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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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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는 철저히 이성적인 삶을 지향하였다. 그는 우주를 필연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생각하였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써 필연적으로 서로 맺어져 있다고 생각하였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관조하는 데서 오는 평온한 행복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최고의 선이라고 보았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스피노자에 관한 부분이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유명한 말을 남긴 철학자로, 또, "신은 곧 자연"이라고 주장한 '범신론자' 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 철학을 대신했던 이 단순화된 이미지들조차도 사실은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가 했다고 알려진 사과나무 이야기는 스피노자의 말이 아닌 종교 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의 말이라는 설도 있고, '범신론자 스피노자'라는 해석 역시 그 근거가 의심스러울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 <눈물닦고 스피노자>는  이제 자칫하면 오해할 여지가 있는 스피노자에게 쉽게 다가간다.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보여준 다소 난해한 기하학과도 같은 문장들을 이 책의 저자는 이해하기 쉽게 치유의 방법론으로 재구성 한다. 스피노자의 치유의 방법론, 그는 불안증, 우울증, 피해망상, 신경증, 기타 등등의 마음의 병들을 어떤 이야기로 치유 했을까?

 

 

#.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 - 사랑과 변용

 

 사랑은 변용의 다른 말입니다. 말 그대로 변용은 되기(becoming)을 의미 합니다.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신체의 모든 관계와 감정을 만드는 모든 합성과 소통 과정을 의미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범신론은 사랑의 능력이 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자연 속에 있는 신적 본성의 정체이기 때문이지요.

종교든 돈이든 간에 모든 종류의 권력의 시선은 신체를 싸늘하게 경색시킵니다. 그러나 사랑과 욕망이 신체를 부드럽게 만들지요. 일단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영역에 대해서 신체를 변용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이 요구하는 하나의 신분, 하나의 이름, 하나의 인물로 전락하고 말지요. 모든 영역을 횡단하면 신체 변용의 역량은 상승하게 됩니다. 옆방 사람과 경쟁자 관계로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친구, 형, 조언자의 관계를 넘나들어 보세요.

 

 그가 처음으로 제시한 방법은 사랑과 변용이다. 원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들을 찾고, 내가 가진 그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끌어 안으며, 이질적이고 낯선 상황 속으로 뛰어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굉장히 불안해서 기존에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고 나 자신을 끌어안기에 급급하겠지만, 마음을 열고 낯선 상황 속으로 뛰어들어, 뒤섞이고 외부의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면, 불안과 신경증적인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 새로운 관계 맺기, 자유인의 공동체.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우울감을 만들어내는 관계로 부터 벗어나거나 색다른 관계를 맺어야 할 겁니다. 슬픔의 감정을 만드는 것은 관계의 차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우울함이 마치 자신의 천성적인 성품으로 생각될 겁니다.

 

 그렇다면 우울증은 어떻게 해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울증 역시 사랑하는 대상을 찾으면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우울은 개인이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이다. 억압하는 관계로 부터 벗어나라.. 이 말은 너무 이상적으로 들린다. 부모가 억압을 한다면 부모로 부터 벗어나야 하고, 직장 상사가 억압을 한다면 직장 상사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래 직장 상사는 그렇다 치자. 좀 힘들더라도 이직을 하면 되니까. 하지만 우리는 부모, 가족 에게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스피노자는 단순히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미를 뛰어 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유인의 공동체적 질서.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같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미리 분배받고 할당 받기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특이한 역할을 만들어 가면서 언제든 그 배치를 바꿀 수 있는 자유인. 예속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자유인의 공동체속에서 특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

 과연 이 자유인의 공동체가 현실에서 가능 할 수 있을까? 색다른 관계를 구상하는 혁명은 가능한 것일까? 그저 먹고 살기도 급급한 요즘.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찾고, 낯선 외부의 상황에서 꿋꿋하게 변용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너무 이상적인 것일까?

 

 

#.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세상과의 색다른 관계 맺기도 혁명입니다. 평생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한 남성이 부엌일에 나서는 것도 혁명입니다. 기쁨의 관계는 민주적이고,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 긍정과 생성의 관계입니다. 색다른 관계를 구상한다는 의미에서 혁명인 셈이죠.

 

 하지만, 이상주의자만이 현실주의자일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 하는 순간, 이상주의자는 그 것을 방해하는 현실에 직면할 수 밖에 없고, 냉정한 현실을 응시할 수 있는 현실주의자의 힘도 그가 품고 있는 꿈이 없다면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꿈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극복해야 하는 현실이 아니라 순응해야만 하는 현실만이 남게 된다. 희망은 더 이상 없다. 조금 이상적으로 보이는 스피노자의 철학. 사랑과 변용 그리고 자유인의 공동체..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꿈을 꾸어야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가 세상과의 색다른 관계맺기의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에릭 홉스봄의 미완의 시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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