동네에 사는 오래된 친구까지 주변에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작년 타계 소식을 듣고 더 이상 신작을 기다릴 수 없는 작가님이 되었다는 걸 아쉬워하는 소리 역시 많이 들었는데, 그런 팬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타계 1주기에 맞춰 폴 오스터의 생애 마지막 작품 <바움가트너>가 출간되었다.


왜 내가 아니어야 하나요?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본문 중 41p)
<바움가트너>는 아내 애나를 떠나보낸 후 혼자 살고 있는 '바움가트너'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어떠한 계기로 '환지통'에 관심을 가진 후 자신이 환지통을 앓듯 애나를 그리워한다는 걸 느끼고 그 과정을 되새겨본다. 그들이 서로 만나기 이전의 애나부터, 서로가 만나 함께하던 애나, 그녀가 남긴 작품들(글과 그림, 기타 등등) 속 애나,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과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빠르게 돌아본 후 그는 환지통 에세이를 쓰는 일에 파묻혔다. 바움가트너는 누군가를 애도하는 동안의 정신적 '고통이 신체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69p)
환지통처럼 상상 속의 애나가 늘 곁에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곤 하지만, 이 소설은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자를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전부인 소설이 아니다. 아내가 떠난 후로도 꾸준히 이어진 바움가트너의 일상을 띄엄띄엄 보여주는 한편,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애나를 시작으로 곧 자신이 거쳐온 수많은 과거를 회상하고 그 당시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그 모습들을 상상한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 되돌아본 찬란한 기억의 파편들, 지나고 보면 평범하지만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모험과 같은 현재의 소소한 사건들은 교차되어 등장하고, 이 소설 자체를 무척 풍성하게 만든다.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말' 속에서 주인공이 실제로 겪어내는 시간(인생 전체 중 약 2년)과 원고의 물리적 분량이 적은 것에 비해 길고 풍성한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어쩐지 알 것 같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장면들을 주로 다루면서도 주인공을 한껏 들었다 놨다 하는 활극처럼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신기했다. 과거와 현재가 매끄럽게 교차하는 부분을 읽다 보면, 마치 한 사람이 아무리 큰 이별과 상처를 겪었어도 매일이 모험 같은 오늘을 또 마주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매력적이라는 표현이 꽤 잘 어울리는 소설. 서평을 마무리한 후 꼭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남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