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이름이 없다
위화 지음, 이보경 옮김 / 푸른숲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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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 다섯 + 여자 셋, 그러니까 합이 팔인분의 저녁이 모여서 식사를 한다. 위화의 말처럼 '남자들의 말솜씨는 유창했고 여자들의 교태는 사랑스러"웠던 저녁, 유독 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이 마얼이라나? 뭐라나?(최소한 인명만이라도 한자를 병기해주면 어떨까?) 마얼은 이제 여섯번째 새우를 입에 넣고 있는 참이다. 갑자기 대화가 끊긴 탓인지 모두들 마얼의 식사장면을 주목하게 되고.., 놀랍게도 마얼의 입속에 통째로 들어갔던 여섯번째 새우가 다시 튀어나온다. 비록 알맹이는 모두 마얼의 위장 속으로 사라진 뒤였지만 껍데기만은 여전히 '조금도 부서지지 않은 완전무결한 새우 한마리'의 모습으로 식탁 위에 다시 남아있다. 이제, 내용은 없고 형식만이 남는다. 아니, 알맹이는 사라지고 포장(껍데기)만이 남아 있다. 남자 다섯 명, 그러니까 오인분의 식사한도를 넘어선 여섯번째 새우요리 덕분인지 마얼은 남은 세 명의 여자 가운데 한 명인 뤼위안의 남편이 된다. 어쩌면 '뤼위안이 마얼의 아내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숫자 6을 둘러싼 위화의 이상한 계산법 탓에, 둘은 '정확하게' 여섯달 뒤에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식사모임에 합석했던 나머지 두 명의 여자들 또한 결혼을 하지만 그들의 결혼상대는 이 날의 저녁모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 멋진 단편에서 8인의 저녁회동은 마얼과 뤼위안이라는 두 명의 '애프터 결혼스토리'를 예고하기 위한 전경에 지나지 않게 되는데..., 하지만 새우의 알맹이를 꿀꺽 삼켜버린 마얼에게 남겨진 것은 오로지 지나치게 말끔한 새우껍질밖에 없다는 불행한 역설. 남아 있다라는 말이 던져주는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배경스러움 혹은 껍질스러움. 위화는 다시 1996년 6월 30일이라는 은근한 숫자의 장난질을 치면서 이 둘의 결혼생활의 알맹이를 추적해들어간다. (그런데 도대체 진짜로 1996년 6월30일에 중국 어쩌면 상하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거지?)


 

 

 

 

 

 

 2. 언젠가 어디선가 노먼 메일러의 <요가를 연구한 사나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지금 알라딘에는 없다.)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보니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출판사에서 2004년 발매한 적이 있고 이북라이브러리라는 곳에서 전자책 형태로 대출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어쨌거나 얼핏 제목만 보면 상당히 웰빙스러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가는 정직하게 말하자면 요가가 아니라 포르노이다. 아마도 60년대(혹은 50년대인지도 모른다. 기억이 가물가물~) 미국의 정치적 긴박감을 살포시 배경으로 깔고 있는 이 소설은 금지된 포르노를 집단으로(그것도 부부동반으로)  보는 행위가 가져오는 두려움, 설레임, 죄스러움, 해방감, 연대의식등을 절묘하게 버무려놓은 걸작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여섯번째 새우요리가 맺어준 중국인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단편의 제목이 <왜 음악이 없는 걸까?>인 이유 역시 포르노에서 출발한다. 아마도 잘 나가는 아내일 것이 분명한 뤼위안이 상하이로 출장을 간 사이(위화는 등장인물들의 직업을 밝히지 않고 있다.) 마얼은 자신의 친구이자 아내의 숨은 정부인 궈빈으로부터 심심파적용 포르노 테이프를 입수하게 된다. 그러나 <요가를 연구한 사나이>의 포르노가 느슨한 집단의식에 기초한 관람용 포르노였던 것에 반해 <왜 음악이 없는 걸까?>의 포르노는 아내와 숨은 정부인 궈빈의 섹스장면을 담은 셀카포르노라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그리고 아직 셀카포르노의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편인 마얼이 중얼거리는 대사가 이 단편의 제목이 된다. 마얼은 두 사람의 섹스장면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왜 음악이 없지?", 다른 말로 하자면 '왜 배경이 없지?', '왜 껍질이 없지?' 그리고 또 한심하게 중얼거린다. "황색 비디오에는 음악이 원래 없는 걸까?" 결국 남편이라는 껍데기, 부부라는 껍데기, 그리고 삶이라는 껍데기만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뱉어버린 새우요리의 껍질로 남아 있는 삶. 그렇다고 그것마저 삼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3.  셀카 포르노 속의 등장인물인 아내는 자신의 정력이 남편보다 세냐?는 정부의 정력중심주의적 질문에 웃으며 대답한다. "그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만약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마얼의 아내인 뤼위안이 읽고서 짖궂은 장난을 쳤다면 이런 식이 될지도 모른다. "마얼, 너는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어쩌면 마얼은 여섯번째 새우요리를 먹던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뜨거운 사람으로 행세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순간마저도 우연이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일 뿐, 자신의 열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배경이자, 빈 껍데기이자, 속빈 강정이자, 불한번 붙여보지도 못하고 부서진 시커먼 연탄부스러기일지도 모르는 마얼이 외친다. "사실, 나도 움직였다고...", "제일 중요한 순간엔 나도 움직였어!" 그리고.., 그러나.., 그리하여서..,그렇지만..,그걸로 끝이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침은 외침으로만 끝난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뜨겁지 않은 부부사이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고 도시의 가장 먼 곳에 산다는 마얼의 친구이자 아내의 정부 또한 여전히 이 집구석을 들락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는 것이다.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는 남고, 다시 껍데기가 알맹이가 되고, 알맹이는 다시 껍데기가 되고, 배경음악 없는 포르노는 너무너무 알맹이같아서 도리어 껍데기처럼 보이고, 중요한 순간의 움직임이라는 외침은 부질없는 삶의 맥락 속에서 오히려 허황된 비누거품처럼 보이고, 천안문 사태가 되었건 광주가 되었건 그 누구의 가슴에도 뜨거운 핏덩이 하나쯤은 움켜쥐고 살았을텐데, 열정에도 서열이 서고, 분노에도 레벨차가 있고, 자유에의 기억은 회고조의 폭력이 되고.., 그러니까 위화선생님의 주의주장은 밥이나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말씀. 그나저나 오늘따라 중국음식이 땡기는데 저기 있는 저 천안문 식당은 어드메쯤 있는 식당이려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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