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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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인천 프로젝트 (정재승 외, 사이언스북스)
정재승의 글을 읽다보면, 직업으로 그 사람을 가늠하는 간편한 기준이 때로 얼마나 혹독한 오류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어떤 인문학자나 예술가에도 뒤지지 않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지닌 뇌 과학자 정재승의 신작.
저자는 이 작업에 되도록 많은 사람이 참여하길 원했고 또 그에 상당하는 홍보를 진행했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내용과 구성 방식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이미 많이 알려져 왔다. 손꼽을 수 있는 '국민 스포츠' 중 하나라고 부를 수 있는 야구, 그 중에서도 4할 타자, 그 중에서도 백인천이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었고,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선까지 성취를 이루고 또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질 것인가에 흥미를 갖는 사람도 있었다.
목차의 구성과 저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책은 인문학적 호기심의 충족과 과학적 방법론의 성립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했던 것 같다. 소재에 대한 회고, 작업의 경과, 그리고 논리적 분석의 결과까지. 한편으로 생각하면 화학적으로 엮기 어려운 요소들의 배치가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쨌든 뭐 하나라도 어필하는 지점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혹여 다소간의 흠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작업을 실제로 실행하였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새 방법론의 한 사례로 삼을 수 있게 한 지점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몇 장 쯤의 면죄부를 받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 일본 기담 (박지선/이노우에 히로미, 청아출판사)
기존에 있었던 일본의 기담을, 다섯 개의 카테고리를 설정해 새로이 분류하고 재창작한 내용이라 한다. 소설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고 인문학 카테고리에 들어와 있는 이유도 궁금하고, 일본의 기담을 다루는데 왜 한국의 엮은이가 들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일본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을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가 공동으로 서술한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현대의 입말에 맞추어 풀어쓴 것 만이 아니라 배경지식이나 모티브의 분석 등도 들어가 있는 것일까? 두 명의 엮은이의 저서들을 보니 각별히 이 쪽에 관심을 갖고 집필 활동을 해 온 것도 아닌 것 같아 불안하기는 하지만, 한국의 그것에 비해 좀 더 기괴하고 잔혹한 면이 있는 일본의 기담으로 남은 더위를 씻고자 한다.
3. 폰트의 비밀 (고바야시 아키라, 예경)
'폰트'라는 명칭은 계량화되고 객관화된 인상을 주지만, 기실 어떨 때는 메시지 자체보다도 더 상징성을 갖는 요소이다. 일상 생활에서조차 손글씨보다는 기계의 활자에 압도적으로 많이 노출되는 요즘에도, '서체'는 그 사람의 교양이나 성품 등을 가늠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기도 한다.
캘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하였으며 현재도 서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과, 한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여러 폰트의 사례를 컬러로 인용해 놓은 이 책의 구성은 폰트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독자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할듯 하다.
'브랜드의 로고는 왜 고급스러워 보일까?'라는 부제나, 목차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명품' 사례의 인용에서는 상업적인 분야로 소재가 다소 치우쳐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소개나 몇 장 가량 제시되어 있는 본문을 살펴보면 흥미를 끌만한 몇 가지의 소재를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해당 폰트가 어떻게 기획 의도를 살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가 동한다.
4.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진중권, 개마고원)
특히 트위터를 활발히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대중과의 접촉 빈도가 급격하게 늘어난 탓에 메시지의 내용보다는 '만사에 참견하는 듯한' 이미지가 더욱 강조되는 경향이 있으나, 진중권은 여전히 메시지와 채널을 가장 전략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논객 중 한 명이다. 그러한 진중권의 '캐릭터'의 이력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초기의 기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합본되고 수정되어 재출간되었다.
진중권 개인에 대한 엄밀한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그 나이대의 학자, 논객이 십수년 전 펼쳐냈던 책들 중 지금에도 다시 시의성과 상업성을 겸장할 수 있는 저서가 몇이나 될지만을 따져 보아도, 이 책의 가치는 다시 말할 이유가 없겠다.
지난 정권에서 등장하여 출판계에 큰 수혜를 내려 주었던 '국방부 지정 금서'가 이번에 다시 '국정원 지정 금서'나 '청와대 지정 금서'로 부활한다면, 아마도 제 1순위에 올라갈 것이 유력한 이 책이라, 일개 독서인이 이 자리를 빌어 굳이 다시 평가나 홍보를 하지 않아도 또 한 번의 성공은 보장되어 있을 것 같다. 진중권 선생의 또 한 번의 성공을 기꺼운 마음으로 축하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이 아쉬울 따름이다.
5. 세상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서 (김현철, 마호)
전작인 <울랄라 심리카페>도 그렇고, 김현철 선생은 독창적이기보다는 친숙한 제목 쪽을 선택하는 것 같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마는, 내용에 공감하고 제목에 아쉬워하는 입장으로서는 좀 더 욕심 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308가지의 이야기, 8개의 카테고리라는 소개를 보면, 이 책은 기획의도에 있어 '연애', '강박', '불안'과 같은 하나의 주제를 잡고 한 권 내내 비교적 학문적으로 접근하였던 세 권의 초기 저작보다는 임상이나 라디오에서 행했던 짧은 상담을 바탕으로 편안한 설명을 펼쳤던 전작 <울랄라 심리카페>의 연장선 상에 있는 듯 하다.
전작의 55개의 각 편들은 대체로 '사연소개 - 증상진단 - 원인분석 - 대책제시'의 틀을 갖고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제공한 몇 장의 본문을 살펴보니, 각각의 항목들이 분리되어 한 쪽에서 두 쪽 가량의 운문형 산문, 혹은 에세이형 산문으로 정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좋게 보자면, 이런 기획성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만큼 김현철 선생의 경험이 풍부히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며, 해당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줄줄이 늘어진 논리적 설명문보다 훨씬 더 마음을 빼앗기는 형태의 구성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나쁘게 보자면, 아주 솔직하게 말해 '좋은 생각'류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는 글을 다시 구입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고, 또 서간체, 대화체 등으로 표현된 문체에 낯이 좀 부끄러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서정적으로 정리된 만큼 300여 편 가운데 직관적으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글도 꽤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엄청난 명저라도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한 줄 아니겠는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줄쯤 얻어가는 것이 있는 독서가 되리라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