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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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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서윤후 #최다정 #열린책들


방과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나. 벽과 문이 굳건하게 서있는 공간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방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쓴 에세이에 호기심이 생겼다. 시인과 한자학자인 두 저자들이 보여주는 방의 모습들이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는 공간과 내가 느끼는 감정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고, 그것들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 기대했다.


다정, 윤후 두 작가가 같이 또는 따로 방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푹 빠져서 듣던 나는 자연스럽게 '내 방은,,,'이라며 끼어들기 일쑤였다. 작가들이 지난 방들에 대해 써 놓은 글을 읽을 땐 지난 나의 방들을 떠올렸고, 작가들이 방안의 의자와 창문과 잡동사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내 방의 그것들을 바라보았고, 작가들이 집안의 화분과 반려묘를 소개할 때는 내 집의 식물과 반려견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보니 책을 진득하게 읽기보다는 중간중간 나의 방과 나의 과거와 나의 주변과 나의 기억을 살펴보느라 더듬거리며 읽은 꼴이 되었다. 만약 서평 마감일이 없었다면 지금도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놓고 작가의 이야기 위에 나의 이야기를 얹어놓느라 진도를 나가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이 책은 한 번에 후루룩 읽기보다는 어느 날 아무 곳이나 펼쳐서 조금씩 읽는 게 더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같은 방> 책장을 덮고,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는 책들 사이에 살포시 꽂아놓았다. 시인의 언어로 그려주는 이미지가 나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글이어서 신기했고, 한자학자의 언어로 들려주는 풍부한 어휘를 머금느라 행복했다. 책을 읽는 내내 힐링의 마음이었고, 또 이런 글들을 따라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찼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이 책을 읽고 각자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사심 가득 채워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거의 방을 떠올리며 애달파지고 싶지 않은데 방은 곧 생활의 모양새 그 자체이기에 어쩔 수 없이 구차한 조각들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모퉁이에 웅크리고 숨어 있는 구차함을 들추어내 잘 위로해 주지 않으면 그 모난 마음은 나에게서 영영 떠나가지 않으리란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방에 관한 글을 써보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이다. (10)


가구(家具)는 애초에 사람 없이 쓸모를 잃는다. 공간을 집[家]답게 갖추어 주는[具] 가구는 집에서의 쓰임에 따라 저마다 어떤 행위의 상징이 된다. (31)


나를 미워할 순서는 혼자가 된 방에서 찾아온다. (40)


내 방 창문과 우정을 쌓으며 나는 여러 번 세상과 화해했다. 세상의 움직임에 관여하지 않은 채, 나 없는 세상을 지켜만 보게 해주는 창문. 외부의 위험 요소가 사라진 나만의 방 안에서 유리창 밖으로 동요하는 세상을 내다보았다. (51)


바람이 문을 세게 닫은 방에 나는 여전히 있다. 불화의 참호 지대라고도 할 수 있다. 바깥의 일들로부터 벌어진 내면의 일을 수습하는 곳이다. 세상과 단절이라도 된 것처럼 방문을 굳게 닫고 홀로 고요에 참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방의 문법이다.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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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함의 용기 - 나는 수용자 자녀입니다
성민 외 지음 / 비비투(VIVI2)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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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함의 용기


#성민 외 9인 #비비투


나는 바란다. 누군가 길을 잃은 아이들에게 이정표가 되어 주기를. 지금의 모습이 참 예쁘다는 시선을 보내 주기를. ‘괜찮다’고 말해 주기를.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당신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181)


수용자의 자녀로 성장한 20대 청년들의 자전적 에세이라는 소개를 접했을 때, 이 책은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놓고 글을 쓰고 책을 펴내기까지 얼마나 무던히 그 상처와 아픔들을 보듬었을까 싶었다.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그려보는 과정에서 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책을 읽는 내내 평범한 삶을 바라는 그 어린 마음들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누구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마음,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 급급했던 마음, 어른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마음들이 느껴질 때마다 내 마음도 쓰렸다. 그래서 무너질 듯 위태로웠던 그 시간을 잘 버텨낸 어린 청춘들에게 아낌없이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열 명의 젊은 작가들이 글 쓰는 그 시간 속에 함께 푹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그 곁에 있는 이들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마음을 내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 쓰는 그 시간에 함께 한 이들을. 그들이 1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엮은 책 <기억함의 용기>는 그래서 한 권의 책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수용자 자녀가 당당하게 사는 세상을 세우기 위에 시작한 '세움' 같은 곳이 있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부모의 잘못으로 방치된 아이들을 보듬지 못하는 국가에 화가 났다. 부모가 수감된 후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고, 이것을 민간의 영역에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저자의 바람대로, 나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너희 잘못이 아니라고, 그동안 잘 버텼다고. 어디서 그런 힘이 났냐고. 무지갯빛 세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믿어보라고. 소중한 삶을 잘 가꿔보라고.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전해 본다. 그리고 나 또한 바란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응원해 주길.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사심 가득 담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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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 인권 최전선의 변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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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창비


성소수자, 이주난민, 디지털성폭력 피해 여성,

빈민, 불안정 노동자, 재난참사 피해자...

유난히 지독한 차별 앞에 놓인 이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오늘 한국사회의 '인권'은 어디까지 왔는가?



10년 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딸을 면회하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들어섰던 때였다. 공원 입구에는 테이블을 놓고 서명을 부탁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궁금함과 호기심 같은 감정을 지니고 그곳으로 걸음을 옮긴 건 아니었다. 아마도 내 걸음은 화창한 봄날에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그 눈망울들에 끌렸던 것 같다. 테이블에 가서야 알았다. 그 사람들이 자식을 잃었다는 것을. 죽은 자식의 시신도 물 속에서 건져내지 못했다는 것을. 세간의 시선과 비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그 부모들 앞에서 나는 방금 전 만지고 온 따뜻한 딸의 체온이 남아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식이 아프다는 이유로 타인의 위로를 받고 있던 나였다. 난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슬픔과 아픔들을 지닌 이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어주는 볼펜을 받아들고 조용히 서명한 후 노란 리본을 받아 가방에 달았을 뿐이었다. 그 순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를 읽는 열흘 동안, 10년 전과 같은 마음의 결이 흘러나왔다. 감히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사실과 경험과 감정을 다룬 이야기들에 어찌 깊이 '공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그저 놀랐고, 아팠고, 슬펐다. 먹먹해진 마음이었다가 바싹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가 치밀기도 했다. 화로 붉어진 얼굴이 이내 부끄러움의 낯색으로 바뀌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변호사 단체 '공감'에서, 지난 21년 동안 진행해온 변론들을 추려 한 권 책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에 담았다.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 꺾기' 고문사건/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인정 소송/ 텔리그램 성착취 및 불법촬영 등 디지털성폭력 사건/ 미등록 이주아동 강제퇴거 사건/ 성소수자난민 인정 소송/ 비(非)수술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소송/ 캄보디아 진출 한국 은행들의 빈민 약탈 대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취업 강요 사망 사건/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처분 사건/ 10·29 이태원 참사 등 10가지 주제의 삶의 실태들이.


내가 사는 한국이란 나라에 존재하는 차별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실제보다 간추려진 이야기들이 정돈된 언어로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였기에 솟아오르는 감정을 다스려가며 끝까지 책 속에 담긴 사실들을 직시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바라보고, 사회를 바라보고, 다시 나의 생각을 더듬어가며 며칠을 보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여러 물음들 때문에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하는 법규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기준들일까. 어떤 이를 범주에 들여놓지 않는 심리는 무엇일까. 법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삶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분명한 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뿐인 듯했다. 흘러가는 물처럼 진실도 이론도 법규도 모두 변한다는 속성은 공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해가는 사회에 맞게 변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사회에서 모든 이가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같은 일을 나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겪지 않은 삶들에 진실로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난민이 아니기에, 성소수자가 아니기에, 성착취 피해자가 아니기에, 재난참사 피해 유가족이 아니기에. 그건 내가 누워만 있는 아픈 딸을 10년 넘게 돌보고 있음에도, 아직 내 자식을 떠나보낸 경험은 없는 사람인 것과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를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마음이 전해져 어떤 이가 이 책을 읽을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엮어 내어 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창비'에 감사드린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사심 가득 담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두려움은 결론에서가 아니라 아무런 시도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비롯합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 제공과 절차권을, 또 섬세한 조력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불안의 실재를 파악하고 위협적 시도를 적발하는 것에서 공동체의 역할이 시작됩니다. 사건이 가해자와 피해자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사건의 결론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과정마저 엉망진창으로 남지 않게끔 완충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의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80)


지금 한국 사회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범주를 넓혀가면 인권, 즉 ‘사람’의 권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진정한 포용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혐오와 증오, 차별과 침해가 만연한 혐오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그 중심에 미등록 이주아동이 있습니다. (112)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이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증명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 상황을 처연히 돌아보게 됩니다. (146)


영화 「너의 이름은.」을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공감과 타인에 대한 상상력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상상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제도의 빈 곳을 찾아 소수자들이 자리를 기입하고자 분투합니다. 단 한명이라도 제도 밖의 예외적 존재로 남겨두는 것은 결코 정의定意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52)



#그래도되는차별은없다 #공익인권법재단공감 #차별 #북스타그램 #창비 #인권 #다양성 #인간다움 #존중 #공감 #책리뷰 #리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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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변형 가족 - 결연 후원으로 만난 두 남자의 대환장 가족 체험기
이회 지음 / 이르비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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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출 변형 가족


#이회 #이르비치


도서관 신착 코너에서 발견하고 빌려온 책 <기출 변형 가족>. 제목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딱딱했고 해석을 필요로 하는 제목이지만 사실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사각형 각 변마다 사람이 그려진 표지를 바라보았다. 다른 연령대의 남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방향을 걸어가고 있었다. 표지 왼쪽 상단의 '결연 후원으로 만난 두 남자의 대환장 가족 체험기'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요즘 내가 겪지 못한 인생 이야기에 혹하는 시기이기에 읽기로 결심했다.


제목과 표지 그림만큼 딱딱한 내용일까 걱정했던 마음은 첫 이야기를 읽으며 사라져 버렸다. 대신 '좋다'라는 혼잣말이 여러 번 나왔다. 작가의 필력도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도 좋았다. 책이 술술 읽혔다. 첫 이야기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법원 공무원인 작가가 직장(법원)에서 만난 아이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이들, 해외결연 인연을 맺게 된 아이들의 공통점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염치와 눈치를 상실한 어른들을 볼 때면 아이들이 떠오른다. 장발장, 상우, 하나와 짧은 머리 소녀들, 예샤, 법원에서 만난 아이들… 이들의 공통점은 가정이 아이들을 보호해 줄 만큼 튼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라서 어떻게 될까. 내가 만났던 아이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려 법원 같은 곳에 들락거릴 일이 없는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53)


아이들을 바라보며 작가는 질문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만들 수는 없을까? 작가의 이런 물음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마 지금도 그런 물음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작가의 물음을 함께 고민하다 보니 책에 더 몰입해버리게 된 나였다. 작가가 결연 후원으로 만난 원이와의 8년간의 기록으로.


<기출 변형 가족>은 작가의 질문과, 작가가 구하는 답과, 작가의 행동과 삶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기출 변형 가족'이 도대체 뭔지에 대해서. 작가는 정형화된 가족의 모습(부모와 아이로 구성된)을 기출문제와 같다고 생각한다.


시험마다 정형화된 문제 유형이 있다. 시험을 앞둔 사람들은 기존에 나왔던 문제를 풀며 유형을 익힌다. 이미 출제됐던 문제를 기출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기출문제와 비슷한 듯 다르게 비틀어 놓은 문제를 기출변형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족‘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형화된 기출문제와 닮아있다. 남녀가 만나 결혼해서 아기가 태어나고 가족이 형성된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다시 이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다. 이 과정을 수 세기 반복한다.

그런데 정형화되지 못하거나 정형화되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다. 원이는 타의에 의해 가족이라는 범주에 들지 못했고, 부모가 있음에도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기출과 기출변형의 경계에 있으며, 나 역시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았으니 정형화를 거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을 만들 수 없는 걸까? 정형화에서 벗어난 사람들끼리 가족을 꾸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46-147)


책을 읽는 내내 '겪는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겪으며 알아가게 되는 것들의 울림이 큰 이야기들이었다. 좋은 마음과 예상치 못한 상황과 기대와는 다른 결말들이 이어졌다. 기사로는 접할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 이야기들이 여러 생각을 갈래로 뻗어나갔다. 한 생명을 키워내는 것에 대해서, 어른의 역할에 대해서, 사회시스템에 대한 생각과 의문과 과제들이 끊임없이.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담고 있는 이야기의 울림이 큰 책이다. 특히 어른 됨에 대해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결연과 후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사회의 구성원인 아이들을 키워간다는 생각의 관점이 바뀔 것 같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다. 꼭 읽어보라고. 아무 정보 없이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정말 행복해진다.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육체나 재산만이 아니다. 습관과 사고방식,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물려받는다. 특히나 형사사건에 휘말린 피고인들을 접하다 보면 그들 역시 자기 부모로부터 폭력적이고 누추하고 비참한 것을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불행도 세습된다. 학대당한 아이가 부모가 되어 제 자식을 학대한다. 학대의 사이클이 돌고 돈다.(34)


아이들을 버리거나 학대하지 않고 보살피는 부모들은 이미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자기 자녀들이라서 당연하게 생각하니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 당연한 것을 못해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면 당연한 일을 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68)


결연후원을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지면을 빌려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이 말을 동정심이나 선민의식을 품고 후원을 결정했다면 그 생각을 거둬두길 바란다. 단언컨대 아이들은 착하고 순수하지 않다. 일부는 상상 이상으로 영악하고 현실 파악을 잘 한다. 현실 파악을 잘 한다는 말은, 어지간히 물렁한 어른 정도는 손쉽게 찜쪄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상처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찢어진 곳에 여린 마음 대신 냉소와 불신이 돋아나 상흔이 남은 존재들이다. 이런 존재를 천사 같은 아이로 착각해 접근했다가는 등을 돌린 수많은 후원자와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72)


아이들에게 실망할 때마다 나는 앤젤리나 졸리의 말을 떠올린다. 그녀가 난민 봉사 중 한 아이에게 한 말이 한때 회자한 적이 있었다.

“아가야, 네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거야.”

나는 이 말을 항상 마음에 새긴다. 만약 누군가를 후원하고 싶다면 동정심부터 버려주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어떤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면, 그것은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고 함께 살아갈 사회읭 구성원이자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74-75)


원이가 더 똑똑하고 재우가 어리숙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보육원에서 하루아침에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의 차이였다. 그게 가족, 그중에서도 어른의 역할이다. 인터넷이 제아무리 정보의 바다라고 한들 그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아이들에게는 늘 가까이에서 조언해 줄 어른이 필요하다. (192)


나 하나 노력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꿈을 향해 달리고 있을 예샤가, 평범한 청년으로 자란 진원이가, 성실한 학생으로 지내는 성경이와 남주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니. 나 하나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천지개벽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내가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한다. (266-267)


나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야말로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버림받은 아이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분노를 먹고 자라 해를 끼쳤을 때,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나 또는 내 가족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한 대가는 언젠가 누군가 반드시 돌려받을 것이다.

나는 모든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 사회의 구성원이 되길 바란다. 많은 어른이 보호아동들의 삼촌이자 이모이자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어주길 희망한다. 그렇게 많은 기출 변형 가족이 탄생하길 바란다.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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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 어느 교도소 목사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훈
카리나 베리펠트.짐 브라질 지음, 최인하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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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사심 가득한 리뷰입니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카리나 베리펠트, 짐 브라질/ 다산초당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목사님, 잘하셨어요’라고 박수를 보낼 순 없겠지만, 그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391)


나의 관심은 죽음 근처에 머물러 맴을 돈다. 특히 지난겨울부터 죽음과 애도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은 걸 보면 요즘 그 관심이 더 깊어진 것 같다. 이미 죽은 이의 삶, 죽음을 앞둔 삶, 그리고 죽은 이들을 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삶이 궁금했다. 우리는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 뉴스에서 들리는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부터, 가족과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고 결국엔 스스로도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산다는 사실만 잊고 살 뿐.


그러니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했다. 276명의 죽음을 지켜본 목사가 전해주는 이야기가 극적으로 펼쳐지리라 기대했다. 교도소에서 마감하는 범상치 않은 죽음으로부터 인생의 교훈을 어떻게 끌어내고 전달할지 궁금했다. 꽤나 자극적인 소재였기에. 죽음의 숫자도 많지만, 합법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책의 초반부에서 짐 브라질 목사는 말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을 때 책이 출간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는 왜 책 출간을 망설이며 이런 말을 했을까?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는 짐 브라질 목사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스웨덴 국적의 기자 카리나는 「죽음과 함께 한 일주일」이란 기획기사를 쓰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와 사형을 일주일 남겨둔 사형수와 그의 주변인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짐 브라질 목사를 만난다. 그와 짧은 인터뷰를 하고 헤어진 후 스웨덴에서 생활하던 중 다시 짐 목사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왜 항상 어두운 현실에 관심을 두고 피해자를 찾아다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카리나는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이들을 용서하고 그 죽음을 침착하게 지켜본 짐 목사에게 연락하고 그렇게 인터뷰가 이어진다.


카리나 앞에서 짐은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현재 암 투병을 하며 생활하는 일상까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죽음의 문턱을 넘고 목회자의 삶을 결심하게 된 경위부터 첫 번째 아내와 만나고 갈등을 겪고 헤어지게 되는 과정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병원 원목실 목사로, 교도소 형목으로, 그리고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시간 동안 많은 죽음의 현장에 있었다.


짐은 강조한다. 자신은 영웅도 아니고 뛰어난 목회자도 아니라는 것을. 실수를 반복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괴로워하며 살아온 사람임을. 자신으로 인해 가족에게 큰 아픔을 주었음을. 목사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종교적인 신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을. 노년의 백인 남성으로서의 인식도 가지고 있음을 내보였다.


그렇게 짐이 내보여주는 이야기 속에는 짐이 만난 다양한 죽음과 삶들이 있었다. 어린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있었고, 무도한 살인자에 의한 죽임이 있었고, 사형대 위해서의 죽음이 있었다. 그렇게 떠나간 뒤에 남겨진 삶들이 있었다.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부모의 삶이 있었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식의 삶이 있었고, 피해자의 유족이 있었고, 살인자의 가족이 있었고, 그 과정을 행해야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생명이 끝나는 죽음의 순간에 남겨진 이들의 감정에는 새순이 돋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카리나의 삶이 그것이다. 짐과 대화하는 중간중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며 정리하는 카리나였다. 짐도 카리나의 날카로운 지적에 자신의 인식을 교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강간을 성관계라고 지적해 주는 것을 받아들이듯이. 그렇게 대화를 통해 서로 통찰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읽어나가는 경험이 좋았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라는 말은 한 사형수가 짐에게 한 말이었다. 짐은 말한다. "오늘은 살기 좋은 날이기 합니다"라고. 상처와 결핍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잔잔한 울림이 되어줄 수 있는 책,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를 권해 본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은 살기 좋은 날이면서 죽기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게 제게 일종의 철학이 되었어요. 하루하루는 제가 만들어가는 거예요. 나쁜 일이 있다면 그건 제가 나쁜 날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죽어가고 있는 지금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얼은 자신이 죽는 날을 긍정적인 날로 만들기로 결정했잖아요. 그렇게 그날은 죽기 좋은 날이 되었죠. 저는 그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날을 죽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훌륭하네요.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일까요?"
"그렇겠죠. 하지만 살기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 P223

"사형 집행을 300건 가깝게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생사는 찰나에 갈린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도 언젠간 죽겠죠. 그때는 제가 사형수들에게 말해줬던 교훈을 마음속에 품고 갈 겁니다. 저는 당신이 이 교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축복입니다. 허비하지 마세요. 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좋은 일을 하고, 무엇이든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한 후에는 넘어가세요. 이번 생에서든 다음 생에서든 말이죠." - P17

사형집행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회복력이 강한 존재인지 알게 됐어요. - P286

지금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공간을 긍정적인 감정들이 채우게 될 거예요. 만약 아빠를 용서한다면 그건 아빠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거죠. 저는 중재 회의에 참여할 때마다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요. 누구든 몸에서 모든 증오와 분노를 배출해 버리면 그 독을 용서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유로워지는 거죠. ( - P297

피해자가 되면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그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자꾸만 그때 느꼈던 고통과 분노, 그 악마 같은 가해자가 생각나죠. 그것들은 늘 그 자리에 있어요. 피해자의 삶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잊으려고 애써도 분노가 남아 있는 한, 다시 과거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되죠. - P310

설령 밖으로 발을 내딛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생존자의 삶은 여전히 그 범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피곤함에 지치고, 번뇌에 지치고, 우울증에 지치고, 자기 연민에 지칩니다. - P312.

전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적극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가장 어두운 구석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며 마침내 앞으로 나아갈 열쇠를 찾아냅니다.-중략-
우선 용서를 해야 전사가 될 수 있어요. 죄책감과 분노, 용서를 다룰 수 있어야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그게 괜찮았다는 뜻이 아니에요. 더 이상 그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죠. 용서를 하면 이제 그 사람은 당신에게 과거처럼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돼요. -중략-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죠. 용서는 가장 아픈 상처가 있는, 마음속 제일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결단만 내린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용서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더해져야 해요. 시간과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그날이 올 거예요.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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