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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뒤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동급 수준이다.” 『블랙스완』이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나심 탈레브의 평입니다. 아마도 최근에 제가 본 서평 중에 가장 강력한 문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1776년에 출간되어 훗날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1900년에 출간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정식분석학을 탄생케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두 책은 세상을 바꿔놓았던 책이죠. 그런데 이런 책들과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이 동급이라니.
대니얼 카너먼은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은 잘 알려져 있듯이 기존의 경제학이 주장을 뒤엎으면서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아마도 추측건대 나심 탈레브가 그토록 극찬한 이유는 『생각에 관한 생각』이 경제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대니얼 카너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나심 탈레브의 말이 꼭 과장됐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던 리처드 탈러의 『넛지』나 댄 애리얼리의 『경제 심리학』,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읽었던 『가격은 없다』 등 수많은 행동경제학 관련 도서들도 사실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에서 시작된 것이죠. 제가 언급한 책 이외에도 행동경제학에 관련된 수많은 책 중에서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를 언급하지 않는 책은 없을 것입니다.
<대니얼 카너먼(左)과 故 아모스 트버스키(右)>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는 저자의 말처럼 시스템 1과 시스템 2, 이콘과 인간, 기억자아와 경험자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 시스템 1과 시스템 2입니다.
나는 키스 스타노비치와 리처드 웨스트가 최초로 제안한 용어를 수용해 머릿속에 존재하는 두 가지 시스템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고 부르겠다.
-시스템 1: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한다.
-시스템 2: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한다. 활동 주체, 선택, 집중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작용하는 경우도 잦다. 때가 종종 있다. (p.33)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그림에서 나오는 단어를 보시고 ‘단어의 색’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별다른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아래의 그림에서 나오는 ‘단어의 색’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그림에서 단어의 색을 말할 때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것입니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단어의 뜻과 단어의 색이 일치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답을 말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 그림에서는 단어의 뜻과 색이 달랐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단어를 자동적으로 읽으려 하는 것이 시스템 1, 이를 통제하고 단어의 색상을 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시스템 2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의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그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에서 A와 B 중에서 더 어두운 부분은 어느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A가 B보다 더 어둡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그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보시다시피 A와 B는 같은 색입니다. 단지 우리의 뇌가 원기둥의 그림자를 인식하여 A가 B보다 더 어둡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제 다음번에 이 그림을 본다면 우리는 ‘A와 B의 색은 같다’고 할 것입니다. A와 B가 같은 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안다고 해서 눈에도 A와 B의 색이 같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는 A가 B보다 어두워 보이지만 같은 색임을 알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 시스템 1, A와 B가 같은 색임을 알고 인지하는 것이 시스템 2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이 책에서 나오는 사례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1970년대 사회과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폭넓게 수용했다. 첫째,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고는 건전하며 행동은 합리적이다. 둘째, 공포와 애정, 증오 같은 감정들은 인간이 합리성과 거리를 두는 대부분의 경우를 설명해준다. (p.15)
즉, 인간이 오류를 범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감정’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나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은 감정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오류를 범하는 ‘합리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통해서 설명해 나갑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각각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시스템 1은 인상, 느낌, 성향을 만들고, 자동적으로 작동하며, 직관을 발휘하며, 감정적 정합성을 과장(후광효과)합니다. 또한, 기존의 증거에 집중하고 없는 증거는 무시하며(WYSIATI;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어려운 질문은 쉬운 질문으로 대체(휴리스틱)해서 생각합니다. 시스템 1의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우리가 저지르는 많은 오류가 시스템 1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시스템 2는 시스템 1을 통제하고, 비교·판단하고, 시스템 1의 제안을 승인하고 검토합니다. 그러나 시스템 2는 게으르기 때문에 대체로 시스템 1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고, 우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경제학에서는 대체로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경제 이론의 행위 주체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취향에 변화가 없다.” (p.345)
그리고 여기서 합리성이란
합리성의 유일한 테스트는 어떤 사람의 믿음과 선호도가 이치에 맞는지 여부가 아니라 내적으로 일관되는지의 여부이다. -중략- 합리성은 이치에 맞는지와 상관없는 논리적 일관성이다. (p.501)
대니얼 카너먼은 이러한 주장에 반박합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통해서 인간의 선호도가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그리고 합리적으로 판단해도 얼마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1) 당신은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확실히 900달러를 얻기 VS. 1,000달러를 얻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
2) 당신은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확실히 900달러를 잃기 VS. 1,000달러를 잃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 (p.359)
대부분의 사람이 물음 1)에서는 ‘확실히 900달러를 얻기’를 선택하고 물음 2)에서는 ‘1,000달러를 잃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을 택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똑같은 확률임에도 이익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위험을 회피’하고, 손해와 관련된 상황에서는 ‘위험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바로 프레이밍 효과입니다.
95달러를 딸 확률이 10퍼센트이고 5달러를 잃을 확률이 90퍼센트인 도박을 하겠는가?
100달러가 당첨될 확률이 10퍼센트이고 아무것도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90퍼센트인 복권을 5달러에 사겠는가?
현실주의자라면 두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내놓겠지만 그런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실제로 이 중 한 가지 질문이 더 많은 긍정적인 대답을 얻는다. 바로 두 번째 질문이다. 나쁜 결과이지만 단순히 도박에서 진다는 묘사보다는, 전혀 당첨되지 못한 복권 가격으로 프레임될 때 사람들은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인다. 손실은 비용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선택은 현실주의적일 수 없다. (p.443)
위의 사례는 같은 질문임에도 단어와 문장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와 이론을 통해 대니얼 카너먼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인간과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러한 오류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노력을 통해서 그저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질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생각의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 2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죠.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상황을 인지하는 민감성을 기르길 바라고 있습니다.
합리적 행동주체 모델의 신봉자와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회의론자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일까? 전자는 어떤 선택의 표현도 중대한 문제의 선호도를 결정할 수 없다는 걸 당연시한다. 그들은 그 문제를 더 알아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열등한 결과들을 갖고 만다. 반면 합리성에 대한 회의론자는 놀라지 않는다. 그들은 하찮은 요인들이 선호도의 결정요인으로서 갖는 힘에 민감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도 이런 민감성을 습득하길 바란다. (p.455)
시스템 1이 저지르는 수많은 오류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책은 ‘굉장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별 다섯 개가 아니라 열 개라도 줄 수 있을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정말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번역’입니다. 경제 관련 도서는 번역할 때 반드시 원문의 느낌을 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최대한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만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은 지나치게 원문을 그대로 살리려 했기 때문인지 번역이 매끄럽지가 못합니다. 저는 특별히 번역에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문장이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뇌졸중은 모든 다른 사고들을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죽음을 유발하지만, 응답자들 중 80퍼센트는 사고로 인한 사고의 발생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p.200)
위와 같은 방식의 번역이죠. ‘사고로 인한 사고의 발생 확률’을 ‘사고로 인한 사망발생 확률’로만 바꾸어도 이해가 좀 더 수월할 텐데 말이죠. 또한, 곳곳의 실수도 눈에 띕니다.
만일 어떤 인구의 U 지수가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떨어진다면 그들이 감정적 불만이나 고통에서 보낸 전체 시간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p.480)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떨어졌다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가 아니라 ‘10분의 1 줄어들었다’가 되겠죠. 이 두 문장의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처럼 번역으로 인한 아쉬움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너무나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개정판이 나온다면 조금에 망설임도 없이 구매할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요. 앞으로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늘수록, 행동경제학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의 위상 역시 더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책의 겉표지에 적혀있는 ‘행동경제학의 바이블’이라는 문구처럼 말이죠.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