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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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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은 그곳에 머물기로 갑작스레 마음을 굳혔다. 어쩌면 저 위, 탄광촌 입구에서 카트린의 맑은 눈동자를 다시 본 것 같아서였을까. 어쩌면 르 보뢰 탄광에서 반란의 기운이 실린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갱 속으로 다시 내려가 고통받고 싸우기를 원했다. 그리고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본모르 영감이 들려준 사람들의 이야기와, 땅속에 웅크린 채 인간을 포식하고 있는 신을 떠올렸다. 만 명이 넘는 굶주린 사람들은 정체도 모르는 그 신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고 있었다.

 

 

에밀 졸라의 이름을 들을 때만 해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나는 도저히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부정적인 예감. 그만큼 에밀 졸라의 이름에서 주어지는 압박은 어마어마했다. <제르미날>을 선뜻 집어들 수 없는 까닭도 그 압박 때문이었다.

 

자연주의 문학가 중 한 사람으로서 에밀 졸라가 적은 작품은, 개인보다는 집단을 하층민의 삶을 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제르미날>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으로, 그들의 삶은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저 위로 향하려는 어떤 몸짓을 담고 있었다. 탄광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의 삶이 <제르미날>에 담겨 있었다. 어디 인간뿐이겠는가. 탄광에서 탄차를 운반하는 말들의 인생 또한 담겨 있으며, 탄광 주위를 감싸는 운하를 비롯한 산사나무, 떡갈나무와 같은 나무의 생도 함께 담겨 있다.

 

<제르미날>이 뜻하는 단어는 혁멱령인 '7월'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그가 왜 이 작품의 제목을 <제르미날>이라 지었는지는 책을 읽어봐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담은 이야기지만 각 개인으로 들어가면 사랑, 질투, 야망과 같은 온갖 것들이 담겨 있는 대서사시인 것이다. 기계공이었던 에티엔이 르 보뢰 탄광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예감을 느낄 수 있다. 에티엔의 성격은 불 같은 성정을 드러내다가도 이내 인간적이고 착실하고 성실한 면모를 보인다. 에티엔의 모습은 <제르미날>에서 보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닮았다. 그들은 쉽게 분노하다가도 어느 힘 앞에서 두려움을 보이면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 언제고 다시 폭발할지 모른다는 그런 예감을 보인다. 에티엔은 자신의 안에 있는 유전자적인 살인충동을 어쩌지 못해 노동자들을 인솔한다. 그는 싸우고 싶었고 싸우기 위해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지식이 짧아, 비록 그들을 온전히 이끌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그는 그들에게 씨앗을 던져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씨앗이 조금씩 틔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역사가 격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에밀 졸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제르미날>을 읽으면서 에밀 졸라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그가 말하는 자연주의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 했지만 결국 나는 <제르미날>로 돌아와 에티엔과 마외, 르 마외드, 카트린, 샤발과 같은 인물들을 요목조목 뜯어보기 시작했다. 결국 <제르미날>은 르 보뢰 탄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담은 이야기므로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들이 파업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굶어죽지 않아서였다. 헌법 제 10조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들은 싸움을 택한 것이다. 저 밑바닥에 있다고 짓밟히기보단, 자신들이 직접 무기를 들어 생존권을 주장한 것이다. 프랑스에 있었던 시민혁명처럼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빵을 달라!"라고 노동자들은 외쳤다. 그들은 부르주아가 사는 곳으로 향하면서 그리 외쳤지만 그들이 정작 싸우고 싶었던 자는, '신'이 아니었나 싶다. 신에 의해 계급이 정해지고 신에 의해 가난한 자와 부자가 정해진 것이라면 억울한 일이지만, 그들이 부르짖었던 혁명은, 저 하늘 위에 존재하는 신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신의 위대한 힘 앞에서 그들은 고꾸라지고 말았고 탄광이 무너지면서 대자연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라나고, 자라나 결국 그들을 굶주리게 한 적을 굴복시킬 것이다.

 

처절하면서도,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자연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은 하나로 뭉친다. 네그렐이 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해 손수 앞으로 나섰던 장면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적이었지만 자연 앞에서는 별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함께 뭉쳐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싸운다는 것, 생존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게 아닌가 싶다. 노동자들이 굶주리지 않기 위해 부르주아를 상대로 싸우듯, 죽지 않기 위해 자연을 상대로 싸우듯, 싸움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비록 무너진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패배한 것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라나는 것이다.

 

 

 

이제 하늘 높이 떠오른 4월의 영광스러운 태양이 생명을 배태하고 있는 대지를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다. 출산의 기운을 머금은 산허리에서 삶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나무의 새순들이 기지개를 활짝 켜면서 초록빛 나뭇잎을 터뜨리고, 새로운 풀들이 대지를 뚫고 나올 때마다 들판 전체가 가늘게 떨렸다. 사방에서 따뜻한 기운과 갈망하는 씨앗들이 부풀어오르고 키가 자라면서 땅을 뚫고 들판 위로 솟구쳤다.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나무의 수액이 넘쳐흘렀고, 싹트는 소리는 뜨거운 입맞춤 소리가 되어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또다시, 여전히, 땅과 가까워지는 것처럼 동료들이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더 또렷이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햇살이 비치는 젊은 아침에 전원이 잉태한 것은 바로 그 소리였다. 사람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검은 군대가 밭고랑에서 서서히 싹을 틔워 다가올 세기의 수확을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그 싹이 대지를 뚫고 나올 것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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