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다이스가 범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나는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브랜다이스에 따르면 "범죄는 전염된다. 정부가 범법자가 되면 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기고 만인이 만인의 법을 들고 나오면서 무질서가 판을 친다." 브랜다이스의 말을 바꿔 말하면, 폭력은 전염된다. 정부가 살인을 범하면 비폭력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기고 만인이 살인자로 나서면서 무질서가 판을 치고 극형을 통해서 수호하겠다고 되뇌던 ‘법질서‘ 그 자체가 무너진다. - P163

오늘날 미국에서 이민, 특히 멕시코계 미국인의 이민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은 이런 수치 문화의 신분 경합이 펼쳐지는 원형경기장이다. 그러나 주제는 늘 똑같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같은 인구 집단에 있는 일부 사람들을 어떻게 열등한 존재로 몰아가면서 업신여기고 그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는가다. 대대적인 ‘버본 전략‘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폭력을 낳는 방안이기도 하다. - P170

여태까지 나는 수치심이 가져올 수 있는 병폐라든가 부적절한 영향을 강조했지만, 수치심은 적절한 기능을 할 수도 있음을 밝혀 두고 싶다. 수치심은 우리가 열등감을 이겨내고, 실수를 바로잡고, 성숙해지고, 발전하고, 배우고,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남들로부터 존경심을 끌어낼 수 있는 일을 성취하도록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일은 사람들이 교육이라든가 건설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통해서 수치심을 털어버리고 긍정적인 자존감을 얻을수 있는 비폭력적 수단에 접근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조건이 마련되었을 때 사람의 정신 건강을 재는 척도의 하나는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파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치심을 성장과 성숙, 건설적 성취의 발판으로 삼으면서 자긍심을 느낄 때까지 수치심을 견뎌내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배울 기회와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맛보는 수치심을 없애버릴 수단으로 유일하게 남은 것은 폭력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P177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변하려면 우리가 지닌 사고, 감정, 행동의 낡은 방식은 한계가 있음을, 부적절하거나 잘못되었거나 열등함을 인정하고, 이런 낡은 것들을 버리는 대신 우리가 온전하고 좀 더 알찬 삶을 꾸려 갈 수 있게 해주고 우리가 의지하고 또 의지가 되어주는 다른 사람들도 온전하고 좀 더 알찬 삶을 꾸려갈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사고, 감정, 행동의 방식으로 바꾸어야 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한가지 전제 조건은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수치심을 줄이는 수단으로 폭력에 기대지 말고 수치심을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수치심은 야심과 성취의 발판이 되고 지식과 실력을 키우는 자극원이 된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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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이 흔히 간과되는 이유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과 얼마나 부끄러움이 큰지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할 때가 많아서 그렇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이다. 얼마나 약하고 무능하고 모자라고 열등하면 수치심을 느끼겠는가 하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일으키는 사건이 객관적으로 ‘사소한‘ 것일수록 수치심이 더욱 커지는 것도 그래서 그렇다. 그래서 수치심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폭력이라는 허세의 가면 뒤로 수치심을 숨기려 든다. - P124

자부심의 반대는 겸손이고 겸손은 순결의 필수 조건이므로 죄의식의 윤리에서는 겸손을 가장 높은 미덕의 하나로 꼽는다. 반면에 수치심의 윤리에서는 겸양은 자기 모욕에 맞먹기에 가장 몹쓸 악덕으로 본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로 생겨나는 한 가지 결과는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누르고 겸손을 품는 길의 하나로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하고, 반대로 수치심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부심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수치심과 열등감을 누그러뜨리는 길의 하나로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신분에 있는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죄의식의 윤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약자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고 수치심의 윤리에 젖은 사람은 강자(‘초인‘을 앞세우면서 예수의 ‘노예 윤리‘에 맞서 ‘주인 윤리‘를 역설한 니체도 수치심의 윤리를 부르짖으면서 후기 저작에서 자신은 그리스도‘라고 밝혔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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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에서 일탈하는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정당성을 잃은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수립하려는 적극적 목표를 추구한 이론이었던 것과 달리, 자유주의 국가론은 처음부터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었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국가주의국가론과 대립함으로써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는 안티테제(antithese)였던 것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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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는 자극할 뿐 뒤돌아보지 않았다.
함정임 - 저녁식사가 끝난 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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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봄을 두려워한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봄은 우울을 더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자신만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겨울에는 누구나가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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