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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우리 삶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14가지 길
필립 코틀러 지음, 박준형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1989년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라는 표현을 사용한 논문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에 이르러 역사는 종말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덧붙여, 안정된 근대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는 자유와 평등의 2대 원칙을 불완전하게 적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과연 20여년이 흐른 지금의 세상은 그러한 예언대로 되었을까? 1990년대 이후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 주도하에 세계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및 자본주의의 우산 하에 통합된 점이라 할 것이다. 실제 이루어내지는 못하였지만, 평등을 주된 가치로 삼아왔던 공산 이데올로기 국가들이 모두 경쟁을 모토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복속되었다는 사실은 부와 권력의 불평등에 대하여 합리적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세력의 설자리가 더욱 좁아졌음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세계적 체제에서 파생된 문제가 더욱 심화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필립 피케티 등의 학자가 쓴 자본주의 비판 서적들은 일반 독자에게까지 매우 널리 읽히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모순 및 반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장일로에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판적 목소리가 많은 호응을 받는 것과 별개로 실제 우리의 현실과 정부의 정책에 변화가 올 조짐은 별로 없어보인다.

 

이런 시점에 기존의 진보적 학자들과는 달리 주류 자본주의 체제의 한가운데 서있던 학자가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을 주제로 담은 책을 냈다는 점은 어떤 면에서 인상적이다. 사실, 경제경영 분야 서적을 자주 접하는 독자들에게 필립 코틀러는 자본주의의 방향성을 반성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로버트 하일브로너 등 학자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의 스승 중에는 그 유명한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의 대표적 업적은 상품의 판매를 증대시키기 위한 전략인 마케팅 이론의 과학화이다. 이런 인물이 내놓는 자본주의 비판서의 내용이 과연 어떤 내용일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어왔던 독자라면 궁금증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한 제목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책의 목차 구성은 마치 경제학 비판 개론서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포괄적이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주제만 골라봐도 빈곤, 불평등, 환경, 경기순환, 금융, 일자리 등 흔히 현재의 경제체제를 비판할 때 언급되는 주제들이다. 해서 기존에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유사한 주제의 책들을 탐독해오던 독자라면 목차만으로도 식상함을 느낄 영지가 있다. 그러나 저자가 책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라는 단어의 개념정의조차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 또는 저자의 말처럼 이런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은 있지만 필립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두께에 놀라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하나의 마중물로써 기능할만한 구성으로 볼 수 있겠다.

 

저자의 학문적 발자취에서 예상이 가능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유지하는 선에서 서술을 전개한다. 이런 인식은 책 프롤로그의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가 확실하다면, 문제가 있는 곳에서 반드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마련이다.’라는 문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어디 세상의 문제가 그렇게 의지만으로 해결되던가. 본문 첫 부분의 빈곤관련 파트를 보자. 저자는 먼저 빈곤의 원인에 대한 기존 전문가들의 분석을 첫 번째 스스로의 잘못, 두 번째 다산, 세 번째 빈곤층이 가진 대체 가능한 자산의 부족, 네 번째 지배층의 탐욕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주로 무엇이 빈곤의 주된 원인으로 기능하는가에 대한 저자 자신의 분석은 여러가지 이유의 복합이다. 해결책에 대해서도 기존의 논쟁을 간략히 정리하여 제시한 후 그것과의 별다른 논리적 도출점은 제시하지 않고 민간분야의 참여, 다양한(!) 방법의 활용, 소셜 마케팅의 활용, 정부 프로그램의 무용등을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전개 과정에서 관련 주제에 대한 치밀한 학문적 분석이나, 저자 나름의 혜안이 담긴 체계적 원인 분석이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제시된 해결책 또한 꽤나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 예컨대 정책 관련 연구자나 실무자가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위와 같은 저자의 의견을 통해 대체 어떤 지견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국내 현실과 관련한 다른 중요한 주제로 일자리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자. 필립 코틀러 교수의 일자리 부족에 대한 원인 분석은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력 수요 감소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저자가 일부 인용하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인식은 사실 러다이트 운동 시절의 노동자들의 기술에 대한 인식과 거의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요약하자면 새로운 기술 개발 및 기업가의 자발성에 의존한 일자리 창출정도 이상은 아니다. 굳이 더하자면 무급휴가정부 사업의 확장등이다. 이러한 주장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원인분석 및 해결책으로 신선한 면이 별로 없으며, 최근에는 그 실효성조차 의심받는 내용으로 굳이 필립 코틀러같은 대가의 입을 빌려 다시 들어야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임금 경직성 이론 등 기존의 노동경제학과 관련된 이론적 틀을 빌려 보다 체계적인 원인 분석을 하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추가적으로 도출하는 서술이었으면 더 읽는 재미가 배가되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만을 언급해나가다 보니 책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경제경영 서적을 매달 5권 이상 읽지 않거나, 신문의 경제면만 읽으면 머리가 아픈 이들이라면 한번 집어들어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적어도 그동안 어떤 우리가 몸담은 자본주의 체제의 어떤 지점에 문제가 있는지 그간의 논의를 명료하게 정리하여 좌표를 설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교양서임에도 꼼꼼하게 참고문헌의 정리가 되어 있는 편으로, 독자들의 추가적 목마름은 이 참고문헌 목록을 통하여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더불어 약 2시간 정도면 다 읽어볼 수 있을 정도의 지극히 평이한 서술은 개론서를 지향한 것으로 짐작되는 이 책의 편집의도에 잘 부합한다. 못내 안타까운 점은 필립 코틀러라는 대가가 갖는 네임 밸류에 이 책의 무게감이 적절한가일 뿐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힘들고, 내일은 오늘보다 힘들 것 같은 삶의 이유를 어디서부터 찾아야할지 모르는 이라면 부담없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부터 한번 짚어볼 것을 권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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