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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변형 가족 - 결연 후원으로 만난 두 남자의 대환장 가족 체험기
이회 지음 / 이르비치 / 2024년 11월
평점 :
기출 변형 가족
#이회 #이르비치
도서관 신착 코너에서 발견하고 빌려온 책 <기출 변형 가족>. 제목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딱딱했고 해석을 필요로 하는 제목이지만 사실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사각형 각 변마다 사람이 그려진 표지를 바라보았다. 다른 연령대의 남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방향을 걸어가고 있었다. 표지 왼쪽 상단의 '결연 후원으로 만난 두 남자의 대환장 가족 체험기'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요즘 내가 겪지 못한 인생 이야기에 혹하는 시기이기에 읽기로 결심했다.
제목과 표지 그림만큼 딱딱한 내용일까 걱정했던 마음은 첫 이야기를 읽으며 사라져 버렸다. 대신 '좋다'라는 혼잣말이 여러 번 나왔다. 작가의 필력도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도 좋았다. 책이 술술 읽혔다. 첫 이야기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법원 공무원인 작가가 직장(법원)에서 만난 아이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이들, 해외결연 인연을 맺게 된 아이들의 공통점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염치와 눈치를 상실한 어른들을 볼 때면 아이들이 떠오른다. 장발장, 상우, 하나와 짧은 머리 소녀들, 예샤, 법원에서 만난 아이들… 이들의 공통점은 가정이 아이들을 보호해 줄 만큼 튼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라서 어떻게 될까.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려 법원 같은 곳에 들락거릴 일이 없는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53)
아이들을 바라보며 작가는 질문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만들 수는 없을까? 작가의 이런 물음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마 지금도 그런 물음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작가의 물음을 함께 고민하다 보니 책에 더 몰입해버리게 된 나였다. 작가가 결연 후원으로 만난 원이와의 8년간의 기록으로.
<기출 변형 가족>은 작가의 질문과, 작가가 구하는 답과, 작가의 행동과 삶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기출 변형 가족'이 도대체 뭔지에 대해서. 작가는 정형화된 가족의 모습(부모와 아이로 구성된)을 기출문제와 같다고 생각한다.
시험마다 정형화된 문제 유형이 있다. 시험을 앞둔 사람들은 기존에 나왔던 문제를 풀며 유형을 익힌다. 이미 출제됐던 문제를 기출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기출문제와 비슷한 듯 다르게 비틀어 놓은 문제를 기출변형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족‘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형화된 기출문제와 닮아있다. 남녀가 만나 결혼해서 아기가 태어나고 가족이 형성된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다시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다. 이 과정을 수 세기 반복한다.
그런데 정형화되지 못하거나 정형화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 원이는 타의에 의해 가족이라는 범주에 들지 못했고, 부모가 있음에도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기출과 기출변형의 경계에 있으며, 나 역시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았으니 정형화를 거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을 만들 수 없는 걸까? 정형화에서 벗어난 사람들끼리 가족을 꾸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46-147)
책을 읽는 내내 '겪는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겪으며 알아가게 되는 것들의 울림이 큰 이야기들이었다. 좋은 마음과 예상치 못한 상황과 기대와는 다른 결말들이 이어졌다. 기사로는 접할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 이야기들이 여러 생각을 갈래로 뻗어나갔다. 한 생명을 키워내는 것에 대해서, 어른의 역할에 대해서, 사회시스템에 대한 생각과 의문과 과제들이 끊임없이.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담고 있는 이야기의 울림이 큰 책이다. 특히 어른 됨에 대해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결연과 후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사회의 구성원인 아이들을 키워간다는 생각의 관점이 바뀔 것 같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다. 꼭 읽어보라고. 아무 정보 없이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정말 행복해진다.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육체나 재산만이 아니다. 습관과 사고방식,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물려받는다. 특히나 형사사건에 휘말린 피고인들을 접하다 보면 그들 역시 자기 부모로부터 폭력적이고 누추하고 비참한 것을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불행도 세습된다. 학대당한 아이가 부모가 되어 제 자식을 학대한다. 학대의 사이클이 돌고 돈다.(34)
아이들을 버리거나 학대하지 않고 보살피는 부모들은 이미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자기 자녀들이라서 당연하게 생각하니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 당연한 것을 못해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면 당연한 일을 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68)
결연후원을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지면을 빌려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이 말을 동정심이나 선민의식을 품고 후원을 결정했다면 그 생각을 거둬두길 바란다. 단언컨대 아이들은 착하고 순수하지 않다. 일부는 상상 이상으로 영악하고 현실 파악을 잘 한다. 현실 파악을 잘 한다는 말은, 어지간히 물렁한 어른 정도는 손쉽게 찜쪄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상처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찢어진 곳에 여린 마음 대신 냉소와 불신이 돋아나 상흔이 남은 존재들이다. 이런 존재를 천사 같은 아이로 착각해 접근했다가는 등을 돌린 수많은 후원자와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72)
아이들에게 실망할 때마다 나는 앤젤리나 졸리의 말을 떠올린다. 그녀가 난민 봉사 중 한 아이에게 한 말이 한때 회자한 적이 있었다.
“아가야,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거야.”
나는 이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긴다. 만약 누군가를 후원하고 싶다면 동정심부터 버려주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면, 그것은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고 함께 살아갈 사회읭 구성원이자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74-75)
원이가 더 똑똑하고 재우가 어리숙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보육원에서 하루아침에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의 차이였다. 그게 가족, 그중에서도 어른의 역할이다. 인터넷이 제아무리 정보의 바다라고 한들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아이들에게는 늘 가까이에서 조언해 줄 어른이 필요하다. (192)
나 하나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예샤가, 평범한 청년으로 자란 진원이가, 성실한 학생으로 지내는 성경이와 남주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니. 나 하나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천지개벽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내가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한다. (266-267)
나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야말로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버림받은 아이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분노를 먹고 자라 해를 끼쳤을 때,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나 또는 내 가족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대가는 언젠가 누군가 반드시 돌려받을 것이다.
나는 모든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 사회의 구성원이 되길 바란다. 많은 어른이 보호아동들의 삼촌이자 이모이자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어주길 희망한다. 그렇게 많은 기출 변형 가족이 탄생하길 바란다. (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