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수의 독설
김진호 지음 / 삼인 / 2008년 5월
평점 :
교회는 언제부터인지 ‘축복’, ‘천당’ 운운하는 이런 신앙이나 서로 얘기하면서
기나긴 세월을 복권추첨일 기다리듯 보내왔고,
그러는 동안 어느덧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면에서 절대권력의 추구자가 되어버렸다.
1. 요약 。。。。。。。
예수를 모든 종류의 일상적 권위에 대항해 적대적인 운동을 벌인 인물로 설정하고, 그 관점 아래 복음서의 여러 사건들을 재조명한 책이다. ‘역사적 예수 운동’의 한 지류이자 그 한국적 적응 모델 중 하나인 ‘민중신학’에 신학적 기원을 두고 있는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기존 교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연히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자유주의적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2. 감상평 。。。。。。。
자유주의 신학이란 한 마디로 이성 중심의 신학, 모든 것이 이성적 사유 과정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위에 만들어진 신학이다. 이성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데, 계몽주의가 나타나면서 그 영향을 받아 발생된 것으로, 이런 면에서 이성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는 신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소위 말하는 역사적 예수 운동이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성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생각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실제로도 없는 것’이라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고, 자연히 성경에 기록된 여러 기적적인 일들은 믿을 수 없는 것들, 나아가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꾸며 넣은 것들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역사적 예수 운동’은 그렇게 성경 편집자가 꾸며 넣은 것들을 배제하고 원래 역사 속에 살았던 예수의 모습을 추론해 보자는 나름 건실한 의도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2,000년 전 예수의 모습에 관한 정보는 사실상 현재 남아 있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나아가 그것을 보존해 온 교회 공동체의 신앙을 통해서 밖에 알 수 없는데, ‘교회의 예수’ 말고 ‘역사적 예수’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필경 어떤 부분은 삭제하고, 어떤 부분은 남겨둔다는 선별작업이 필요하지만, 이 선별작업 역시 그 때의 사람이 아닌 오늘의 사람이 기준에 근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의 생각에 맞는 모습만 남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ex. ‘캘리포니아의 예수’)
민중신학도 그런 역사적 예수 찾기 운동의 한 지류로, (마치 남미의 해방신학이 그랬던 것처럼) 6, 70년 대 한국의 독재 시대에 맞는 예수상(像)을 찾는 데서 만들어진 신학 조류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역사적 예수 운동’이 갖고 있었던 문제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진짜 역사 속에 살았던 예수를 찾기 보다는 오늘날 연구자의 상황에 맞는 예수의 모습을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민중신학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바꾸어 버린다. 현대인의 눈으로 읽어낸 성경(혹은 예수)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강변이다. 오히려 그런 해석만이 진정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서 읽는 올바른 역사관에 기초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심하게 말하면 그저 말장난일 뿐이다. 저자는 결국 이 책을 통해 현대인의 눈에’만‘ 맞는 예수를 창조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물론 그러한 시도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히 민중신학도 한국 교회 발전에 나름의 역할을 했고, 그 안에는 권위와 권력에 의해 핍박받고 억압당하며 사는 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해 주며, 이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강조해 잊지 않도록 해 주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힘’에 대한 동경 아닌가.
나아가 성경 텍스트에 관한 극단적 관점에서의 재단은 요셉을 혁명전사로 만들고, 마리아를 로마 군인에 의해 사생아를 갖게 된 여인으로 전락시키는 정도다. 말로는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을 재구현 하겠다지만, 그 기본적인 사료가 되어야 할 복음서의 역사적 사료로서의 증거는 거의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기초로 역사적 예수를 구현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성경 텍스트의 역사성이 부정되고 나면 남는 것은 오직 오늘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상상된 예수의 모습밖에 남는 것이 없다.
저자는 민중을 압제하고 폭압적 수단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들을 향한 예수의 독설을 쓰고자 했으나, 결국 나온 것은 (그나마 무엇을 했는지도 정확하지 않다고 여기는) 예수의 입을 빌린 저자의 독설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