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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남자: 와! 차 좋네.
여자: 왜? 저 차가 그렇게 좋은 차야?
남자: 저 차가 말이지……
여자: 흐음, 그것보다 이 구두 정말 예쁘지 않아?
남자: 음…….
이런 이야기는 우리 흔히 생각하는 남녀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여성들도 자동차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으며, 남성들도 구두에 높은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다만, 보편적으로 자동차에 대해서 여성들보다는 남성이, 구두에 대해서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죠.
잠깐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언론에서는 종종 저명한 학자나 연구원들이 나오셔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릴 만큼 단백질이 풍부하며, 심장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항암효과도 뛰어나다’ 같은 이야기 말이에요. 그런데 길거리에 나가보면 콩 요리 전문점보다는 생고기 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이 훨씬 많지요. 그리고 우리는 야식으로 콩 요리보다는 치킨이나 피자 등을 먹고요.
<콩이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데, 거리에는 왜 생고기 전문점이 더 많을까요?>
컨커디어대학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교수로 재직 중인 개드 사드는 <소비 본능>에서 이러한 물음에 답변을 제시합니다. ‘진화심리학’을 통해서 말이죠. 진화심리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진화심리학은 다윈 이론에 기초하여 인간 행동의 진화적, 생리적 근원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최신 사조이다. 진화심리학의 선조로는 여전히 흥미롭고 활발한 인간행태학, 인간행동생태학, 사회생물학, 진화인류학 등이 있다. (p.21)
그리고 사전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진화심리학(進化心理學, evolutionary psychology, EP)은 동물의 심리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은 신경계를 가지고 있는 동물에는 모두 적용할 수 있지만, 주로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즉 간단히 말하자면,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에 두고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려는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비관련 행동들도 자연스레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요.
저자는 생존, 번식, 혈연선택, 호혜적 이타성 이 네 가지를 인간의 소비활동에 있어서 핵심적인 진화의 동인으로 꼽습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말한다면 자연 선택과 성 선택이라고 할 수 있고요.
진화심리학은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상의 이점을 추구하는 절차인 자연 선택과 성 선택이라는 이중의 진화적 힘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p.22)
그러면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자연 선택과 성 선택이라는 두 가지 진화적 힘을 가지고 제가 이 글의 서두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 나가는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먼저, 자동차와 구두에 관련된 남녀의 차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자동차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성 선택’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은 생존의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끌리는데, 때문에 남성은 고급 자동차나 저택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와 능력을 알리고 여성을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공작의 꼬리처럼 말이에요.
유전자를 전달하려면 생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번식’해야 한다. 성 선택은 짝짓기 영역에서 이점을 제공하는 속성과 행동들의 진화로 이어지는 절차이다. 예를 들어 공작의 크고 아름다운 꼬리는 생존의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라,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진화했다. 마찬가지로 숫양의 뿔도 생존과 연관이 없다. 숫양들은 서로 싸워서 암컷을 차지할 승자를 가리는 데 뿔을 사용한다. 이렇듯 다른 유성생식 종의 경우처럼 성 선택은 인간이 성적 이형 종(외관상 성별이 구분 가능한 종)이라는 사실로 드러나듯이 인간의 진화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성과 여성은 많은 육체적,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속성이 다르다. (p.85)
반대로 여성은 자신이 아름답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구두(하이힐)에 큰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피부, 풍성한 머릿결처럼 미(美)적으로 아름다운 요소들은 실제로 건강의 지표로 인식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성은 유전적 번식을 위해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여성을 선호하게 되고, 여성은 자신의 신체적인 매력을 돋보이거나 감출 수 있는 물품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는 당연히 ‘생존’의 문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인간은 오래전 수렵생활을 할 당시, 날씨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겨울보다는 여름이 식량을 구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고, 장마나 가뭄에도 큰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식량 확보의 불확실성 때문에 인간은 고칼로리 식품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즉 먹을 수 있을 때 충분히, 최대한 섭취하자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고칼로리 식품을 포식하는 행동은 수많은 종의 적응 전략이다. 칼로리의 희소성과 불확실성은 모든 동물들이 직면한 두 가지 핵심적인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진화사적 관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음식들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은 칼로리의 희소성과 불확실성에 따른 진화적 압력에 지속적으로 직면했다. 이런 상황은 이른바 절약 유전자형(thrifty genotype)의 개발로 이어졌다. 우리는 심각한 기근에 대비하는 진화적 적응으로서 음식이 풍부할 때 지방은 신속하게 저장하는 생리적 능력과 그에 연계된 행동들을 타고났다. (p.52)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저자는 인간의 다양한 소비생활에 대한 설명을 해 나갑니다. 솔직히 진화론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한 저로서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보다는 설득당하는 것이 훨씬 쉬웠습니다. 다만,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사회적 구성주의자(social constructivist)들의 주장처럼 인간의 마음은 백지 상태이며, 이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美)에 대한 기준은 문화와 미디어 등에 대한 영향이 크고, 아이들의 지적능력은 교육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이야기들이죠.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상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독일 사람과 미국 사람,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용하는 언어가 제가끔 다릅니다(상대성). 하지만 모든 인간은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하지요(보편성). 즉 미에 대한 기준이나 소비생활, 습관 등이 문화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그 밑바탕에는 보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화적 힘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힘은 인간의 유전적, 진화적 힘에 기초한다는 것이죠. 다만, 지금까지 많은 분야 특히 마케팅 분야 등에서는 차별적인 것들만 유의미한 것으로 간주하고 보편적인 것은 무시해왔기 때문에 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케팅 학자들은 지역적 접근법을 강력하게 지지해 왔다. 그들의 입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파악하는 일에 학문적인 초점을 맞춘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문화 간 차이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인식론적 편향을 초래한다. 현상이 보편적이라면, 즉 집단 간 차이가 없다면 마케팅 학자들은 이를 의미 없는 영향(즉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발견)으로 간주한다. (p.223)
최근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무척 화제더군요. 미국을 비롯한 해외 곳곳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와 춤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코믹성이라는 차별적 요소도 있다면, 우리나라의 노래임에도 해외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보편성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싸이(PSY)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중에서>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들은 대체로 설득력을 갖지만, 앞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되거나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호혜적 이타주의’에 관한 부분인데요, 저자가 주장하는 인간의 이타성은 일종의 계약 이타주의(binding altruism)인 셈입니다. 즉 미래의 보답을 기대하며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종종 다른 나라 사람, 그리고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2001년 일본에서 한 취객(일본인)을 구하려다 고인이 된 故 이수현 씨처럼 말이에요. 이는 인간에게 가장 큰 본능인 ‘생존’이 담보될 수 없는 상황에서 평생 다시는 만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이타성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는 호혜적 이타주의로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지 제 눈에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설사 위와 같은 상황도 호혜적 이타주의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해도, 이타성에 대해서는 한 통신사의 광고처럼 ‘사람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향한다.’라는 말을 더 믿고 싶네요.
<SK Telecom의 ‘사람을 향합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