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지난 6월 독서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관은 1인용 필사실을 꾸며 놓은 전시관이었는데 줄이 길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머무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오전에만 잠깐 다녀왔다.
그 중 ‘문학동네’관에 갔다가 독서 동아리 지원비로 ‘소설가 50명이 추천한 2016 올해의 한국소설’ 『쇼코의 미소』와 2017년 버전 『바깥은 여름』을 구입했다.
그 중 『바깥은 여름』이 내게로 왔다.
제목 탓이었는지 정말로 한 여름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는데 7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모두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입동』은 5살 어린 아이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그 깊은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물론 우리에겐 단 일원도 건드리지 않은 보험금 통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한푼도 써서는 안 되는 돈이었다. 한 번도 상의한 적 없지만 아내도 나도 암묵적으로 그렇게 약속하고 있었다.”(24쪽)
“-그 돈 헐자. 빚 갚아야지.
-……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겨우 참았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잠을 설치다, 혹 그 돈을 쓰자 하면 아내가 나를 괴물로 보지 않을까 뒤척인 날들이 떠올랐다.”(32쪽)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36쪽)

문득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보상금으로 떼돈을 번 것처럼 호도하는 언론과 어이없는 죽음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부모들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으며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한 짐승들이 떠올랐다.
신이 있다면 저들을 용서하지 말기를.

『노찬성과 에반』은 골육종을 앓던 아버지가 자살을 한 후 할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찬성에게 나타난 유기견 ‘에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할머니는 찬성이의 끼니 외에 마음까지 돌봐줄 여유는 없다.
그런 찬성에게 에반은 상처를 핥아주고 정을 나누지만 이미 늙은 개는 노화와 함께 암까지 걸린다.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찬성은 초등생의 몸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지만 어린 찬성을 유혹하는 물건들은 넘쳐난다.
그렇게 에반의 안락사는 미루어지고 결국 에반은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고 만다.
이 비극적 이야기 속에서 문득 개가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람에겐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으니까.
찬성의 아버지에게도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금지된 상상을 해 본다.

『건너편』은 오래된 연인들의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만난 연인들이 한 쪽은 시험에 붙어 공무원이 되고 다른 한 쪽은 번번이 실패를 하고 마는, 그래서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해보지만 그마저도 잘 풀리지 않는 연인들에게 벌어지는 균열의 이야기.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115쪽)
“그때서야 도화는 어제 오후, 주인아주머니를 만난 뒤 자신이 느낀 게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수 쪽에서 먼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길 바라왔던 것마냥. 이수는 이제…… 어디로 갈까? 도화가 목울대에 걸린 지난 시절을 간신히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118쪽)

이수도 도화처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함께 번듯한 직장 생활을 했다면 아마 둘은 이미 결혼을 했을 게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날도 있었을 게다.
그때도 도화는 이혼을 결심했을까?
어쩌면 결혼은 연인들의 이별을 막기 위한 예방 주사가 아닐까?
예방 주사를 맞는다고 항상 병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니까.
이별은 언제나 가슴 아프고 잔인하다.
그럼에도 삶은 현실이니까 내가 도화의 엄마라면 쌍수 들어 환영하겠지.
나는 속물이니까.

『침묵의 미래』는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사는 ‘소수언어박물관’ 속의 화자들의 ‘언어(영)’에 대한 이야기다.
읽는 내내 김영하 작가의 단편 『오직 두 사람』이 떠올랐다.
내게는 다소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반복해서 읽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풍경의 쓸모』는 바람 나 집을 나간 아버지의 이야기와 시간 강사의 애환을 담은 정우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소설이 진행된다.
또한 이 책의 제목 『바깥은 여름』이 탄생한 단편이기도 하다.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 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 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158쪽)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173쪽)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쪽)

『가리는 손』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선입견, 이혼 가정에 대한 편견, 노인 혐오 등등이 잘 버무려진 이야기다.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214쪽)

결국 인종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사회 폭력에 대해 부모와 자녀에게는 육아서로서, 성인에게는 다양한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소설이란 생각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함께 사망한 남편을 잃은 아내 명지의 이야기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 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266쪽)

어린 아이의 죽음을 다룬 『입동』과 비교할 때 남편의 죽음은 상대적으로 덜 슬프게 읽혔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모 없이 동생과 단 둘이 살다가 혼자 남은 누나의 슬픔을 대면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입동』에서는 부부가 함께 슬픔을 나누고, 명지는 친정 식구들과 슬픔을 나누는데 홀로 남은 어린 누나는 누구와 슬픔을 나눌까 싶어 가슴이 먹먹했다.

‘소설가 50명이 추천한 2017 올해의 한국소설’이라는 문구를 보고 책을 구입한 건 맞지만, 그럼에도 마케팅용 수사가 아닐까 의심하며 읽었다.
소설을 모두 읽고, 후기를 쓰느라 다시 한 번 되새기다 보니 한 편 한 편이 다 보석 같다.
한 때 소설은 시간 때우기용이나 오락거리가 아닐까 싶어 멀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지혜와 부모로서의 올바른 자녀 양육법과, 세상살이에 지쳐 위로받고 싶을 때 심리 상담용으로 소설만큼 좋은 분야는 없는 것 같다.
‘소설가 50명이 추천한 2016 올해의 한국소설’ 『쇼코의 미소』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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