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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애플 Inside Apple - 비밀 제국 애플 내부를 파헤치다
애덤 라신스키 지음, 임정욱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애플이라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니아층을 확보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기업이 되었고요. 몇 가지 재미있는 설문조사가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IT 전문사이트 'T3'는 2011년 가을에 ‘지난 50년간 가장 위대한 발명품 10’을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그 조사에서 애플은 아이폰(1위), 아이팟(3위), 아이패드(5위)를 각각 올려놓았습니다(2위는 소니의 워크맨, 4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가 차지했습니다.). 또 2010년에는 영국의 Tesco Mobile이 18세에서 65세 사이의 사람에게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을 물어보았습니다. 그 조사에서 애플의 아이폰은 8위, 아이팟은 56위를 차지했습니다(1위는 바퀴, 2위는 비행기, 3위는 전구, 4위는 인터넷, 5위는 PC였습니다.). 이 조사에서 재미있는 것은 세탁기가 12위, 자동차가 19위, 기차가 24위, 종이가 38위를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즉, 세탁기나 자동차, 종이는 아이폰보다 못하다는 것이죠.
<‘지난 50년간 가장 위대한 발명품 10’에서 1위를 차지한 아이폰>
이 같은 조사들은 애플의 제품과 기업,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지는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이 어떠한 것을 평가할 때는 ‘현재’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장하준 교수님은 그를 빗대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또 2010년에 영국의 출판사 아이콘북스는 ‘인류가 만든 수많은 사상과 이념, 제도와 발명품 중에서 무엇을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학계 전문가와 지식인, 그리고 수천 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이 조사에서 1위는 인터넷이 차지했습니다. 이는 문자(2위), 불(5위), 진화론(7위), 바퀴(13위), 숫자 0(15위), 인쇄술(20위) 등보다 인터넷이 훨씬 더 위대하며, 인류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영국의 출판사 아이콘북스가 ‘인류가 만든 수많은 사상과 이념, 제도와 발명품 중에서 무엇을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조사를 바탕으로 출간한 도서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
물론 인터넷이 인류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는 데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혹은 발명품이 인터넷이라는 데에는 솔직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1899년에 개발되어 지난 세기 동안 가장 많은 질병을 치료했다는 아스피린이나 교과서나 신화 속에서 이야기하는 불,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까지. 이 모든 것들보다 인터넷이 위대하다는 의견에는 아직까진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잠시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폰이나 아이팟과 같은 애플의 제품들이 엄청난 제품이며, 산업과 시장을 바꾸어 놓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제대로 된 평가는 앞으로 수년 혹은 수십 년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를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한 평가도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고요.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관한 도서는 이미 너무나 많이 출간되어 있지만, 이 책 의 옮긴이도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도서는 스티브 잡스의 비중이 절대적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라는 기업에서 그만큼 절대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인물 자체가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애플이라는 기업의 강점과 특성을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 에서 저자의 의도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애플’이라는 기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까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개별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간단하게 ‘스티브 잡스의 부재’ 때문입니다. 잡스가 처음으로 애플을 떠나있던 시절에 애플은 그저 매니아층이 열광하는 기업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준 것도,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기업이 스티브 잡스의 복귀 이후,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제품들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리고 시가총액 1위의 기업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스티브 잡스가 부재인 상황에서 앞으로 애플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는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를 지워낸 애플이라는 기업에 대해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고요.
이 책 이 애플이라는 기업을 중심으로 이야기한 책이라고는 하나, 이 책에서도 역시 스티브 잡스의 비중은 절대적입니다. 다만 대부분의 책은 스티브 잡스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애플을 이끌어 갔느냐에 비중을 둔 반면, 이 책은 애플이라는 기업이 어떻게 스티브 잡스와 소통했으며 어떻게 그의 리더십을 따랐는지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애플의 조직문화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저는 ‘개처럼 일하는 기업’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쓴 표현은 아닙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광고인 박웅현 ECD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개는 현재에 충실합니다. 밥을 먹을 때에는 밥만 먹고, 꼬리를 칠 때는 꼬리만 칩니다. 밥을 먹으며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애플이라는 조직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업무에만 충실할 뿐 다른 업무를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산업디자인연구소에서는 디자인에만 집중합니다. 손익은 CFO가 신경 씁니다. 그 외의 것들은 다른 부서에서 담당하고요.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을 담당하는 부서는 그 일에만 충실하고요. 그뿐만 아니라, 애플은 동시에 수많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법이 없습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확실한 프로젝트에만 집중하죠. 이는 박웅현 ECD님의 ‘개처럼’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외에도 제가 ‘개처럼 일하는 기업’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라는 기업에 대한 충성도 때문입니다. 애플에서 조직원들은 동료가 무슨 일을 하는지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현재 기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만 충실할 뿐이죠. 주인이 방향을 가리키면 아무런 의심 없이 달려가는 개(?)처럼 스티브 잡스와 기업이 요구하는 방향에 의구심 없이 따르는 것이 애플이라는 기업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업무가 힘들어도 말이죠. 또한, 서열이 확실한 것도 이유가 됩니다. 애플은 아이폰, 맥 시리즈, 아이클라우드 등 제품별이나 혹은 디자인, 마케팅, 영업 등 기능별 서열이 확실합니다. 특히 디자인 부문은 기업 내에 ‘절대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새로운 CEO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은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위에서 표현한 애플 조직문화의 강점 중 하나는 리더가 깃발을 꽂으면 쉼 없이 달려가는 실행력과 집중력에 있습니다. 그러나 리더가 그 깃발을 잘못 꽂았을 때는 큰 위기로 몰리게 되는 것이죠. 또 한 가지 애플의 향후가 주목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영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애플은 기존의 경영학에서 가르치던 이론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수평적 조직문화, 투명성, 이익추구 등과 같은 경영이론들은 애플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수직적 구조, 비밀주의 등처럼 완전히 반대되는 구조로 되어 있죠. 지금까지는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리더가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가능했습니다. 애플이라는 기업이 기존의 경영이론들을 모두 무시하고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와 같은 뛰어난 리더와 뛰어난 인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 말입니다. 하지만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면, 더 이상 ‘스티브 잡스 때문’이라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경영이론들의 자리는 흔들리게 되겠죠.
스티브 잡스가 떠난 이후 애플은 아직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는 않고 있습니다. 시리(Siri)나 새로운 맥 시리즈를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아직 전혀 새로운 제품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죠.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새로운 아이폰도 그렇고요.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라면 애플은 끊임없이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즐겁게 바라보고, 놀라면 됩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아닌 애플이라는 기업의 평가는 지금보다는 앞으로 수년 혹은 수십 년 후에 좀 더 제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