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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평점 :
사금파리 속 역사의 한 자락
가마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허허벌판이다. 이렇다 할 표식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기 일쑤다. 지나갔던 곳을 되돌아온 적도 많았다. 빙글빙글 아무리 돌아도 눈에 띄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정표가 없기는 삶도 마찬가지다. (13쪽)
책을 읽으면서 한 가닥 기대를 품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빛깔이 나오면서 어떻게 그러한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 흐름을 되짚어 보거나 그 기술이 도자기를 굽는데 얼마나 정교하고 세련된 것인지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고려청자의 그 아름다운 빛깔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자신을 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읽어도 읽어도 빈 공간의 가마터와 깨진 도자기 그릇만 나올 뿐이었다. 어? 하다가 책이 끝나 버리고 말았으니 그 허황된 기대감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깨닫고 말았다.
이 책의 지은이는 전국 방방곳곳을 혼자 돌아다니며 흔적이 거의 사라진 가마터를 찾아다녔다. 사람도 거의 없는 곳을 물어물어 겨우 찾은 곳은 사금파리 조각들이 몇 개 발견될 뿐, 옛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가마터를 지키고 그릇을 구해내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지은이는 청자 가마터를 기행하면서 생겼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수필 형식으로 편하게 얘기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은이 자신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저하며 고민했던 순간의 고통을 드러내었다. 몇 십 년을 붙잡고 있던 전공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우리의 '도자기'를 공부한 걸 보면 지은이는 스스로를 나약하고 부족하다고 평가하지만 그것보다 더 용기 있고 신념이 굳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선택' 후에도 자괴감을 느끼는 것 같아 지은이가 안타깝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자신이 하는 공부에 즐거움을 찾는 그가 자유로워 보였다.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가마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0년 만에 장보고의 푸른 꿈은 사그라지고 말지만 그 흔적은 점차 한반도로 퍼져나가며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부를 갖춘 지방 호족의 권력욕에 대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가마터는 주인의 삶에 영향을 받다가도 다른 힘 있는 사람에게 넘어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부분은 현재 역사적인 사실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서 가마터 자체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떤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했는지는 추측일 뿐이지만 그 당시를 나타내는 퍼즐 조각을 맞추다 보면 지은이의 상상처럼 그럴 법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의 그 씁쓸한 뒤끝이라니... 도자기를 만드느라 북적거렸을 텐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허허 벌판이나 누군가의 묘지, 집터, 뒷마당, 골프장 등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서 만든 그릇들은 다 어디로 가고 사금파리 조각들만이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덧없는 야망의 끝자락과 무상한 세월의 스산함이 뒤섞인 현실을 보았다. (11쪽)' 라고 말한 지은이의 말처럼 허무한 우리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화려하게 번성했던 것이라도 유구한 세월 속에서는 역사의 한 자락도 차지하지 못 한다고. 인간의 삶도 그 속에서 스러지고 스러져 사라질 뿐인 것이다.
처음에 책을 읽기 힘들었던 것은 지은이가 가마를 찾던 개인적인 에피소드, 가마터가 만들어진 배경을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지은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추측하여 상상하는 부분, 그리고 그 가마터에서 발견된 사금파리 조각들을 보고 무엇을 만들고 기술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얘기하는 부분 등이 이어지는 게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가마터를 기행 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가벼운 수필 글인지, 가마터의 유례를 추측해 보는 역사학자의 입장이나 청자 조각을 보고 도자기의 역사를 추적하는 고고학자의 입장에서 쓴 전문적인 예술 서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수필 글에서는 가벼우면서 지은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나 고뇌, 인생을 논하다가 갑자기 역사적인 내용으로 넘어갔다가 또 다시 유물의 얘기를 하는데, 어느 글에 초점을 맞춰 자세를 잡아야 하는 지 나 혼자 동분서주 머리를 굴렸다. 읽다보면 이 책의 방식에 곧 적응하고 말지만 말이다. 그리고 도자기 조각을 얘기하는 데, 그 용어를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으면 각 가마터에서 나온 청자 조각의 특징을 조금 더 쉽게 구분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어쨌든 아무도 찾지 않는 빈 가마터를 순례하며 우리나라 도자기의 흔적을 외롭게 되짚어온 지은이의 열정이 고마웠다. 우리에게 청자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