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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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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조심스러움'이다.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인가.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의식한단 의미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상처주는 것이 두려워 상대방을 어쩔 수 없이 바라봐야 한단 의미다. 결국 신중해진다는 것은, 상대방과 나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이 그로 하여금 신중하게 하는 것일까. 지하철을 걸어가다가 누군가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살짝 몸을 튼다거나 걸음을 조금 멈춘다거나 하는 행동을 볼 때가 있다. 지하철에게 빠르게 나오는 사람들을 어쩌질 못해 가만히 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신중한 사람이라면, 결코 먼저 나서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신중하니까, 조심스럽게 움직일 것이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신중한 건지도 모른다. 이승우 작가님의 <신중한 사람>은 그런 삶을 신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면서, 그런 직업을 갖지 못한 '나'는 선배의 부탁을 받아 한 지방의 임시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변변찮은 벌이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지도 모른단 두려움. 안정적인 것에 대한 강박. '나'는 여관에 머물면서 밤마다 켜지는 텔레비전에 시달린다. 리모컨이 있다면 그나마 덜 스트레스일 텐데, 그놈의 리모컨이 없다. 그뿐 아니라 선배가 도시를 구경시켜준다면서 밤마다 불러대는 통에, 거절도 하지 못한 채 끌려다닌다. 그는 자신에게 일을 준 선배에게 피곤하다고 정중히 거절의 뜻을 밝히지만 결국 선배와 함께 하게 된다. 갑갑하면서도 답답한 인생에서 그가 분풀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여관에 없는 리모컨이다. 삶이란 그렇게 무기력한 것이다.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절실히 원하는데 상대방은 "원래 없어요"란 대답으로 산뜻하게 요구를 묵살한다. 그때의 기분은 참담하고 비굴하고 또 분하다. 삶은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Y에게는 꿈이 있다. 조용한 전원에서 자신만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것.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그러나 딸이 패션디자인을 하겠다고 유학을 가는 바람에 그 꿈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가 마련한 전원주택은 친절한 이웃의 관리에 맡겨진다. 생활비를 대주기 위해 외국에 나가 일을 하고 돌아왔지만 자신이 마련한 집은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 친절한 이웃이 자신의 집이라 속이고 전세를 준 것. Y는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신중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조심스러워한다는 의미가 맞는 것일까. 나는 사전적 의미를 다시 고민해봐야 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신중하다는 것은 사전에서 말하는 조심스러움이 아니라, Y의 꺾인 자존심을 의미했다. 뼈 빠지게 일해서 꿈의 주택을 마련했지만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당해 먼 타국까지 갔다. 열심히 일한 후 고국에 돌아도니 자신의 주택은 다른 누군가가 멋대로 전세를 주었다. 무기력해진다. 다시, 또, 무기력해진다. 그에게 남은 것은 마치 그 전원주택이 전부라는 듯, 그는 필사적으로 버틴다. 그곳에서 나는 또, 삶에 대한 절망을 엿보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절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필사적인 건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숭고한 정신.

윤은 J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편지를 발견한다. 소설가로 유명해진 윤은 처음에 J선생의 유품을 정리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J선생과의 오랜 인연을 떠올리며 선생의 작품을 분류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때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편지는. 그 편지는 한 친구의 부정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윤은 그 편지를 읽고서 수치심을 느낀다. 결코 세상에 드러내선 안 되는 편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인간의 시기였다.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된 친구의 부정은 그에게 있어서 밝혀내야 할 것이었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는 듯,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싸늘하다. 사실은 윤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시기심으로 그랬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오래된 편지에 적힌 j선생의 첨삭은, 그에게 그런 수치심을 안겨준 것이다. 사람은 단순하다. 누군가가 잘 되면 그것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본성을 잘 드러낸 글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이미에서 나와 어디로 향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글은 조금 독특했다. 이미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여관에 머물며 어디로 가기를 꿈꾼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미에서 나와 어디로 향하지 못한 채 사라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누군가의 현실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의 과거다. 삶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어떤 통로와도 같다. 과거에서 나왔지만 미래로 가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현재가 있다. 과거에서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서도 나는 존재할 수 없다. 과거를 거쳐와야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듯, 이미에서 내가 존재해야 어디에도 나는 존재한다. 이미에서 이미 사라진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사람이 질투에 눈이 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유명한 소설가의 글을 다른 사람이 썼다는 인터넷글이 불러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그것이 그가 했다고 밝혀졌을 때엔 씁쓸하기만 했다. 망상증이 있는 소설가였던 그가, 망상에 의해 다른 누군가를 파멸로 이끌어간다는 계획. 그것은 그의 망상인가. 현실인가. 그 애매모호한 현실이 바로 삶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시기하게 되면 파멸로 가는 것은 그만이 아니라 나도 함께 간다. 삶은 덫이다. 삶은 늪이다. 빠지면 어찌할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 허우적대는 게 삶이라고 처절하게 말하는 듯했다.

아버지는 빛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나'는 사랑에 눈이 멀어 아버지와 절연을 당했다. 커틀러스 검을 가진 아들은 아버지가 두려워 칼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칼을 수집하는 사람은 칼을 우표나 동전을 수집하는 것처럼 수집하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칼은 유일한 자존심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그렇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버거워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아버지에게 제대로 있기 위해 커틀러스를 품은 남자처럼. 아버지에게 절연당한 '내'가 아버지와 마주하기 위해. 빛이라는 것은 때론 모든 것을 밝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존재다. 빛이 있으면 어둠은 더 또렷하게 보이는 법이다. 모든 것을 다 밝힐 수는 없다. 밝힐 수는 없기에 슬픈 것이다.

한국에서 실패한 삶을 청산하기 위해 외국으로 가려는 남자. 유는 그 삶을 갈망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그는 가질 못했다. 인생은 농담 같은 것인가. 그토록 원하는 외국행이 바로 직전에 고꾸라지더니. 허망해서 웃음이 비져나왔다. 마지막을 보았을 때 유의 고통이 확 느껴졌다. 오직 외국을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고 비자가 나오길 기다리던 유였는데, 비자가 나오고 나서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가질 못하게 되었을 때의 심정이란. 삶은 그렇게 다른 누군가를 고꾸라뜨려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때론 살아가는 이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했을 때,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일은 어리석다. 하지 않았으므로 증명할 길도 없다. 이렇게 적어가는 문장에 무엇이 숨어 있을까.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요목조목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에 뼈 아픈 진실이 있다.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추궁을 받을 때, 추궁받은 자의 인생을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의 중간에 어떤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연예인뿐 아니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살고 있다. 예전에 어느 기사에서 한 남자가 여자애를 성추행했다고 고소를 당했는데 알고 보니 무혐의였었단 사실이 밝혀진 일이 있었다. 사건조사에 대한 미비로, 남자는 억울하게 모든 일을 뒤집어썼다. 세간에서는 그를 추악한 성추행범이라고 욕을 했다. 이미 일이 터지고 나선 수습할 순 없다. 그의 인생은 이제 어린 애를 성추행한 사람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이미 터지는 순간, 인생은 파멸하고 만다.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일, 그것은 꽤나 버겁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 다리에 엄청난 무게를 가진 추를 매달게 되듯, 그대로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절망적이지만 버텨내야만 하는 일, 진실을 파헤치는 것, 그것이 삶이라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는 그 진실 하나뿐이다.

참 이상하다. 이승우 작가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신중함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나약하다. 나약하다는 것이 죄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약하다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성정이다. 마치 이 글은 그들을 보호하기로 하듯 적혀 있다. 그들을 비난해서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우리는 모두 신중하므로, 신중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다듬어줘야 한다고. 삶은 어느 순간 당신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럴 땐, 신중해지자. 나약하다는 것은 당연하므로, 그렇기에 사랑하자. 작가의 말을 읽으니, 왠지 모르게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삶이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힘들고 사람은 여전히 난해하다. 그래서 소설을 쓰지만, 그래서 소설 쓰기가 쉬워지지 않는다. 나는 맷집이 약하고 체력 역시 부실한 편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행동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내 인물들을 보면 언짢고 속이 상한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데도, 그들에게서 세상의 고뇌를 벗겨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는 그들을 내버리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는 않았다. 못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서 사랑하지 않기는 더 어렵다. 내가 내 인물들을 향해 굳이 사랑을 고백하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_<작가의 말>에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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