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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없다 - 당신이 속고 있는 가격의 비밀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이 그림은 20세기 미술가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이라는 작품입니다. 2010년의 한 경매에서 무려 1억 640만 달러(2011년 10월 기준 한화로 약 1,270억 원)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낙찰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일, 세계적인 브랜드가치 조사기관 인터브랜드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S전자의 브랜드가치는 세계 17위로 약 234억 달러라고 합니다.
 또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포츠 스타 부문에서는 타이거 우즈(5,500만 달러), 스포츠 구단 중에서는 미국의 야구팀 뉴욕 양키스(3억 4000만 달러), 그리고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는 나이키(150억 달러)가 1위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넘어 예술과 스포츠, 브랜드 등 모든 것에 '가격'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은 상품과 서비스 등의 가치를 나타내는 완벽한(?)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과연 그러한 가격들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에는 언제나 시각차가 존재해 왔습니다. 상품 가격은 "구매자가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가격과 판매자가 받기를 원하는 최소가격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견해입니다. 즉, 가격은 합리적으로 결정되며, 이에 맞게 소비자는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이 책의 저자 윌리엄 파운드스톤은 행동경제학, 가격심리학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1부에서 3부까지는 행동경제학, 가격심리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이나 개념들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인 앵커링이나 선호역전, 휴리스틱, 바이어스, 부의 효과 등 상당히 많은 개념과 이론들을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통해 무척 재미있게 설명해줍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3부에 나오는 휴리스틱에 관한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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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성 휴리스틱의 가장 유명한 예는 '페미니스트 은행원 린다'이다.

린다는 서른한 살이고, 말투가 직설적이며, 성격이 밝다. 그녀는 철학을 전공했다.
학생 시절 차별과 사회정의에 대해 고민했고, 반핵 시위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브리티쉬컬럼비아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이 설명을 읽은 142명의 대학생에게 다음 중 무엇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a. 린다는 은행원이다.
b. 린다는 은행원이고, 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첫 번째 문장보다 두 번째 문장이 진실에 더 가깝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대답이다. 린다가 은행원인 동시에 페미니스트이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가 은행원이어야 한다.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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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는 생략했습니다만, 다소 딱딱할 수 있는 개념들을 실험과 사례들을 통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4부에서는 앞에서 제시한 개념과 이론들을 토대로, 경제적 활동에서 일어나는 소비자들의 비합리적인 결정과 기업들의 전략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끝자리가 9로 끝나는 가격, 쿠폰으로 새나가는 돈, 통신사들의 정액요금제, 리베이트 등 실제 경제활동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이를 윤리적·도덕적인 측면으로 확대시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라는 일반 맥주(가격: 50, 품질: 50)가 있고, B라는 프리미엄 맥주(가격: 70, 품질: 70)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여기서 B라는 프리미엄 맥주의 판매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C(가격: 90, 품질: 90)라는 더욱 고가의 제품을 출시하는 것입니다. 이때, 맥주 C는 일종의 미끼 상품이 되어 소비자들이 맥주 B를 선택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A, B, C라는 세 개의 상품들 중 중간 가격의 B를 석택하므로써 일종의 '안전하고, 절충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비합리적인 결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이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마케팅 교재에 하나의 전략으로 이 유인효과가 등장한다는 것이 그리 썩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결국, 저자가 이 책 <가격은 없다>에서 주장하는 것은 '우리는 상대적인 가격을 판단할 때는 똑똑하지만, 절대가격을 판단하고 결정지을 때는 바보가 된다.',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소비자의 결정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척 설득력있고, 공감가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에 관련된 다른 많은 도서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구체적이고, 거시적인 해결책은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소비자들이 주위에 영향을 받기 쉽고 언제든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하며, 그리고 정부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 이러한 것들에 대한 방안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같은 아쉬움에도, '당신이 속고 있는 가격의 비밀'이란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가격'을 통해 행동경제학에 관련된 많은 사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론과 개념들을 함께 설명해준다는 점에서는 많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니다. 이 책을 계기로 행동경제학의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좀더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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