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을 때였다. 꿈이야기를 하는 여인네들의 말을 세심히 듣고 신경정신상태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프로이트의 작업을 글을 통해 읽고 이런 분야의 일도 가능한 거구나하는 감탄을 했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내가 무슨 꿈을 꾸거나 가족들이 무슨 꿈을 꾸었다고 할 때 그 꿈의 내용을 현실속 꿈꾼 사람의 마음상태와 결부해서 대체로 설명할 수 있었다. 꿈에 나타나는 것들은 잠재의식속의 불안과 공포, 또는 희망사항등이 변형되고 엉뚱한 내용끼리 결합되면서 스토리를 이루는 것으로 여겨졌다.
최근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부쩍 뉴스에 많이 보도된다. 정신분석의 가치가 조금은 퇴색해가는 요즈음은 신경병적 증세가 나타나는 원인은 뇌구조의 불균형이나 신경전달물질의 부조화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대부분인 것같다. 오죽하면 자살에 이를 정도로 고통에 처했을까 짐작해보지만 그누구도 당사자의 심정이나 입장을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정신에 이상이 있는자가 말한 내용이나 글은 현실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법률적 권리행사에서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로 치부되지 않는가. 그런데 사회적 명망을 갖추고 유명인사로 활동했던 자로서 오랜 신경병을 앓은 사람이 쓴 책의 경우 어떤 사회적 영행과 파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의 병력에 관해 상세하게 적은 글이라면. 당당히 출판되고 사람들의 관심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상한 책은 아니었을성 싶긴하다.
프로이트역시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신경병을 앓은 이가 일정 시기 치료가 효과를 보아 자신의 병중 증상을 소상히 밝힘으로써 도대체 신경정신병자가 느끼고 보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증상이 이와 같을 수 없을 것이지만 대개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왜 그리 고통과 두려움을 호소하고 목숨을 끊으려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저자 슈레버는 그야말로 모든 영혼들이 자신의 몸속으로 침투하는 현상을 체험하고 자신이 여성화되어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른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혼돈에 휩싸인 것으로 보이지만 환자자신은 너무나 생생하게 이상한 체험(심지어 기적이라 표현한다)을 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역시 말할 수 없이 참혹하다. 사지의 피가 심장으로 몰리고 갈비뼈가 모두 으스러져 나가는 느낌을 현실로 부닥친다면 제정신으로 살아있을 사람이 있을까. 신경정신병자의 말못할 혼란의 세상이 이렇게 말로 표현되다보니 상당히 어불성설의 표현들이 많아 보인다. 그런데 단순히 불가사의한 증상의 나열이라고 보기엔 어쩐지 착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현재의 뇌과학의 발전단계로서는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산재하다. 증상의 형태를 분석하고 이해의 단계를 높혀 망상의 원인을 검거하는 실질적인 연구에 진력을 다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19세기의 정신병원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몇몇 영화들을 통해 당시의 억압적 치료방법을 더러 목격하였다. 켄케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잭 니콜슨주연의 뻐구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면서 정신병동의 참혹한 현실에 처음으로 눈을 뜰 수 있었는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와같은 겉은 아닌 듯하지만 실제는 고질적인 억압의 구조가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보면서 한편 제도적인 억압이 불러올 수 있는 일반인들의 신경증 증세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자살보인자가 있다고 한다면 사회적 정신분석학의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숨은 폭압의 신경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