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당신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친절로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갑작스러운 능력으로도.
-139p

나중에, 앞으로 다가올 세월 동안 패티는 그들이 계단에 앉아있던 것과, 그것이 시간의 바깥에서 일어난 듯 느껴졌던 것을 되돌아볼 것이었다. 길 건너 철물점이 있었고, 더 멀리로는 오후햇살을 받아 건물 측면이 환히 빛나는 파란 집이 있었다. 패티의마음에 키 큰 하얀 풍차들이 떠올랐다. 그 길고 가는 팔들은 일제히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이따금 풍차 두 개의 팔이 동시에돌며 하늘을 배경으로 같은 위치에 놓일 때를 빼고는 결코 똑같이 돌지 않았다.
-84p, <풍차>

그는 침묵과 함께 방안에 홀로 남아, 앞서 중단된 그것, 지금 그에게 다시 돌아온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거대한 고요였다. 오래전 그는 그것에 자기만의 이름을 붙였다. 엄지 치기 이론, 어린 시절 어느 여름에, 할아버지 집 지붕 위에서 망치로 타일을 세게 내려치다 알아낸 사실이었다. 실수로 엄지를 내려쳤을 때, 이것 봐, 그렇게 세게 쳤는데도 많이 아프진 않은데…하고 생각되는 찰나의 순간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어 어리둥절한 채 다행이라고 느끼며 안도하는 착각의 순간이 지난 뒤 살을 짓이기는 진짜 아픔이 몰려왔다. 전쟁에서도 이런 일이 수시로, 여러 형태로 일어났기에 그는 이따금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그의 이론은 그만큼 잘 들어맞았다 생각하곤 했다.
-137p, <엄지 치기 이론>

그는 오래전 자기 자신을 극심히 더럽힌 찰리였기에, 그는 찰리이고 다른 누군가가 아니었기에, 그는 아들에게 이 말을 할 수없었다. 너는 품위 있고 강하지만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단다. 네 어린 시절이 온통 장밋빛은 아니었는데도 너는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어. 나는 네가 자랑스럽고 네가 놀라워.
찰리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건 그 감정을 희석시킨 말조차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어서 오라고 하면서, 혹은 잘 가라그 하면서 아들의 등을 툭툭 칠 수조차 없었다.
-1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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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날 사랑하지 않아서 때리지 않았다는 내 불평이 꼭찍한 자기연민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 난 이제 늙었다. 뼛속은 숭숭 비었고 머리카락은 희어졌으며, 호흡은 느리며 얕아졌고, 식욕도 변변치 않다. 내 정당한 몫보다 더 많은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었고, 이젠 살 만큼 살아서 자기연민은 더이상 처량한 정신적 습관이 아니라 불가피한 사멸에 대한 두려움의 열기를 식혀줄 이마 위의 차가운 물수건 같은 것이다. 불쌍한 나, 그래, 불쌍한 나. 젊었을 때는 신체적 평안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누구나 자신이 막강하다고, 알 건 다 아니까 어리석은 경고에 귀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나를 X빌 밖으로 이끈 건 그런 종류의 용감한 아둔함이었다.
-316p

우리 가족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끔찍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당신들보다 특별히 더 나쁠 것도 없었다. 우리의 결말, 우리에게 생긴 일은 그저 운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그 현관문을 완전히 닫았다. 그때 마치 하느님의 의지가 작용하기라도 한 듯, 마당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고드름 하나가 갈라졌고, 내 볼을 향해 떨어진 그 고드름은 예리한 칼날처럼 눈에서 턱까지 길게 긋고 지나갔다. 아프지는 않았다. 약간 따끔했을 뿐이다. 피가 고이는 느낌이 나면서 한기가 유령처럼 상처로 스며들었다. 나중에 남자들은 그 상처가 개성적이라고 말했다. 한 남자는 얼굴 아래로 그어진 그 선이 빈 무덤 같다고 했다. 다른 이는 눈물 자취라고 불렀다. 내게 그것은 언젠가 다른 사람이었다는, 탈출한 그, 탈출한 그 젊은 여자 아이린이었다는 표시일 뿐이다.
-3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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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음과 관련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숙취가 있는 다음날 어떤 시점에서 느껴지는 열의와 활력이었다. 때로는 어떤 맹목적인 흥분을 가져왔다. 조증, 지금은 그렇게 불린다. 그런 좋은 기분은 항상 정오쯤이 되면 잦아들어 우울로 바뀌었지만, 일요일 아침의 그 밝은 빛 속에서 나는 미시즈 뷰엘에게 돌려줄 책을 반납구애 밀어넣고 보스턴으로 드라이브를 가겠다고 결심했다.
-112p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 짓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삐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진지했던가? 그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내 모든 은밀한 비참함이 바로 그때 강력한 화폐로 전환된 거나 다름없었다. 리베카가 내 허세를 꿰뚫어봤던거라고 지금은 확신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굉장히 순조롭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봐요.˝ 내가 말했다. 너무 세게 들이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고, 리베카가 다 시 사무실을 통과해 복도를 날아가듯 걸어가는 모습은 침침한 형광등 불빛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국적인 새나 꽃 같았다. 나는 뒷짐을 지고 곡조도 없는 휘파람을 불며 기계적인 경보 걸음으로 책상으로 돌아갔고, 내 세계는 탈바꿈해 있었다.
-144p

어른 여자는 코요테와 같아서 아주 적은 자원으로도 살아나갈수 있다. 남자들은 집고양이에 가깝다. 너무 오래 홀로 두면 슬퍼서 죽는다. 이 약함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남자들을 사랑하게되었다. 감정이 풍부하고 날마다 변화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서존중하려 해왔다.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X빌에 사는 젊은 여자였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남자건 여자건 - 이 나만큼 깊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몰랐다.
누군가의 고통이 내 고통에 탐닉할 기회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했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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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필수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것은 참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부역자들의 정부가 매일매일 바보스러운 윤리적 훈화들 하느님을 경배하라고 일깨우거나, 가족의 원칙을 존중하라거나, 전통적 미덕을 지키라는 등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그녀에게 어린 시절 그리도 증오했던 ‘부르주아들의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폭력의 위협이 그 뒤를 봐주고 있었다. 아, 하지만 어쩌면 그런 말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폭력의 위협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와 사르트르는 이런 확신을 그들의 정치관의 핵심으로 놓게 된다. 그들은 듣기 좋은 소리의 부르주아 가치관을 결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신용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점령치하 프랑스의 협잡정권 체제 동안에 이런 태도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233p

“자유를 찾은 첫날 밤, 내 고향 도시의 이방인으로, 이전 날들의 친구들과 아직 연락하지 않은 채, 나는 어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갑자기 나는 어떤 두려움을 어쩌면 두려움에 가까운 어떤 감정을 느꼈다. 나는 이렇게 납작하거나 삐죽한 건물들 속에 그런 사막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길을 잃었다. 술을 마시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별들보다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각자 벤치의 넓은 공간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 ....… 각자 제한된 공기로 희미하지만 편안하게 일렁이는 유리관 속 호롱불 같은 사람들,
이들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더 이상 내 손을 그들의 어깨나 허벅지에 올려놓거나 그들 중 하나를 얼간이‘라고 부를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부르주아 사회로 들어온 것이다.”
-236~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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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로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광장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뒤섞이는 광장에서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나 민주주의는 그러한 갈등을 통해서만 생성된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경험은 힘들고 두려운 것일 수 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해자가 될 각오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회피하고 있는 한, 세상은커녕 나 자신도변할 수 없다. ‘착한 방관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란 가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며,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치는 올바름이라는 규범적 사법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다른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그 의미에서 정치의규범화이며, 더 분명하게 말하면 정치의 죽음이다. 광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규범을 도입하는 것은 광장의 힘을 분열시켜 약하게 만들 뿐이다.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주인집은 결코 주인의 도구로 해체할 수 없다」라는 글에서,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여성들에게 생존이란 “우리의 차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우는 일이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힘(strength)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지닌 수많은 차이들을 우리의 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그 차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움이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상호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생성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광장의 경험을 새로운 사회의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존의 ‘나‘를 깰 수 있는 이러한 배움을 시작할 용기이다.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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