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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더불어 살기 위한 대항운동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사례는 '폭스바겐'이었다. 폭스바겐은 '2008년 10월 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금융위기 여파로 모든 주식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 틈을 노려 공매도를 통한 차익을 보려던 투기꾼과 폭스바겐 주식 75%를 인수하려던 포르쉐의 합작으로 폭스바겐 주가가 어이없이 치솟았다. 주가의 폭등으로 독일 최대 상장회사 30개사를 모아 놓은 DAX30 지수에 편입된 폭스바겐은 보수적인 연기금 같은 기관 투자자들의 주식 매입이 이뤄져 주가가 또 한 번 껑충 뛰었다. 결과적으로 폭스바겐은 순식간에 엑슨모빌보다 큰 회사가 되어버렸고 결국에는 규정이 변경돼 DAX30 지수에서 퇴출당하고 주가가 안정되었다. 이 모든 일은 폭스바겐의 실제 사업 실적과는 아무 상관없이 벌어졌다.'(31쪽)  

위의 사례는 경제의 거품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가 조작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휘둘릴 수 있는 것이다. 폭스바겐 스스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지만 다른 투기꾼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해 버리고 그 거품이 꺼졌을 때는 급격하게 주가가 떨어져 많은 손실을 봤을 것이다. 이것은 경제에 '가격과 가치 사이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례이며 손쉬운 주가 조작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라즈 파텔은 반호모에코노미쿠스를 제시하며 앞으로 새로운 공유지의 탄생을 전망했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유지를 개인이 사유화, 즉 '인클로저' 했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의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새로운 공유지의 탄생으로 가난하고 없는 자들의 '대항운동'을 소비자라는 주체로서의 권리를 가질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대항운동을 벌이면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아메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등 흥미로운 모임이 많았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서로 돌아가면서 대표를 뽑고 공정한 일처리를 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정부의 판결보다 갈등을 해결해 달라고 민원을 넣는 경우가 많을 정도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기 때문에 일처리는 늦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그런 것도 '느림의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정적인 절차 등이 늦어지는 것을 라즈 파텔은 시민이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긍정적인 요소로 보았다.  

하지만 이런 일처리 방식을 <미국이 파산하는 날>의 지은이 담비사 모요는 부정적인 요소로 보았다. 급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경우, 미국의 민주적인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단계가 많아 결정이 늦어져 사회 운영에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구성원의 크기에 따라 적합한 방식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방식도 구성원이 적다면 좋은 효과를 거둘 것이지만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인 '국가'라고 한다면 비효율적이라는 문제점이 많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라즈 파텔은 '대항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자신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해야지만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질 정당한 권리를 대항운동을 통해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많은 것을 바꾸지는 못 하겠지만, 그리고 실패할 가능성도 크지만,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항운동을 통해 '민중의 힘에 대한 의식적인 자각'에 대한 최소한의 소득은 있을 것이라는 거다. 이렇게 뭉쳐서 원하는 바를 주장하는 것이 못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라즈 파텔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대로 무관심한 소비자가 아닌 참여하여 주체가 되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말이다. 

이렇게 대항운동은 소비자의 권리와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집회의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경찰이 압박을 가해 해산을 시키고 언론을 통해 집회가 부당하고 불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해로운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집회를 벌인 이유'보다는 '집회의 야만성'에 더 초점이 맞춰진 언론 내용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회 이후에도 손해배상을 청구 당하고 경찰에 구속되어 재판을 받기도 한다.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다면 없는 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통로는 어디일까? 그런 게 없다면 이곳은 '있는 자들만의 나라'일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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