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여성과 비-남성들의 입장을 잠시 잊고생각해보면, 남성 지배란 소수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위해 다수의 별볼일 없는 남성들이 열과 성을 다해 복무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즉 지배의 비용은 남성으로 호명된 모두가 지고 있지만, 지배를 통해 얻어낸 산물은 일부가 독식하는 구조다. 이 일부는 동료 지배자들을 위한 배당금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다. 이들이 주는 배당금은 여성과 비-남성에게 행해지는 차별이다. 즉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발밑에 자신보다 더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며 얻는 위안과 약간의 반사이익을 위해 가부장제의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도래 이후 이 남자들 안의 간극은 더 커졌다. 과거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와 낮은 직급의 화이트칼라들로 구성되었던 중산층은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양쪽으로 찢기고 있다. 남자들에게 고강도 노동을 시키고 가족이 먹고살 만한 임금을 주는 것은 새로운 경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중산층 남성들이 집에서 제왕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해준 마지막 원천이었던 ‘남자-생계 부양자-가장‘은 끝장났다. 오늘날 마주하게 된 현실은, 아버지들이 누리던(사실은 누렸다고 상상되는) 가부장의 권력을 달라고 징징거리는 남성 청년들과, 바뀌어가는 세태에 적응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소수의 남자들과, 이 시대의 권력과 권위와 명예가 하나로 통합된 돈을 움켜쥔 극소수의 부자 남자들이 어색하게 손을 맞잡고 있는 형국이다. - P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론 이런 일들의 모든 책임이 귀남이들에게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별적인 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가족의 절대 권력자인 부모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어린아이들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된 시점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이 잘못된 시스템으로부터 수혜를 받아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피해를 입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은 방관이나 묵인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가해이기 때문이다. -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벽을 허무는 일은 좋다. 누구도 가난이나 편견 때문에 출세할 기회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좋은 사회는 ‘탈출할 수 있다‘는 약속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상승에만 집중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 강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보다 사회적 상승에 보다 성공적인 나라라도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능력주의적 학력이 없는 사람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 P3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영원한 외출>은 내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조금 부끄럽긴 하군. 한동안 글과 책에서 멀어져 있었다. 매일 쓰던 일기도 최소 일주일 텀으로 쓰게 됐고 책은 늘 들고 다니긴 했는데 읽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글과 떨어져 살다가 최근에야 다시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고 일기도 다시 매일 쓰고 있으며 이따금 이렇게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있다.

예전엔 다시 글과 친해지기 위해 뭔가 강제적으로 영상과 멀어지려고 했었다. 유튜브를 안 보려고 앱을 지우면서 글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거 같은데 최근에는 어쩌다 보니 책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읽게 됐고 일기도 다시 매일 쓰고 있다. 자연스런 디지털 디톡스. 영상을 아예 안 보는 것도 아닌데도. (물론 유튜브 앱은 아직도 없다. 이따금 밥친구가 필요할 때 구글 앱을 통해 들어가서 보고 있다. 구글 앱을 통해 보면 프리미엄이 아니더라도 광고가 없는 장점도 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다른 책을 통해서였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소개된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바로 구매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읽었던 책을 다 뒤져볼 수도 없고.

며칠 전 어머니댁에 가는 길에 책을 읽으려고 가방을 뒤적거렸는데 가방이 비어 있었다. 집에서 읽던 책을 챙겨 간다는 걸 깜빡한 것. 그래서 어머니댁에 가져다 둔 책 중에 무엇을 읽을까 하다가 이 <영원한 외출>이 얇아서 집어들었다.

이 책을 집어들 때만 해도 왜 구매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가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의 옛 이야기를 인터뷰하는 내용을 읽다가 기억이 돌아왔다. 암 4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프린트한 뒤 아버지께 보여드리자 다음 인터뷰를 할 때부터는 양복을 갖춰 입고 나오더라는 내용. 다른 책에서 유독 그 내용이 특별하게 기억되었던 것은 나도 언젠가 어머니의 어릴 적 일들을 인터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원한 외출’이라는 그 제목처럼 죽음이 나온다. 처음엔 삼촌의 죽음, 그리고 금방 뒤이어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그러나 나이가 들면 그 죽음들이 마냥 슬퍼하기만 할 수 없는 것이 내 가족의 죽음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가족의 장례를 치르면 장례식장 비용을 포함한 모든 부대비용들을 지불하고 회사에는 공가 사용을 증명하기 위해 사망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 나와 가족의 ‘생활’을 해나가야 하고. 이 책의 저자의 인생에서 작든 크든 한 자리를 차지하던 이들이 떠났지만 그것과 별개로 생활을 해나가는 이야기하는 것을 읽으며 끄덕끄덕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따른 부재와 슬픔을 받아들이는 개인과 가족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귀향하는 저자는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사가지고 가면서 슬퍼도 결국 사람은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슬픔을 피아노 선율에 비유하며 슬픔이 계속 강하지만은 않고 약해지고 강해지기를 반복한다는 것. 슬퍼하는 와중에도 ‘일을 끝마치고 오길 잘했다’ 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하는 저자를 보면서 무척 공감도 되었고.

또한 언젠가 찾아올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사라질 ’어머니의 반찬‘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이 배워놓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어머니 특유의 반찬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나도 내 어머니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외출>에서 특히나 예쁘다고 생각한 구절 중 하나.

‘어떤 사람이든 언젠가는 서로 이해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싫어지는 것은 내 속에서 소중히 여기는 그 무언가가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아하 그건 어쩔 수 없겠구나 하고 어깨의 힘도 빠진다.’

30페이지에 나오는 구절인데 마음에 새겨야겠다. 내가 누군가가 싫어진다면 내 속에서 소중히 여기는 어떤 것이 그 사람을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 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반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 P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