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엔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130페이지)

 그날이 오면, 나는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1980년 5월을 떠올리면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강렬하게 쏟아져오는 햇살이 두려워 참을 수 없어집니다. 꿈속에서 저는 몇 번이나 도망을 칩니다. 도망치지 말자, 도망치지 말자 되뇌어도 제 두 다리는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나는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로 돌아가게 되면 맞서 싸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어느 작가가 그날의 현장을 담은 기록을 적었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바로 그 책을 구입했지만 막상 책을 펼칠 수는 없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제가 알고 있는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펼쳐질까봐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저는 그 작가에 대한 인터뷰나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열 살 즈음,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이사를 했을 때가 광주민주화운동 직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후에 외가친척은 물론 여러 친척들과, 주위 지인으로부터 그날의 참상을 들었다고 기사에서 읽었습니다. 그날부터 작가에게는 1980년의 5월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뇌리엔 왜 자신의 주변인이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의문이 떠올랐고, 피할 수 없던 것처럼 소설로 적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작가가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사를 했던 것이 참상을 피하게 한 운명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이 참 많이 일어나지요. 그때 태어나지 않았던 제가 1980년 5월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도저히 그때를 상상할 수 없겠지요. 그날의 기록을 읽는다고 해도, 혹여 영상이 남아 있어 그것을 본다고 해도 결코 저는 그때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째서 사람은 그리 잔인해질 수 있는가, 왜 그들은 싸워야만 했고 왜 그들은 그렇게 시들어가야만 했는가, 그런 질문들을 제가 던지는 것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날의 일을 본다고 해도 그날의 시간은 저를 비켜갈 것입니다. 제가 보는 것을 믿을 수 없단 얼굴로, 저는 한 걸음 멀어진 채 그날의 시간에서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결국 저는, 그 책을 펼쳤습니다. 작가가 "피할 수 없었던" 일을 적었듯, 저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그날의 기록을 읽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에 하나씩 무언가 덧씌어졌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 상상이 현실로 빚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시민들은 총을 들고 군인들은 시민들을 저지하기 위해 총을 쏘아댑니다. 그들에게 총을 쓰는 목적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총을 든 이유는 단순한 사냥처럼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왜 싸워야만 했을까요? 어째서 그들은 싸워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가 책에 적혀 있을 줄 알았습니다. 민주화운동이라고 역사에서는 말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만 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싸웠는데 그들은 포기해야만 했는지, 괴로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를 이어나가야 했는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해야 하는지, 권리를 주장하면 왜 무참히 총을 쏘아대는지,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 하나였을 텐데, 왜 군인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죽인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은 그날, 무수히 많은 꿈을 쏘아버렸습니다. 

 
동호는, 제가 책에서 만난 동호는, 어떤 작은 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무수히 많이 죽어가면서 그 아이는 나라에 대해 고민을 했더군요. 왜 시신을 태극기에 싸서 묻느냐. 그는 은숙 누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은 평생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무수히 죽고 무수히 잡혀가고 잡혀간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고문을 받고서 살아남았습니다. 누군가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과거로부터 도망을 쳤습니다. 누군가는 아들을 잊지 못해 늘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만약 사람이 죽은 후에, 정말 그 사람의 혼이 그 주위에 있다면 육체가 타기 전까지 육체에 매달려 있다면 그들은 육체가 타기 전까지 살아있는 생명일 것입니다. 열십자로 포개어지는 단순한 시체가 아니라, 아직은 떠나지 못한 고결한 영혼이라고. 그것은 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었고, 결국엔 부서진 꿈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그들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그들이 그렇게 일어선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꿈을 꾸지 말라는 의무를 부여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동호는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정대가 바로 눈앞에 죽었단 이유로 죄책감이 시달릴 필요 없이,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를 움직였던 것일까요? 왜 그는, 그날 총을 들어야만 했을까요?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선택에 아니라, 반사적으로 해야만 했을 뿐이라고. 나는 동호를 떠올렸습니다. 수많은 중학생과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떠올렸습니다. 그 젊은 피가 거리에 흩뿌려졌을 때, 국가는 무엇을 했나요? 

 
2014년 4월 16일, 수많은 영혼이 하늘로 떠나갔습니다. 1980년 5월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1980년 5월은 가만히 있지 못한 이유로 죽음을 당했지만 2014년 4월은 가만히 있었단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란 말이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배 안에 있던 수많은 영혼들도, 배 밖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결국 배는 가라앉았고 가라앉는 동안 찍힌 동영상이 유렁처럼 배회했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았습니다.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한 그 어린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은 그날의 사고가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1980년 5월의 일은 아직 잊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국가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는 자가 더 많습니다. 비겁한 자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저도 비겁합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끝없이 그날의 일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그날의 일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게 그날은, 멀고 먼 날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의 모든 파도가 제게 오는 게 아닌, 저를 피해 나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심장이 깨지고 싶습니다. 영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