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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평점 :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행동경제학, 혹은 심리학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풀어놓은 책으로 착각한 것이죠. 실제로는 개발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 빈곤의 경제학(economics of poverty)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책으로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한비야의 추천 도서로도 잘 알려져 있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경우에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문제점들을 무척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그곳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에 반해 이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어떻게’라는 물음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까닭은 그들이 지정학적으로 열대의 불모지에 위치해 말라리아가 극심할 뿐 아니라 육지에 둘러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대적인 초기 투자로 지역 특유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지 않으면 이들 지역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문제는 가난한 나라가 이러한 투자자금을 변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p.18)
위와 같은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대한 제프리 삭스와 다른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 스스로 가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건강, 교육, 인구정책, 보험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가령 인도의 경우, 학교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부실한 건강상태나 어려운 가정형편의 이유도 분명 있지만,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학교에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들의 태도가 더 큰 이유라는 것이죠.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교육이 부실할 경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로 나누고, 공부 잘하는 아이에 맞추어 교육할 때 다소 뒤처진 아이는 더욱 뒤처지게 됩니다. 게다가 그 아이를 ‘너는 똑똑하지 못하니 배워봤자 소용없다.’라는 식으로 방치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배워봤자 소용없다.’는 그 교사의 말을 믿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멕시코의 조건부 보조금(CCT; Conditional Cash Transfer) 프로그램인 프로그레사(PROGRESA) 사례(자녀를 꾸준히 학교에 보내고 예방보건 활동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가난한 가정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교육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대안학교나 보충수업 등을 통해서 아이들이 각자의 수준에 맞게 학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 정보기술을 이용한 교육 제공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과 같이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교육뿐만이 아니라 건강, 사회적 안전망 등과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결국,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거시경제 정책이나 제도 개혁 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작은 정책과 노력만으로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런 예를 거듭해서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은 세부적인 내용이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거대한 제도에서 낮은 수준의 제도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아래로부터의 관점’, 즉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p.328)
정치는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는 조금씩 개선할 수 있으며 실제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개입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주장해온 이 철학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p.340)
정치 환경이 좋을 때 좋은 정책이 시행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으나, 정치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정책이 시행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정치 환경이 좋아도 얼마든지 나쁜 정책이 시행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정책과 제도는 충분히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저자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난에는 한계가 있죠.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흙 쿠키’라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국민의 7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최빈국. 언제부터인가 진흙으로 만든 쿠키가 주식이 되어버린 나라. 그리고 이렇게 만든 진흙 쿠키를 사 먹는 나라. 2010년에는 지진으로 25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10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나라. 바로 아이티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돈을 주고 사서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먹는다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를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가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아이티에서 주식처럼 되어버린 진흙 쿠키. MBC 프로그램 W 중에서>
다만 저자들의 주장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작은 변화가 갖는 한계에 대해서는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인 성격을 갖은 원조처럼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원조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동반하고, 지도자들이 부패한 상황에서 원조를 계속하면 정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p.325)
위와 같은 저자들의 주장처럼 대부분의 원조는 정치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 개방’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죠. 그리고 이는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자칫 또 다른 문제점을 낳기도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남반구 지역 국가들의 부채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자리 잡은 나라 현지에서의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이나 주식투자 등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외화로 본사가 있는 나라에 송금하는 관행을 들 수 있다.
거기에다 로열티를 지급하는 체제까지 추가해야 한다. 네슬레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중략- 이제 브라질의 경우를 보자. 네슬레는 브라질에서 터무니없이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 이익의 일보는 브라질 전국에 설립된 25개의 공장에 재투자된다. 또 다른 일부는 기업 확장과 새로운 시장 개척(가령, 가축 사료 시장) 등을 위한 경비로 쓰인다. 하지만 가장 큰 몫은 네슬레의 본사가 자리한 스위스의 베베이로 보내진다.
이와 같은 자본의 유출은 브라질 중앙은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슬레는 안정적인 교환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레알화가 아니라 달러로 송금하기 때문이다. -중략- 환전을 마친 돈은 즉시 대서양을 건너 본사로 향하게 되므로, 브라질 국내의 외채 사정은 한층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 중에서 p.248~p.249)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위와 같은 문제는 국가의 자본이 축적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국가가 부채에 허덕이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처럼 정치적인 성향을 갖는 원조의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소지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경제 분야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더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과 관련된 문제는 여러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한두 가지의 작은 정책변화만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책이 갖는 한계를 인지하고 그에 맞추어 국제적인 큰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용은 무척 구체적이고 전문적입니다. 즉 술술 읽히는 경제도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읽어볼 만한 도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사례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그와 함께 독자에게 깊은 고민과 생각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도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