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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살짝 예를 들어 그림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여기서 가운데를 중심으로 구분하자면 A와 B는 ‘좌’에 가깝고, C와 D는 ‘우’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A와 B를 비교하면, A가 B보다 더욱 좌에 가까운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서 A가 B를 비난합니다. 당신 ‘우파’가 아니냐고. D는 C를 비난합니다. ‘좌파’가 아니냐고. 자신보다 왼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는 좌파가 되고, 자신보다 오른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는 우파가 됩니다. 이런 모습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주목을 받던 지난날에는 시장의 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많은 의심을 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반대로 신자유주의는 ‘악(惡)’처럼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신자유주의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신자유주의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시각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렇게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서로의 모든 것들을 부정해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끊임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좌우, 상하 구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복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는 아니며, 시장의 효율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자유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리고 좌와 우 둘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좌에서 우까지 긴 선위에서 단 하나의 최적점의 찾아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긴 선위에서 각 상황과 환경에 맞는 점을 때에 따라 각각 선택해야 하죠. 이 책 <하버드 정치경제학>은 단 하나의 절대적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죠. 예를 들어, 환율정책, 의료개혁, 사회자본, 환경문제, 세계화에 대한 시각차 등 명확하고 확실한 해결책이 없는(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상황과 정책들을 논하여 독자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현대경제학은 정치와 도덕철학의 한 부분으로 출발했으며, 정치 및 도덕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훗날 단일 학과로 독립하여 갈수록 소원해지다가 마침내 정치와 도덕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에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가 집권하던 시절에 시장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p.287)
“나는 수학 훈련을 거친 후 도출하는 사유의 맹점을 알게 되었다. 즉 논리가 역사를 대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삶이 만일 수학 모형으로 잘 표현된다면, 추상적인 것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동시에 삶은 창조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왕딩딩 교수)는 사상사의 관점에서 경제학의 발전 방향을 설명했다. “초기의 경제학은 인문학의 일부분이었다. 당시 경제학은 사람에 관한 ‘과학’이었지만 그 후 경제학이 변천을 거듭하여 ‘사물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는’과학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점은 너무나 크다. 오늘날 학문이 융합하고 통섭하는 시대에 경제학이 다시 ‘사람과 사람을 주목하는’과학으로 변모하고 있다.” (p.228)
이처럼 현실에서 멀어진 경제학을 다시 현실로 가져와 정치, 인문, 과학 등 여러 학문과의 융합, 통섭을 통해서 새로운 지혜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통화정책을 둘러싼 두 논점, 준칙 기반 통화정책과 재량적 통화정책의 장단점을 함께 서술하고, 고정환율정책과 변동환율정책, 그리고 이 사이의 통화위원회제도, 달러통용화, 목표환율권제도 등 다양한 방법들을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독자들이 다양한 정책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종교와 경제, 사회자본과 같은 문화가 경제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자본은 범위가 매우 포괄적인데, 사회자본의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는 신뢰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뢰는 서로 익숙한 사람 사이의 믿음이 아니라 낯설고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총체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이런 사회자본이 경제발전을 이끄는지, 아니면 경제의 발전이 사회자본의 발전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논의는 무척 유익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정책에 관한 논의 중 저자가 가장 비중을 두고 설명하는 부분은 2장의 의료 체계에 대한 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의료정책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의료문제 자체가 매우 특수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공화당에서는 의료개혁에 대해 대체로 반대하고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을 이를 이른 시일 내에 추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즉, 공화당은 시장과 경쟁의 효율성을 통해서 의료문제를 해결하길 원하고, 민주당은 정부가 주도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료문제는 일반적인 재화를 판매하는 시장보다 훨씬 특수한 성격을 띠고 있어 문제가 더욱 복잡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완전경쟁시장(수요자와 공급자가 많고 자본·노동 등의 이동을 방해하는 인위적 제약이 없는 경우의 경쟁)을 강조했다. 이러한 형태의 시장에서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유롭게 협상하여 가격을 결정하며, 이때 결정된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가 수요공급에서 차지하는 상대적인 희소성을 반영하여 자원을 배분하는 지표가 된다. (p.193)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자유롭게 협상하여 가격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의료시장에서는 이것이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인데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들이 직면한 복리는 극도의 마이너스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면 전체의 복리를 최대화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하면 이들 물건은 생필품이다. 우리가 마실 물을 비싸게라도 사야 할 경우에 선택의 자유란 아예 없다. 즉 마실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비싸도 사야 하는 것이다. (p.295)
이와 마찬가지로 의료시장에서는 수요자에게 선택의 자유란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입해야 하죠. 즉 공급자가 유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효능의 약품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구입할 수가 없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제약회사에서 확실하게 결핵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했다고 치겠습니다. 결핵은 상대적으로 저개발 국가에서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이 치료제를 연구·개발하는데 너무 큰 비용이 들었다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치료제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은 대체로 결핵에 걸리질 않아 치료제가 필요 없습니다. 반대로 치료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구입할 만한 여건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앞으로 고령화 문제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단번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문제들을 여러 입장에서 진단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이 책 <하버드 정치경제학>의 최대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요, 통화정책, 환율정책, 국제자본의 관리 문제 등 수 많은 정책에 대해 ‘결국, 어떠한 것도 완벽한 것은 없다.’ 로 결론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논점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결론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는 독자들 스스로의 기준선이 명확하지 않으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단점을 지적하자면, 약 320여 페이지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하다 보니 흥미로운 주장들에 비해 그를 뒷받침하는 내용들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1장 개방경제학에 관한 내용은 국제금융시장의 트렌드, 통화·환율정책, IMF의 역할, 최근의 유럽위기 등 상당히 전문적이고 쉽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잡한 개념이나 내용들은 생략하고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하다 보니, 오히려 너무 많은 내용을 생략하여 더욱 이해하기 어렵고 깊이가 부족한 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저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구요. 이 책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께서는 1장은 비교적 쉽지 않은 반면에, 2장, 3장, 4장, 5장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읽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