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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 - 패자 없는 게임의 룰
이장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1년 6월
평점 :
예전에 미우라 아츠시의 '하류사회'라는 책을 읽은적이 있었다. 저자는 일본에서 중산층의 붕괴와 하류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주목하고 이를 규명하기 위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당시 저자는 중산층의 하류화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현상과 앞으로의 미래상을 설명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고 하류화를 그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하류층에 대한 교육지원이라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책을 통해 주장하였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방법이 양극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수단이 될 수 있을까. 하류사회는 사회의 구조를 개혁하기 보다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하류층을 교육지원을 통해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하류층 일부가 중산층으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에 비해 하류층으로 내려오는 중산층이 더 많다면 이는 개선책의 일부가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로마 공화정의 그라쿠스 형제는 자국이 장기간의 전쟁으로 자영농이 자신이 경작하는 토지를 버리고 라티푼디움이라 불리는 대농장에 흡수되는 문제를 직시하였다. 그라쿠스 형제는 자영농의 몰락을 막기 위해 토지 소유한도를 정하는 개혁을 시도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정적들에게 살해되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의 실패는 자영농의 몰락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한 결과를 낳았고 이는 군대의 질적 저하와 세입감소를 초래하여 로마의 국력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근본적인 사회 문제 해결은 사회 구조의 개혁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개혁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한국의 양극화는 마치 라티푼디움이 형성되는 공화정 말기를 연상케 한다. 양극화는 보이는 문제점에 대한 임시처방을 넘어 이제 전체적인 사회 구조를 개혁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다수가 은연중에 공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반 성장이라는 개념은 양극화는 필연적이라는 체념보다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희망을 담고 있는 훌륭한 해결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양극화는 사회 계층 간의 양극화를 가리키지만 동반성장이 다루는 해결하고자 하는 양극화는 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 포함)의 양극화를 말한다. 그러나 동반 성장이 계층 간의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해결책이라고 한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바로 계층 간의 양극화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는 각기 기업에 속한 경영진과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크게 벌려 놓는데 이는 사회 계층 간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면 계층 간의 양극화를 해결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가 발생한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첫 번째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너무 잠식한데 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에서는 이를 당연히 여긴다. 기업이 사업 영역에 구애받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를 추구함에 있어 당연한 일이고 소비자에게도 낮은 가격의 상품과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사회 전체로서도 이익을 가져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기업에게는 이런 생각이 정의이자 올바른 질서겠지만 이런 생각이 만연한 사회 구조에서 경쟁력이 뒤쳐진 중소기업은 붕괴되고 이 중소기업의 구성원들은 저임금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많은 동네 슈퍼가 SSM에 잠식당하여 결국 사업을 접는 것만 보더라도 대기업의 끝없는 사업영역의 잠식이 얼마나 무서운가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 대기업- 중소기업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들 수 있다. 불공정 거래 행위는 종류가 다양하다. 납품단가 인하 요구, 기술탈취, 일방적 거래 단절 행위, 계열사 만들어 일감 몰아주기 등 그 방법은 끝이 없을 정도다.
세 번째로 중소기업부터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이 부족하다. 대기업에 비해 자금, 기술,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에 놓여 있는 영향이 큰 것도 있지만 중소기업의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과 개혁 의지가 빈약한 것도 큰 원인이다.
대기업 - 중소기업간 양극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 번째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은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대기업의 고용부진을 놓고 사회 책임의식이 없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책임의식 문제도 있겠지만 대기업은 소위 말하는 자본 구성의 유기화가 심화된 상태라 사회에서 기대하는 만큼 생산에서 차지하는 인력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에 반해 생산에 상대적으로 노동이 중요한 곳은 중소기업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이 주로 일어나는 곳은 중소기업인데 문제는 중소기업이 창출해 내는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가 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데 있다.
두 번째로 대기업은 창의성 있는 사업에 생각보다는 적합하지 않다. 대기업은 게임과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생각보다 실력을 발휘를 못하는데 이는 회사의 능력 문제라기보다는 대기업의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 있는 분야에는 기동성과 모험심이 필요한데 대기업은 중소기업보다 기동성과 모험심에서 뒤처지는 편이다. 창의성 있는 미래산업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의 등장을 위해서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은 한계가 있다.
세 번째로 유기적인 기업 네트워크 형성과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의 양상도 단일 기업 간 경쟁에서 기업 네트워크 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서는 각 개체의 건실한 역량과 신뢰가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건실한 네트워크 형성이 어렵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에서는 각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와 건실한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 내기 힘들어 네트워크의 역량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낳는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반성장을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통제형과 시장자율형의 혼합을 한국형 동반성장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동반성장에 대해 경제행위자의 자발적인 참여 이전에 강제적인 참여는 필요하며 결국 이는 정부가 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대기업 독점방지, 중소기업 사업 영역확보 물품 구매 등의 지원을 해야한다.
그 다음으로 경제행위자들의 행동 변화가 있어야 한다. 대기업은 불공정 거래관행 완화, 기업의 민주화, 정보 공유, 기술 혁신, 신뢰 구축 등 다양한 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소기업 역시 자신보다 더 작은 하청업체에 대한 동반성장과 윤리경영이 필요하다. 대기업의 탓만 돌리면서도 자신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으나 동반성장 자체는 정작 생각보다 오래 지속가능한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동반성장이 유지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세계 경기가 침체 되면서 무역보다는 국내 내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경우가 발생하면 사업 영역 제한, 거래관행 등을 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대기업으로서는 중소기업과 동반성장을 해서 당장 눈앞에 이익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 이익이 동반성장을 안할 때 보다 높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업은 자신이 희생만 강요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동반성장이 저자가 말한대로 경제행위자의 자율성과 도덕성을 요청하는 패러다임인 만큼 동반성장은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무위로 돌리려는 노력을 하면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이는 동반성장 뿐만 아니라 양심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가 갖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기업은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으로 신사업을 추진하고 무역 규모를 확대하여 물건을 파는 시장의 크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동반성장으로 자신이 진출할 수도 있던 분야의 시장을 잃었다는 피해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피해의식을 줄이기 위해서 정부는 그 만큼의 대기업을 위한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대기업이 사회의 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동반성장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은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을 위해서 대기업과 같이 유기적으로 사업을 해나감과 동시에 대기업의 의존도를 점차 낮춰 겉보기에는 모순으로 보일수도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한 시혜적 관계가 지속되면 동반성장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동종업계의 중소기업간 유대를 강화시켜 일의 성격에 따라 대기업보다는 적합한 한 중소기업을 주요 주체로 두고 다른 중소기업이 이를 보조하여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보기 보다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대기업을 다소 견제하여 중소기업을 대기업에게 시혜를 받는 존재라기보다는 파트너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양극화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담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체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이기도 하다. 향후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아직까지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 나는 믿는다. 동반성장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창조적 파괴를 통해 형성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는 자본주의(소위 말하는 자본주의 4.0)가 정착하기 위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동반성장이 성공한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