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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평점 :
결국 문제는 ‘소통’이다. 과거와 현재의 소통 문제. 과거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고 과거의 시간을 재현하는 것은 현재의 시간에 필요한 말을 하기 위해 과거의 시간을 경유하는 것이다. 과거를 현재화하는 것이다. 역사와 영화의 문제는 ‘과거의 현재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8쪽)
그렇다. 결국 과거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거울’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영화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시류에 편승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지켜왔는지 분석하고 있다.
다른 예술 작품들도 그 시대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거대 자본이 투입되고 그것이 대중의 취향에 따라 흥행과 참패가 결정되므로 어느 예술 장르보다도 철저히 대중에게 영합하는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한 파급력을 지배 권력도 알고 있으므로 사전 검열을 통한 영화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왔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이었지만 그것은 시대가 변천하면서 미국이나 신군부 등의 지배층으로 바뀌었을 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이익과 지배의 정당성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지배를 옹호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와 거대한 자금으로 영화 시장을 뒤흔들어 왔다. 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국민의 정부가 등장하기 시작하자 영화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한국 영화가 다양해지고 경쟁력을 갖추면서 꽃망울을 터트리는 현상을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친일 영화나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위안부, 빨치산, 비전향장기수, 조총련 등 우리 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양지로 끌어내기도 했다. 그런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무게에 억눌리더라도 숨통이 트이게 할 수 있는 작지만 커다란 족적이 되어왔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부분에서도 감독에 따라 영화 내용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 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 해당 영화에 흥미가 일었다. 특히, 일본에 있는 조총련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으로 자전 영화를 찍고 소외당하고 있다는 감독의 뒷얘기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왜 우리는 한 민족을 자꾸 배척해야만 하는지, 무수하게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날이 있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안타까움이 더 했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지배 권력과 시대 상황에 따라 영화에서 다룬 역사적 소재의 범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논의한 부분이었다. 특히, 베트남전의 기억과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가 감독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고 있음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부활의 노래>, <꽃잎>, <박하사탕> 등에서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온 것처럼, 감독이 어떤 시대를 겪어왔는지 그 경험에 의해 소재를 다루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화려한 휴가>의 감독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므로 영화에서도 그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대중성을 피력할 수 있었다. <화려한 휴가>가 발포 명령을 내린 실세가 누구인지 그 갈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분명 광주 민주화 운동 자체의 실상을 대중적으로 알린 것은 사실인 것이다.
예전에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공포 영화인 <알포인트>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의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은 생각지도 못했다. 6.25전쟁으로 우리는 한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고 있다. 아직도 이산가족의 슬픔은 끝없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서 그때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것도 이번에는 남의 나라 전쟁에, 돈에 팔린 용병으로 참가한 가해자로서 말이다. <하얀전쟁>이 전쟁에 참여한 피해자로서의 사회 부적응 자를 그렸다면, <알포인트>는 ‘베트남을 침략했던 모든 외세에 대한 응징이자 복수’로서의 공포 영화를 그려내고 있다. 그 당시에도 <알포인트>은 입소문이 퍼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반적인 공포 영화였다면 이 영화에서 처럼 묘한 여운을 남기지 못 했을 것이다. <알포인트>란 영화를 베트남 전쟁과 우리나라의 입장을 대비하여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무척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