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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약간 어이없고 황당하며 안타깝기도하고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은 빙긋 미소까지 불러일으키는 어떤 일이 있다. 딸아이가 초3때였다. 한창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습하던 시절이었다. 4분의 2사이즈를 쓰고 있었는데 당시엔 대량생산한 연습용악기였다. 한번은 한참 연습을 하다 침대에 잠시 앉았는데 글쎄 악기를 놓아둔 자리에 그만 앉아버린 것이다. 고단한 연습이 무신경하게 해버린 건지 대책없는 결과가 나왔다. 완전히 악기가 망가진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악기를 4분의 3사이즈 수제올드로 바꾸긴 했지만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조금전 까지도 연습하던 악기가 순식간에 절단이 나버렸으니. 딸애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고 초6까지 하던 바이올린 실력으로 대학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악장까지 맡으며 열심히 취미활동을 꾸려나가고 있다. 아마 현재 풀사이즈 바이올린은 아이에게 없어선 안될, 아니 보통의 사물이 아닌 자신의 유일무이한 무생물 친구이자 대화의 창이 아닐까 한다.
정상의 바이올린주자가 가진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나 과르네리라는 이름을 앞에 단 최고의 악기들이겠지만 꼭 완벽을 다투진 못해도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악기, 특히 현악기가 아닐까. 이 책의 첫 에세이스트도 자신만이 이해하는 첼로의 상징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 대학과 학계에서 활약하는 유명인사들에게 자신들에게 의미있는(정확히 말하면 어떤 정신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을 하나 골라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요청을 하고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냈다. 편자는 그들의 글을 크게 여섯가지 범주로 나누어 독자들에게 환기의 매개물들을 소개했다. 글들은 일기처럼 평탄하고 주변사의 자잘한 느낌을 담고 있다. 논리적이고 빡빡한 글을 평소에 썼을 이들이 어리숙하게 보일정도의 일상문을 써나가면서 자신의 과거와 인생을 정리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만화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꿈과 용기와 비전이 떠올라 부푼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이, 어머니의 낡은 사진 한장을 보고 그녀의 삶과 자신과의 관계를 회상하는 이, 오래전 자신이 그린 다락방의 그림은 위기에 처한 가족의 모습을 또렷히 그려냈다고 담담히 말하는 이는 추억속의 사물들의 힘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의미있는 사물들은 과거의 사물들만은 아니다. 심지어 우울증치료제와 혈당측정기마저 어떤 이에게는 삶의 최대공약수가 된다. 명 바이올리니스트에게만 바이올린이 소중하진 않듯이 늦게 시작한 발레에 애정을 붓는 사람에게 발레슈즈는 또다른 욕망과 훈련의 상징이다. 연구자로서의 지금의 인생을 가능하게한 , 소심한 한 어린 소년의 월드백과사전은 변화와 혁명의 사물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라난 고장을 떠나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해준 기차는 어떤 이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삶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인류문화학자는 선사시대의 도끼조각 하나도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자식에게 전달되기를 염원한다.
지오이드, 푸꼬의 추, 점균같은 대상은 과학자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마치 연인과도 같은 느낌을 던져주는 사물들일 수 있다. 사물이 있어 지금의 '나'가 있고 나의 형성과정이 있었다.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은 그냥 사물들이 아니다. 그것이 추억의 베일속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더라도 신비한 힘을 지닌 마법의 사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보통 사물이란 내가 붙여준 이름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물은 나의 영혼과 육신에 나보다 먼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물체이기도 하다. 또한 누구에게나 특별한 우선권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물이 하나쯤은 있지않을까 싶다. 즐겨쓰는 스카프나 아끼는 액세서리일 수도 있다. 허나 좀더 영감을 주는 창조적인 사물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고 싶은 욕망은 비단 나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주변의 사물들이 범상치 않게 보이기 시작한다. 공기속에 자연속에 심지어 인위적인 생산품들속에서 사물은 우리와 교감하는 대상이다. 무생물이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