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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른하르트란 이름은 낯설다. 낯선 작가의 이름에서, 낯선 이국을 접했다. 대한민국에서 오스트리아까지 걸리는 시간은 비행기로 대략 13시간 정도 된다고 들었다. 비행기로 13시간 걸린다고 하니, 말로 내뱉을 때에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기차로 3시간 가는 것도 지겨워하는 나로서는 비행기 안에서 열 시간 있을 자신은 없다. 그렇기에 베른하르트란 작가의 작품인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작가 그 자신과 파울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사람과의 우정을 다뤘다.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났던 것처럼 설명되었고 두 사람이 보인 우정은 서로 마주보는 거울과도 같았다.

 

사람이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한 명 이상 사귀면 성공한 삶이라고 대학 시절 교양 수업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진정한 친구란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라던데,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된다면 기적과도 같을 것이다 하셨다. 그 말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교수님이 말한 말과 오버랩되어, 베른하르트와 파울의 우정이 남들과 다르게만 보였다.

 

두 사람은 같은 병원, 다른 병동에 입원을 하면서 그 인연이 특별해진다. 오랜 지병이었던 폐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던 베른하르트, 정신병이 있어 정신병원에 주기적으로 입원을 했던 파울. 두 사람이 같은 병원에서 함께 만나게 된 것은 마치 신이 선사한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은 음악,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토론을 하고 특히 두 사람이 즐겨가던 카페에 앉아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즐겨했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라고 하면서 그 둘을 비교하기도 하는데 그 대목은 조금 흥미롭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철학적이며 필연적으로 미치광이라고 했다.

 

때론 언어유희처럼, 때론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오스트리아와 파울을 바라보는 베른하르트의 시선은 파울 못지 않게 광기적이라 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그가 한 인간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겠다. 그는 파울과의 우정을 신성시 여김과 동시에 그 신성시 여김을 파괴하고야 말았다. 파울이 죽어갈 때의 광경은 한 인간이 어떻게 하면 한 인간에게 멀어질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고 그 혐오적인 모습과 가련한 모습은 상충하면서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의 모습이라면 숙연하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친구가 서서히 몰락하는 가운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파울은 아내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친구에게 기댈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베른하르트는 그런 파일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상실된 자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최근, 많은 사고로 뒤숭숭하다. 슬픔이 무엇인지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보며 생각을 해보았다. 그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할 것이고 공감마저 할 수 없는 상실의 슬픔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을지 가늠해보았다. 상실이야말로 무기력의 주범이었고 상실에서는 결코 무기력이 극복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지금도 바다 앞에서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길 바라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친구의 죽음을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지켜봐야만 했다 베른하르트를 떠올려본다. 무기력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욕마저 모두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다.

 

베른하르트의 심리를 따라 읽다 보니 나 또한 베른하르트와 똑같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비참함, 상실, 괴로움, 조소와 같은 감정이 솟구치다가 사라졌다. 처음 접한 낯선 작가이기에 더 몰입이 쉬웠던 것일까. 그러나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할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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