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곤이 받아쳤다. 사업이 연달아 실패하고 나자 성곤은남의 감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좌절감을 짜증으로 표현했고 그가 짓는 표정은 단 세가지, 화를 내거나, 화를 참거나, 화를 참으며 억지로 미소 짓는 표정으로 압축됐다. 나쁜 감정의 폭발은 유독 집에서 도드라졌다. 

은 값비싼 무언가라도 잃는 것처럼 입에 좋은 말을 담는걸 아까워하듯 피했다. 차라리 이런 종류의 표현이 더 익숙했다.
- 질리게 못나서 미안하다 됐냐.
그뒤로 좋은 말이 오갈 리 없다는 걸 뻔히 짐작하면서도 성곤은 일단 뱉고 봤다. 물론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말조차 진심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영혼 없는 말이 자신과 타인의 영혼에 해를 입히리라는 것을 전부 알면서도성곤은 입에서 거침없이 뿜어져나오는 말을 참아내지못했다. 좋은 건 쉬워도 하기 싫고 나쁜 건 결과가 뻔히보여도 일단 저지르게 되는 게 삶의 불가사의였다.
란희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성곤의 존재 자체가자신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별거 상태에 돌입했다.
성곤은 마음이 아팠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팠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무너져 붕괴하는순간에도 그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 그냥사납게 집을 박차고 나오는 걸 택한 것이다. 어리숙하고미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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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곤이 이 일에서 배운 건 개개인의 고뇌와 상관없이 일단 돌아가고 보는 생의 사이클이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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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애당초 나는 지금껏 대체 무엇을 기다려왔다는 건가?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정확히 알고나 있었을까?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명확해지기를 그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게 전부인 건 아닐까? 나무상자 하나에 들어간 더 작은나무상자, 그 나무상자에 들어간 더 작은 상자. 끝없이 정묘하게 이어지는 세공품, 상자는 점점 작아진다-그리고 또한 그안에 담겨 있을 것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껏 사십몇 년을살아온 인생의 실상이 아닐까? - P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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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익숙한 풍경이었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풍경같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일을 보는 것 같은기시감에 몸을 떨었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 아니라,
날마다 같은 날. 아주 사소한 것들만 변할 뿐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틀과 원리는 어디든 비슷해서,
맞는 사람은 늘 맞고 으스대는 사람은 늘 으스대며때리는 자는 늘 때리는 자다. 그것을 움직이는 힘이무엇인지 알 순 없었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을, 그런 이치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그들의 뜻대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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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뭔가를 예감하고 있으면서 그예감이 사실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같아서.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불행에 대한 예감은 실현되고야 만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면서 불행을 자꾸 떠올리면 불행이 옳거니, 여기가 내 자리구나 하면서 냉큼 달려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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