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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공부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이철 지음 / 원앤원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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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명심보감

아주 어릴 적 한자 공부를 시킨다는 명목으로 아버지는 나와 누나를 주기적으로 할아버지 댁으로 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자는 명분일 뿐이고 사실은 할아버지와의 시간을 많이 보내게 하려는 아버지의 의도였던 것 같지만... 뭐, 이유야 어찌되었 건 누나와 나는 주말마다 할아버지 댁에 (만화책을 한껏 빌려서는) 방문했고, 그렇게 주말을 조부모님과 함께 했다.


그래도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여서, 명심보감을 익히는 것으로 한자 공부를 대신했었다. 그러나 명심보감이 아무리 가장 쉬운 글들이여도, 한자조차 모르는데 한문을 읽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긴 했다. 그나마 고학년으로 넘어가던 누나는 곧잘 글씨와 글을 익혔던 것 같지만, 저학년이던 나는 한자를 익히는 것 대신 뜻풀이를 통해 명언?! 같은 것들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도 딱히 한자를 외워야하고 쓸 줄 알아야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그냥 손주들과의 그 시간이 좋으셨던 것 같고, 또 의미가 있으셨던 것 같다. 비록 한자를 배우진 못해지만, 그럼에도 워낙 어린시절의 기억이다보니 종종 그 때 배웠던 문구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이를테면,

한소열(漢昭烈)이 장종(將終)에 칙후주왈(勅後主曰),

물이선소이불위(物以善小而不爲)하고,

물이악소이위지(物以惡小而爲之)하라.

라는 문장이나,

장자왈(莊子曰),

어아선자(於我善者)도 아역선지(我亦善之)하고,

어아악자(於我惡者)도 아역선지(我亦善之)다.

아기어인(我旣於人)에 무악(無惡)이면,

인능어아(人能於我)에 무악재(無惡哉)라.

같은 문장들 말이다.


첫 문장은 사실 삼국지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소열은 유비를 지칭하는데, 저 말은 유비가 이릉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와 후주(유선)을 불러앉혀놓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그대로 해석하면, '유비가 죽기 전 아들 유선을 불러앉혀 이야기하길, 작은 선이라고해서 행하지 않아서는 안되고 작은 악이라고 해서 행해서도 안된다'라는 뜻이다. 두번째 문장은 쉬운 한자로 쓰여있어서 오래도록 기억을 하는 것 같은데, 이 역시 문장을 풀이하면 '내게 선하게 대하는 이들은 나 역시 선하게 대할 것이고, 나를 악하게 대하는 이들에게도 나는 선하게 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남을 악하게 대하지 않으면, 남 역시 나를 악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다. 예전에는 글공부가 인성을 가다듬는 수양의 수단이었고 그 시작을 명심보감과 함께 했다고 하는 것처럼, 역시 도덕책에서 나올 것 같은 문장들을 배운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까마득한 무의식에 남아있던 문장들을, 나는 과연 언제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대체로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때, 복잡한 일들에 치여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이 들 때, 또 다른 고전문학이나 고전영화 혹은 철학 등 오랜시간 인류에게 주효했던 일종의 진리와 가까운 메세지들을 접할 때 그런 문장들을 되뇌이기 되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것이 바로 고전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이 달라지더라도, 또 어떠한 원리를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더라도, 그것을 관통하는 핵심원리만큼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 말이다. 몇 년전 호황기에서 불황기로 경기가 전환이되던 때 경영학계에서는 고전 인문학 읽기가 유행을 했었던 것도,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경영위기를 타계하고 보다 효과적인 해답을 도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날 치유의 의미로 고전읽기가 유행하는 것도, 개별적으로 파편화되고 자본주의와 상업성으로 소외되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에 고전이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할아버지는 내게 결과적으로 한자를 가르쳐주시진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기를 함께하는 시간동안 일부 전해주시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인생공부>

최근 짧은 시간이 날 때마다 토막토막 읽는 책이 있다. 논어와 한비자의 부분을 현대에 맞게 해석해놓은 <인생공부>라는 책이다. 거창한 제목보다 부제가 더 와닿아 읽게 되었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내는', '삶에 내공을 더하는 실용적인 고전읽기'.


인정하긴 싫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일종의 위기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봄이 지나고 바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육아휴직을 기점으로, '아빠'로서의 역할에 도전을 했다. 육아에 엄마 아빠 구분이 어디있겠냐만은, 그래도 기왕이면 전업으로 육아전선에 뛰어든만큼 나는 복직을 하는 아내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 이상의 어떤 '특별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 아이는 여러차례 잔병에 시달렸다. 감기, 폐렴, 수족구, 후두염 등등... 아내와 가족들은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동안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주양육자로서 아이가 반복해서 아픈 것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며 나는 자책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정 내 살림살이의 방법이 바뀌면서 그것에 맞는 규칙을 만들고 익숙해지는 것에도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휴직을 하기 전 꿈꾸었던 나의 위시리스트과 투두리스트들이 죄다 무기한 연기되어버렸다. 눈 깜짝 하는 동안 한두달의 시간이 지나가버렸고, 그 기간동안 나의 삶은 삭제되었다. 더 이상 삶에 온전한 나의 시간은 찾을 수 없었고, 나는 그게 일종의 위기처럼 느껴졌다.


그 불편한 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들을 시도했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어느정도 극복을 하고 나의 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산책이나 운동, 여행 등의 방법을 비롯하여 고전읽기 독서모임을 지속해왔던 것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주효했던 것 같다. 이 모든 노력들이 '중심잡기를 위한 사색의 시간'을 확보해준다는 점에서 나에게 큰 힘이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사색의 과정과 결과를 타인들과 일정부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고전읽기모임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 고전이 나의 삶을 지켜주는 튼튼한 뿌리가 되어준다는 것을 경험한 나는,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도서 이외에도 동양과 서양 고전들을 찾아 읽곤 했다. 그렇게 나는 <인생공부>라는 책을 읽고 있다.



논어에서 배우는 인생공부

책 속의 글들은 현학적이거나 딱딱한 표현들이 아니다. 고전 원문을 짧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핵심만 요약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 한문장의 느낌으로 읽고 마음에 새기기에 좋다. 아래에 몇몇 문장을 소개해볼까 한다. 편의 상 한자는 생략하겠다.


증자가 말하길, 군자는 글로 친구를 모으고, 친구로 인을 덧댄다

저자는 이 문장을 언급하며, '글'의 개념을 학문에 한정시키지 않고 문화를 포함한 일종의 가치관으로 해석하여 관계를 어려워하는 현대인에게 사람사귀는 것의 방법과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자장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길, 공손 / 관용 / 믿음 / 민첩 / 은혜로움을 실천하면 인이 생긴다. 공손하면 남이 업신여기지 않고, 관용을 베풀면 민심을 얻으며,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의지하고, 민첩하면 공로가 있고, 은혜로우면 남들을 부릴 수 있다

이 문장을 해석하는 것에서도, '인'의 속성을 통해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다섯가지의 핵심요소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오늘 날의 인간관계의 변질과 상실의 문제에 대해서 지적한다.


공자가 말하길,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을 바에야 반드시 미친 듯이 열정적인 사람이나 고집이 센 사람과 함께하겠다. 미친 듯이 열정적인 사람은 진취적이고, 고집스런 사람은 하지 않는 일이 있다

현실적으로 '적절함'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싶다. 공자 역시 그런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단정짓지 않고, 현실적인 조언을 했던 모양이다. 적당히 살 수 없다면, 열정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이들과 함께 하라는 조언이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적용이 되는 문제이지만, 업무를 진행하는 것에도 적용이 되며, 나아가 타인이 아닌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적당히 살 수 없다면, 파격적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단, 옳은 방향이라는 주관을 가지고서 말이다.


공자가 말하길, 정나라에서는 중요 문서를 작성할 때, 비침이 초고를 작성하고, 세숙이 그것을 가지고 토론하며, 행인 벼슬에 있는 자우가 문장을 더 좋게 가다듬고, 자산이 문채를 더했다

글쓰기의 단계를 창작 / 토론 / 수식 / 윤색(퇴고)의 4단계로 보고, 이 과정을 거치며 글을 쓰기를 권한다.


공자가 말하길, 가난하면서도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도 교만이 없기는 쉽다

현실은 위의 말과 반대다. 교만하지 않은 부자들을 찾기 어렵고, 굳이 부자가 아니더라도 타인과의 차이를 차등으로 둔갑시켜 혐오를 통해 나를 치켜세우는 오만이 넘쳐흐르는 시대다. 저자는 이 교만을 '열등감'으로 해석해야한다고 한다. 반면 가난의 문제는 사회구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원망하지 않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사회적인 부조리를 없애야 한다는 게 궁극적인 주장이 아니었을지.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보면서, '세상이 쉽게 보이면, 그 때가 제일 위험한 시기'라고 했던 어느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한비자에서 배우는 인생공부

논어의 내용들이 대체적으로 개인에 대한 수양의 느낌이 강했다면, 한비자의 내용들은 경영학의 고전을 보는 느낌이다. 특히 법률 등의 시스템을 강조한 것이나, 리더쉽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보면 더더욱 현대의 경영학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일단 가정의 유지와 번창을 위해 어떤 금전적인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부터, 작게나마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러한 경영학적 관점은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두고두고 꺼내봐야겠다는 느낌이랄까.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목표와 계획을 평가하는 방법'과 리더로서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기준'에 대한 것이었다.


마구 허공으로 쏘아댄 화상에 호랑이가 잡혔다 하더라도 이는 우연에 따른 것이지 예정된 목표를 달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신하에게는 벌을 내려야 마땅하다. 군주는 우연을 경계해야하며, 반드시 신하가 목표를 제출하도록 해야한다. (중략) 목표는 강제로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 스스로가 제출토록 해야한다. 이렇게 제출받은 목표와 성과를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성과가 목표에 못 미치거나 넘치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성과의 일치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으로는 이 글은 상식과 다르다. 목표치를 초과한 성과를 내었을 때 벌을 받는 다는 것은 동기부여 측면에서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한비자가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한비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속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는 신뢰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평가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목표를 세울 때 정확히 계획적으로 세우는 것을 유도하여, 업무에 대한 몰입도를 올리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지만,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어 보인다.


군주의 도는 신하로 하여금 발언에 반드시 책임을 질 수 있게 하고, 또한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중략) 이리하면 신하는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며,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을 하든, 침묵을 지키든 모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발언과 침묵에 대해서 모두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임이 능동적인 행동에만 뒤따른다고 생각하면 사회도, 조직도, 개인도 쉽사리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침묵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끼는 조직을 만들 때, 그 조직은 더 좋은 생각들을 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마무리하며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대체로 긴 글에 주관적인 해설이 많이 개입된 한비자의 부분에 비하여, 논어 부분이 지나치게 간결하고 해설이 아닌 해석으로 느껴지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논어가 가진 특성 자체가 긴 문장이 아닌 짧은 대화의 언급이라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닐까한다. 논어의 해석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읽는 독자의 몫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끝으로 쉽게 읽기 어려운 논어와 한비자라는 고전을, 조금도 낡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 저자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고전의 힘을 느낀다. 삶에 쫒겨 마음이 흔들릴 때, 다급해진 나의 시각은 대체로 근시안적 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럴 때마다 필요한 것이 고전이 아닐까. 오랜시간동안 검증받고 읽혀져왔다면 시공간을 관통하는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그게 바로 기본기가 아닐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삶을 살아가는 이정표로서의 기본기는 언제나 중요하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고전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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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

고전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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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일전에 작성했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네이버블로그 리뷰에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그 책은 그동안 여성들이 겪어왔던 불합리한 상황들에 대해서 여성의 목소리로 떳떳히 이야기하는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 책의 리뷰를 내가 작성한 의도는 작가의 의도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방식에 대한 모색을 함께 생각해봤으면 하는 그런 의미였다. 뭐랄까 지금까지의 부조리함 혹은 시대가 바뀌면서 부조리함을 알게 된 사항들을, 무턱대고 외부의 특정한 적을 만들어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여태까지 대중을 컨트롤 하려고 하던 구시대의 특정 계층의 수작질과 거의 비슷해보였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현시대의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근의 여성우월주의 및 남성혐오 운동으로 변질되어가는 여성운동과 그것의 반작용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여혐의 분위기를 바라보면서, 그 사회에 속해있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이 흐름이 '혐오'를 기반으로 한 대결이 아닌 더 나은 대안을 찾기위한 생산적인 토론과 의견교환의 시간으로 활용되기 바랬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남녀, 특히 앞으로의 사회를 이끌어 갈 나와 같은 젊은세대들은 결국 남과 여의 동질감과 시대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상생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옮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거라고 나는 믿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물론 책의 내용 상 불편함을 가질 일부의 반응을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현 여성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의 댓글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 역시도 현재의 자칭 여성운동이라 말하는 이들의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가 전혀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단순히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떠나 작가의 의도와 모든 여성들의 목소리를 현재의 왜곡된 여성운동단체와 동일시하고, 더 나아가 '혐오'를 배척하고 '상생'을 주장하는 나 역시 그러한 극단적 여성주의자들과 궤를 같이 한다는 비난까지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왜 그런 소리를 하려고 굳이 이 소설의 리뷰를 검색해서 들어와서는 빠락빠락 댓글을 다는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왜 내가 욕을 먹어야하는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보니, 한편으로는 극단적 방식으로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과 반발로 생겨난 일부 여혐 댓글러들 모두가 안타깝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82년생 김지영> 이후로 나온 조남주 씨의 비교적 최신작 <그녀 이름은>을 읽었다. 나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옳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맞는지, 무엇을 옳다고 해야만 하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나서 기존 나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동시에 그럴수록 혐오를 외치는 젊은 세대들이 더욱 더 안타깝게 여겨졌다.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P.90


내가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이 지났을 때, 아내와 엄마는 화장실 앞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명절이 되면 수십 명의 어른들이 방문하는 우리집은, 낯을 많이 가리는 아내에겐 분명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집안의 첫 며느리였으니, 방문하는 이들 모두의 관심은 예쁜 한복을 차려입은 새아기에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고가는 덕담에 누군지도 모르지만 늘 웃으며 응대했던 아내. 명절이 끝나고 세수를 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던 아내는, 엄마의 '처음이라 고생많았지?'라는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려버렸는지 그만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안고 엄마도 같이 울었다. 새아기와 헌아기가 서로 안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자 아들로서 괜한 미안함을 느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게 없어, 멀뚱멀뚱 벙쪘있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또 본가에서 숙모들과 엄마와 함께 모두 이야기하던 중에 '호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중학생인 사촌 동생이 숙모에게 물어보더란다. "왜 형(나)은 형수(아내)님을 '정아'라고 불러?" 실제로 나는 집에서든, 본가에서든, 혹은 처가에서조차 아내를 이름으로 부른다. 풀네임은 아니고 이름의 끝글자만 '정아'라고 부른다. 아내 역시 나를 이름으로 부른다. 10년여 간의 연애기간동안 입에 붙은 호칭이기도 했고, 서로가 가장 친숙하게 느끼고 그렇게 암묵적으로 동의된 것이었기에 특별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즉, 사촌동생이 호기심을 가질만큼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대답했다. 호칭은 상호 간에 불편함이 없는 선에서 서로에게 인식된 존재의 나타내는 대표 단어라고, 그래서 나에게 아내는 이름 그 자체로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보기에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가족으로서 예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말 아내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생각한다면 각자의 호칭을 만들어 그것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도 숙모도 크게 말씀하지 않고 동의해주셨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을 했을 때, 할머니는 엄마에게 아빠에 대한 호칭을 신경써주길 바랬다고 한다. 시동생 여럿을 데리고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엄마 입장에서 누나가 처음 태어나기까지 아빠를 부르는 것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을 것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아빠는 일부러 엄마에게 존댓말을 했다고 한다. 한 3년정도? 그 많은 가족 구성원들 중 혹시라도 누군가 엄마를 무시할까봐, 인격적으로 대해주길 바란다는, 그렇게 아빠 방식으로 엄마를 지켜주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부모님이기에 나의 생각을 수용해주시고, 지금처럼 딸처럼 이름으로 아내를 불러주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감사하다. 아내 역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 이름은>의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것이라 생각한다. 대상을 기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강요해오던 역할이나 틀에 가두지 말라는 것. 그런 역할와 기대를 부여받고, 그것을 맞춰살다보면 자신의 존재를 잃고 쉽게 '소외'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역할 강요로 인해 쉽게 소외되는 계층은 대체로 사회적인 약자들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여성이라는 큰 공통점 외에도, 동시에 학교급식 영양사 아주머니, 거주할 집 구하기 어려운 부부 중 여성 입장의 서술, 성주지역 사드 반대 할머니, 여성 버스 운전자, 외손녀를 봐주는 할머니, 엄마의 병간호를 한 프리랜서 딸, 성범죄에 노출될 뻔한 여성, 방송사 파업 부부 중 여성 입장의 서술, 직장 내 육아휴직 1호인 여성, 철도청 정직원 전환 시위 여성, 국회 청소담당 아주머니 등의 사회적 약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남성이 여성을 이렇게 소외되도록 만들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그냥 여성이 그렇게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는 수준으로 여성의 입장과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소외된 계층의 여성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그렇게 각자의 의미를 인정받기를 원할 뿐이다.


위에서 내가 왜곡된 방향과 방법으로 그릇된 여성운동을 하는 젊은이들과, 그것에 반발하여 여성 전체를 격하하며 여혐을 외치는 젊은이들 모두를 안타깝다고 여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그 대상이 '젊은이들'인 이유도 그들 모두가 '소외'된 이들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는, 먼 미래의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살 수없는 이들로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어떤 소리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것이 효율성을 강조한 경제논리, 자본주의 때문이라 생각한다. 전처럼 현 세대는 고도의 성장을 이루며 살기 어렵다. 물론 전처럼 찢어지게 가난하지 사는 비율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인구의 감소로 인해 경제규모를 줄어들 것이며, 생산의 영역에서도 기술과 기계에 밀려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전 세대보다 더 부유한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세대가 현 세대이며, 이러한 상황들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아버렸다. 여기에 자본주의를 부흥시켜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현 세대를 향한 반 협박에 가까운 기대가 더해졌다. 기성세대와 기존의 제도로는 현 세대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니트족이니 프리터족이니 욜로족이니 나름의 현실을 버텨낼 방법을 찾다가, 이제는 점점 3포, 5포, N포로 하나씩 삶의 가치들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막다른 코너에 몰렸다. 경쟁사회에서 이 젊은이들은 더 이상 포기할 가치가 없다. 그래서 선천척이라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니면 바깥의 자신보다 못한 존재들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려고 한다. 그것이 '성'이고, 여기에 '혐오'가 더해져 표출되는것이다.


[뉴스 링크 : 고립 자처하는 혜화역 시위 여성들…워마드 성체훼손 논란까지]


혜화역에서 자칭 '여성인권시위'가 열리고 있다. 그들이 자행하고 있는 극단적인 행위들, 말도 안되는 구호들, 그리고 그들의 발언과 대처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분노는 대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분노의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들 스스로도 정확히는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저 화가나고 답답하니, 이것을 풀고 싶어 마구잡이로 총을 난사하는 느낌이랄까. 굳이 독립운동가들과 대통령을 성적 모욕이 담긴 단어로 희화하여 표현해야만 했을까? 지하철 낡은 역사 안 화장실에는 틀린 맞춤법으로 사회와 종교와 불특정 대상에 대한 저급한 욕설들이 낙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노숙자들이나 할 이런 행동들을 종교의미를 담은 성체에 똑같이 자행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자랑인냥 굳이 자신들끼리 공유하고 낄낄대야만 했을까? 또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은, 왜 시위를 하면서 찍지말라고 하는 것일까. 백번 양보해서 그들의 주장이 사회적인 성차별과 불평등을 없애자는 것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러한 주장을 널리 대중에게 알리고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행위가 시위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시위를 찍지말라니? 그렇다면 이들의 시위는 대중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아닌, 그들만의 놀이였던 것인가? 개인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뉴스 링크 : 성차별 규탄집회서 쏟아진 `남혐 구호`]


현실적으로 우리사회에는 성차별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 차별은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부조리와 여성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부조리가 모두 공존한다. 나는 사회적인 성차별은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러한 남녀 모두에게 강요되는 차별, 부조리를 동시에 타파해나가자는 의미이다. 여성이 많이 힘들었으니 이제 남성이 힘들 차례라고 말하는 것도 굉장히 저급한 주장이고, 반대로 남성도 힘든데 참고 있으니 여성도 참아라 하는 것도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또한 성적 불평등과 성범죄의 영역은 철저하게 구분하였으면 좋겠다. 불평등은 제도적으로 단칼에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의식과 꾸준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면 성범죄의 경우에는 이유를 막론하고 엄벌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 기성세대들과 조직의 남성들끼리 그러한 성범죄를 싸고도는 듯한 뉘앙스의 사례를 말하곤 하는데, 그건 남녀를 불문하고 처벌받아 마땅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그런 일이 있어왔고 지금까지 그러하다면, 그리고 그 조직이 그것을 개선할 생각이 없다면 강력한 처벌을 내려야한다. 같은 의미로 조직이나 사회 내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권력 우위에 있는 이가 그러한 지위를 남용하여 성범죄를 저지른다면 더욱 엄벌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기준은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어야한다. 혜화역의 시위 명분이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 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빨리 수사가 진행이 되었다'는 것에 있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명분이 될 수 있을까? 범죄의 행위자가 분명하고 그 행위와 과정도 분명한데, 그렇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일까. 시위에 대처하는 경찰 역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유로 여성 경찰의 비율을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늘리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가? 성 역할에 대한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고 사회적인 개선이 필요한 소외계층들 그리고 일부 여성들의 상황들이 희석되어버리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 뿐이다. 목적없이 방황하는 무책임한 총구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음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뉴스 링크 : “‘보이루’ 비판하니 발차기가 날아왔다” 학교폭력 대상된 청소년 ‘페미’]


이제 이러한 막다른 길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혐오는 더욱 더 사회의 깊은 곳까지 확산되고 있다. 판단력이 부족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력이 더해진 혐오가 나타나고 있다. 서로를 깎아내려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고자 한 이들의 잘못된 행위들은, 서로를 좀 먹고 더 나아가 사회를 좀 먹고 있다.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할지 걱정이 앞선다. 정말이지 이제는 기성세대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혐오'가 아닌 '상생'의 관점에서의 바른 성평등을 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하는 때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사회가 더욱 각박해질수록 당분간 지금처럼의 혐오 분위기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조만간 '세대 간' 갈등으로 혐오문제가 대두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미 노년층을 비하하는 '틀딱', '꼰대' 등의 단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확산되고 있다. 세대 간 혐오 및 갈등은 이성 간 혐오 및 갈등보다 더 거대한 흐름이 될 것이다. 사회적인 갈등이 '상생'의 방향으로 해결하는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감 있는 참여가 필요하다.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이 당당하게 느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 사회에서 내 이름 석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내 존재가 자랑스러운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한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존재감이 있는, 소외되지 않도록 함께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속의 한 줄, 한 문장 (발췌하며 읽기)


보람 있고 재미있는 일에 정당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도 그랬어, 우리 때는 더 했어, 라는 말을 하는 메인작가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안 해야 하는 말을 안 하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오늘 삼킨 말, 다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P.29


심장이 딱딱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촌스러운 이름, 버거운 일상, 불안한 미래, 하지만 계속 두근거릴 줄 아는 김은순으로 살고 싶다. P.61


신난 조카들을 보면서 삼십 년 후, 어쩌면 그보다 더 이르게 찾아올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다. 아마도 곁에 가족은 없을 것이고 그때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뜨거운 내 손의 유골함을 들고 이 길을 걷게 될 이가 단정하고 예의 바르고 능숙한 사람이면 좋겠다.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P.90


결혼하고 애 낳았다고 회사를 못 다니고 육아휴직을 못 쓰냐고요? 네, 아직 그런 세상이에요. 여전한 회사 많아요. 일 년 후에 무사히 복직한다면 제가 저희 회사 육아휴직 1호예요. 일단 1호가 나오면 2호, 3호, 4호 계속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109


학교 행정은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고 여전히 학부모들의 무료 봉사를 필요로 한다. 회사는 업무량이 너무 많고 어린아이 키우는 직원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남편은 당연히 육아가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는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극성'이라 매도한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직장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서로 도우며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P.118


자리에 꼭 맞는 퍼즐을 끼우는 것처럼 모든 게 착착 맞아들어갔다. 아파트 크기와 구조도, 위치도, 입주 시기도 다 좋았다. 조합원 자격도 갖추었다. 그런데 계약을 못 했다. 왜 계약금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 했을까.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생계, 대출, 이자, 육아, 그런 것들. 민주도 처음으로 오랜 생각을 입 밖에 꺼내놓았다. 남편이라서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P.144


오후 반차를 냈으니 나갈 준비를 하란다. 부랴부랴 딸 간식과 저녁을 준비해놓고 옷을 막 갈아입었을 때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부터 전속력으로 뛰었다는 남편의 얼굴에서는 땀이 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P.149


내 복직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긴 시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승객의 안전을 비용과 효율로 계산하지 않고, 여성의 일을 임시와 보조 업무로 제한하지 않으려는 싸움. 나는 여전히 젊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P.153


비정규직, 최저임금, 근속수당 같은 단어들을 다시 검색했다. 낯선 단어들은 아니지만 정확한 사전적 의미와 관련 규정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중략) 임금 결정 시 고려되는 원칙 ㅡ 동일노동 동일임금, 외부적 공정성, 내부적 공정성, 최저 생계비...... P.158


"아이들이 선생님 파업하시는 거죠? 파업 왜 하세요? 막 그러는 거 있지." "그래서 뭐라고 했어?" "너네들 아줌마처럼 살지 않게 하려고 그런다. 그랬지." "엄마처럼 사는 게 어때서? 치."


매일매일 아홉 시간씩 무사히 운전하는 사람. 그게 달인이지 별게 달인인가. 그래도 오늘 인생의 목표가 한 가지 생겼다. 언젠가 운전의 달인으로 <달인을 찾아라>에 출연하는 것. P.173


청소노동자 임금이 '직접고용 예산'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중략) 새벽 네 시, 그 시간에 예산안 통과를 알리는 단체 메시지가 왔다. 이제 청소노동자들이 용역회사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 직접 고용된다는 뜻이었다. P.180


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는 더 힘들고 누구는 덜 힘들고 하는 것 없이 공평하게 일하면 좋겠다. 손주들 봐야 할 때, 남편이 아플 때처럼 급할 때 한 번씩은 조금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오래 일하고 싶다. 진순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계속 말할 것이다. P.182


전업주부 딸은 백점, 칼퇴근하는 공무원이나 교사 딸은 팔십점, 그래도 저녁 먹기 전에 집에 오는 직장인 딸은 오십점, 밤 열두시에나 퇴근하는 대기업 직원 딸은 빵점이라고. 딸이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손주를 오래 봐야하니까. 진명 아빠, 우리 딸, 우리 자랑스러운 딸이 빵점이래.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는데 아니란 말이 선뜻 나오지를 않더라고. 사실 애들 보는 거 많이 힘들어. P.196


한 번은 기껏 손주들 내복이며 손수건을 삶아놨더니 향균 처리된 면이라 삶으면 안 된다고 짜증을 내더라고. 이유식 하려고 채소들 다져서 소분해놓았더니 유기농 아니라 애들 못먹인다고 지가 날름 볶음밥으로 먹어버린 적도 있어. 유치원 종일반 추첨에서 떨어지고 두 시에 끝나는 정규반이 되었을 때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게 얼마나 얄밉던지. 그래도 제 자식 일에 뒷짐만 지고 있는 사위가 제일 밉긴 하지. 아니다, 우리 아들도 똑같은데 내가 누굴 탓해.


손녀는 한참 동안이나 꺄르르 꺄르르 하며 뉴스 얘기를 하다가 다치지 마세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손녀의 전화를 받고 나니 마음이 더 단단해진다. 자신만 생각한다면 사드 아니라 사드 할머니가 들어온대도 솔직히 상관없다. 사드를 이고 살든 깔고 살든 어차피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하지만 물려줄 것 하나 없는 처지에 손주들이 살아갈 이 땅에 사드를 남겨줄 수는 없다. P.210


나는 그래도 가벼운 부상에 속했다. 많은 학생들이 탈진했고, 넘어지고 부딪히며 멍들고 부러졌다. 깨진 유리 조각에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표정들이다. 끌려 나가는 제자를 팔짱 끼고 쳐다보던 교수들의 덤덤한 표정, 아무렇지 않게 자기들끼리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경찰들의 표정, 그리고 그 많은 경찰병력을 보냈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표정.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인지, 곧 사회로 나간다고 생각해서인지 은미는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나는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은미가 재밌고 즐겁게, 때론 실수도 하고 방황도 하고 추억도 많이 만들면서 학창시절을 잘 보냈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이다. 은미에게도 학창시절은 풋풋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P.247


누구에게나 열린 광장, 스스로 모인 사람들, 같은 생각과 목적, 같은 목소리, 광장에 서니 약간 벅찬 기분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감정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굳이 가장 비슷한 단어를 찾는다면 죄책감일 것이다. 살면서 잠시라도 치열했던 적이 있었나. 고민하고 의심하고 질문했던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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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82년생 김지영> 리뷰

 : <82년생 김지영>, 혐오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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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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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조남주 씨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작년부터 사회적인 화두 중 하나인 '미투운동', 최근에는 '불꽃페미액션'과 '페미니스트시위', 그리고 남성 입장에서의 역차별 및 페미니스트 운동이 잘못 변질될 때의 위험성을 알린 '홍대 누드모델' 등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단골자료로 소개되었던 책이기에,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울시에서 'OO년생 XX씨'라는 형식을 복지정책홍보에 사용하고 있기에 익숙하게 느껴진 이 책. 시대정신과 이슈를 반영한 책을 읽지 않고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도 뭔가 예의가 아닌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잠시 짬을 내 책을 읽었던 것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읽어가며, 나는 때론 김지영 씨의 상대방의 입장으로, 때론 김지영 씨 당사자의 입장으로 이해하고 공감했다. 어떤 것은 남녀의 차이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였을 것이고, 어떤 것은 그 시대를 살아왔던 것에서 오는 공감이었을 것이다. 시대를 나타내는 '82년생'과 성별을 나타내는 '김지영'의 단어가 결합된 <82년생 김지영>의 제목은 그러한 이해와 공감을 반영한 것일테다. 나의 이해와 공감에 근거해서, 먼저 책의 내용을 짚어보려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P.37


남자 형제를 위해서 누이가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 되던 사회분위기부터, 결혼 후에는 '내조'라는 명목의 또 다른 희생을 강요받고 그것이 미덕으로 치부되던 시절의 이야기는 어머니를 통해 수없이 들어오던 이야기였다. 김지영 씨의 언니 김은영 씨처럼 '엄마와 여자만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억울해하고, 여성에 대한 불합리를 지적하는, 그러면서도 동생과 가족을 알뜰살뜰 챙기는 누나 아래서 자랐기에 은영씨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아무런 생각없이 집안의 장손이나 장남으로 대접받는 것에 익숙해져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느끼고 살았던 나 역시 김지영 씨의 동생과 닮았다.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P.41


지영 씨의 초등학교 시절 괴롭히던 짝궁처럼, 나도 옆 짝궁을 괴롭혔었다.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게 친교표현의 방법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그 짝궁은 나를 밉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호감을 호감으로 받아주었던 것 같다. 눈높이에서 나눠주던 카드 쓴 편지와 함께 초콜릿을 내 책상서랍에 넣어주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니 그런 표현 역시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마치 지영 씨가 상견례에서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이 예비 시어머니에 배려의 행위로 전달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영 씨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행동의 의도를 말하고자 한 바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지영 씨나 작가는, 표현자와 수용자의 교감으로 완성되는 하나의 관계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강요되어 늘 정해져있었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시절의 지영 씨에게 이러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 그녀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절의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언니인 '은영'씨가 일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에게 늘 수동적인 수용자의 입장을 강요하는 상황은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계속된다. 게다가 '조신'함이라는 속성까지 부여받는다. '가'하는 입장의 행동의 책임이 '피'해자인 여성에서 귀속이 되는 상황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 김지영 씨는 그럴 때마다 억울함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지만, 자라면서 당연시되어온 분위기에 익숙해져버렸는지 이 때도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문제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저 버스 사건을 통해 위험에 처했던 상황을 도와준 이름모를 여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문제의식을 확인하고 희망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떠받드는 듯 말하곤 했다. (중략) 그래 놓고는 역시 무던하고, 힘 잘 쓰고, 같이 편하게 뒹굴 수 있는 남자들 덕분에 동아리가 굴러간다고 자기들끼리 으쌰으쌰했다. P.91


시대가 변하고 지영 씨도 나이가 들어 대학교 시절에 접어들어도 어쩔 수가 없다. '조신함'이라는 기존에 강요되던 요소에 '배려의 대상'과 '사회적, 경제적 책임'의 굴레가 더해질 뿐이다. 이 시절의 압박과 굴레는 더욱 교묘해지고 애매해져서, 배려라는 이름의 소외가 행해진다. 여성은 하나의 보호의 대상이자 '껌'과 같은 소유물일뿐, 존재 자체로서의 주체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지영 씨는 이에 대해서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먼저 고백을 했다던 선배인 차승연을 통해서 그러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10년이 더 지난 후에서야 해결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여성은 더 높은 기준을 강요받는다. 성적이나 스펙 외에도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어느정도 포기받기를 강요받고, 그래야만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여자로' '사회생활'을 '이겨내려면' 이정도의 '성적수치심'은 견뎌내야한다는 느낌으로. 어렵사리 취업의 문을 통과한 후에도 살아남기는 더 어렵다. 여성은 '출산'과 '육아'의 모레주머니를 항상 차고 다녀야한다. 그리고 시한폭탄이 터지듯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이 되면 어김없이 모든 것은 내려놓아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김지영 씨는 억울하고 분하지만 결국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회사의 여자 팀장님을 통해서만 이러한 저항이 표현될 뿐이다.


가정에서도 육아와 살림의 가치는 타자의 평가에 좌지우지 되었다. 육아와 살림이 당연한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고, 남편의 이해는 오직 '함께하는 것'이 아닌 '도와주는 것'으로 표현되는. 그럼에도 육아와 살림의 가치는 경제적 논리에 의해 폄하되고 '맘충'으로 취급받게 되는. 그런 삶을 살면서도 지영 씨는 끝끝내 자신의 목소리를 외부로 내지 않는다. 다만 늘 그래왔듯, 언제나 진취적이었던 소수의 여성들, 어머니, 언니 은영씨, 차승연씨, 팀장의 목소리로 문제를 꼬집고 비판하고 저항하고 있을 뿐.


책의 내용은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 최대한 보편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였지만, 상황상황의 극단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나는 너무 공감하며 읽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아내의 상황과 최근육아를 시작한 것까지 우리의 삶을 너무 디테일하게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과 요즘의 나를 되돌아보는 느낌까지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순간순간 울컥했다. 특히 의사의 아내가 커리어우먼에서 전업주부로 바뀌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다소 무기력한 모습으로 초등학교 수학문제집을 풀면서 하는 대사를 보고는 정말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바보가 된 것 같다는 몇 일전 아내의 말을 듣고, 아이와 더 격하게 노는 것 이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의 무기력함이 떠올랐다.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밖에 없거든."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P.174


설명하기 힘든 병적인 현상으로 김지영 씨를 표현하고, '빙의'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있다. 지영 씨가 병들었다는 설정을 통해 사회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희생과 피해를 강요받던 여성들이 병들었다는 의미로 대체될 수 있고, 또 김지영 씨로 대표되던 그저 수동적이고 사회에 대해 수용하는 자세를 일관하던 여성들이 이제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살 수 없을만큼 사회적인 문제가 심하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겠지. 어쨌든 이제는 함께 그런 목소리에 내야만 하고, 그래야만 더 이상 사회와 구성원이 병들지 않는다고, 그러니 함께 동참하기를 유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 책은 3인칭의 화자가 1인칭으로 서술하는 형식이다. 아무리 김지영 씨가 보편적인 그 시대를 살아온 여성의 대표라고 할 지라도, 1인칭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개인의 입장이며, 따라서 사회를 평균을 가정하면서 보더라도 주관적인 해석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다. 좋은 남자가 많고 나쁜 남자도 많듯, 여자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오해를 만들어서 성별 간 대결구도 조성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김지영 씨 부부를 상담한 남자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한계(마치 혜택을 베풀고 양보하는 듯한 관점에서 처와 딸을 바라보고, 그를 통해 사회에서의 여성과 가정 내의 여성을 구분지어버리는)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사회(퇴사하는 여자 동료의 후임으로 미혼을 고려)를 보여주려는 의도까지도 충분히 잘 전달이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보편적인 남성의 시각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위험하다. 이러한 의견이 여성간의 유대를 증진하고 권리를 지키고 찾으려는 노력을 촉구하는 의도로 비춰져야지, 곡해되어 남성을 비난하는 하나의 근거로 사용된다면 또 다른 성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것으로 왜곡되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JTBC 2018년 1월 30일 엥커브리핑, 서지현검사의 미투운동)


책 중에서도 언급되었던 '된장녀'라는 단어. '~녀'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녀', '~남'의 구분짓기 현상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고, 사고는 행동을 유도한다. 된장녀, 김치녀, 고추장남 등의 구분은 처음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상대 성별을 비난하고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정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성별에 대한 이미지의 강요, 그리고 젠더문제는 그러한 단어가 규정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오히려 더 심했다. 문제들이 너무나도 당연시 되었기 때문에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문제를 드러내는 노골적인 단어들을 통해 우리들은 비로소 사회의 병폐를 직시하고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결국 사회와 의식이 바뀌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당연시되던 문제점을 처음부터 다시 뜯어봄으로해서 성 역할과 특정 이미지를 고착시키지 않도록 새롭게 거듭나는 과도기로 여겼다. 그 과정에서 구분짓기과 비난이 하나의 문제로 부각되지만 결국은 이 또한 무의미한 현상으로 취급될 시대가 도래하리라 믿었다. 그 과도기를 얼마만큼 길고/짧게 가져갈 수 있느냐는 우리의 참여와 태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과거에는 여러 이유들로 여성들이 억압을 받았다. 희생도 강요받았다. 약자와 강자를 나누자면 늘 약자에 속하게 되었다. 조금 의식이 나아져서 '배려'의 개념이 도입되었지만, 그 또한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하나의 양보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취업자의 비율이 여성보다 남성이 높고, 임원과 관리자의 비율도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 간 소득의 격차도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그것은 충분히 억울할 상황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성의 탓인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일부 남성의 문제도 있지만, 그 책임 모두를 남성에게 돌리는 것과 그리고 해결방안을 그 상황을 역으로 돌려주거나 절대적인 평등으로 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 예로 초등학교 선생님의 경우에는 여성교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남성의 성향이 교사라는 직업에 큰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라며 사회와 남성의 탓을 하는 여성들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오히려 물리적으로 힘을 많이 쓰지 못한다는 여성의 제약으로 인해 남성은 그 집단에서 배려라는 이름의 피해를 강요받는다. 그런 문화가 남자로 하여금 교사가 되는 진로선택을 막는 분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교사라는 영역은 원래가 여성에게 유리한 면이 많은 영역이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극복가능한 부분이지만, 보편적이고 선천적인 성향상 돌보고 지도하는 것은 여성에게 유리한 면이 많다. 아무리 첨단화 되었다지만 군대와 같은 집단은 육체적인 요건을 많이 요구한다. 이런 직종은 남성이 유리하다. 남성이고 여성이고 서로 잘 할 수 있는 영역에 자연스럽게 진출하면 된다. 다만 우리가 할 것은 직업이나 그러한 차이에 가치를 자의적으로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차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없애는게 맞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다르다.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고, 더 높은 기준을 통과했다. 그것은 인정해야한다. 다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높은 업무강도와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있는 것도 맞다. 그래서 무작정 비정규직을 없애거나 정규직으로 통합하는 것보다는, 비정규직의 리스크에 대한 보상을 마련하는게 맞다는 생각이다. 호주와 같은 국가는 용접공이나 굴뚝공같이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거나, 혹은 파트타임 근무자나 비정규직 등 고용이 불안정한 이들에 대해서 시간대비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한다고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력과 의도를 무조건 적으로 동일하게 보는 것이 합리적인 평등은 아니다. 노력하는 것조차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정말 합리적인 평등으로 작용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때와 동일하게 차별과 차이를 구분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과도기가 지나가면 합리적인 평등에 대한 의식과 행동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팍팍한 삶이 그 시기를 굉장히 늘리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나의 이해는 나의 손해를 말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은 서로 이해할 수 없다거나 이해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또 그 반대편에서 이해하려들지 않는 태도가 문제라고 추궁한다. '~녀', '~남'으로 불리던 비난은 이제 '~충'으로 보다 적나라하고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한남충', '맘충' 등의 단어를 듣다보면 벌레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대부분의 인간이 벌레로 취급받는 시대. 시간적, 경제적, 심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퍽퍽한 현실은, 참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경쟁의 링 위로 올라오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해낸 후 갑과 을의 관계를 통해, 갑은 을에게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차별에 대한 문제인식이 또 다른 '혐오'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문화계, 연예계, 법조계 등에서 용기있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기시되던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 오픈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언젠가는 겪어야할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들을 응원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은폐/자살 등의 불미스런 일들도 발생했고, 때로는 그러한 용기를 이용하는 나쁜 이들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사회적인 그리고 집단의 지성을 통해 자정작용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믿는다. 제발 부디 그 과정에서 차별과 평등의 이야기가 혐오의 문제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볼 뿐이다.


종종 아내와 이런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아내가 나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특히 '혐오'에 대한 태도만큼의 이견의 여지가 없다. 왜 남자와 여자가 성별 때문에 서로를 욕해야하는지. 남자는 여자가 좋고, 여자는 남자가 좋은게  당연한 것인데 왜 싸우는 것인지, 우리 부부는 이해하지 못한다. 남녀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이런 현상을 만든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우스갯소리로 저렇게 극과 극으로 치닫아 싸우는 이들은 '진짜 (존중을 담은) 사랑을 해보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일거라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이가 아직 어려 바깥 산책을 할 때는 거의 유모차를 이용하고 있다. 유모차를 끌면 나는 많이 편하지만, 속도도 느리고 길도 많이 차지해서 어쩔 수 없이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배려를 받는다. 건널목을 건널 때도 확실히 차들이 조심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 칼 같이 정차를 한다. 택시를 잡을 경우에도 앞선 사람들이 먼저 우리를 태워보내주시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열림버튼을 누르고 기다려 주신다. 아이와의 산책 한 번에 우리는 이렇게 많은 크고작은 배려들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다.


도시 전체가 한 아이를 키워낸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겉으로 쉽게 표현되는 시골의 정이 없는 도시이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그런 배려와 공존, 상생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남과 여,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들 모두 더불어 살아갔으면 좋겠다. 다름은 인정하되 그것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굳이 나의 편협에 상대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는 상대. 나는 나인 것으로 살아갈 수 있는 쿨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17년생 우리아이에게는 이 소설이 너무도 생소하게 느껴지길 기대한다.




책 속의 한 줄, 한 문장

"치사해서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중략)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씨는 그 '아무'보다 못한 존재인 듯했다. P.25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된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P.37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 선생님이 잘 얘기할 테니까 이렇게 오해한 채로 짝 바꾸지 말고, 이번 기회에 둘이 더 친해지면 좋겠는데." 짝꿍이 나를 좋아한다고? 괴롭히는 게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김지영 씨는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좋아한다면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P.41

 

김지영 씨가 직접 인사해야겠다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자는 다행이라며 대뜸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했다.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P.69

 

돈 말고는 어떤 것도 위로나 격려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김지영 씨는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P.85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게 꽃이니 홍일점이니 하면서 떠받드는 듯 말하곤 했다. (중략) 그래 놓고는 역시 무던하고, 힘 잘 쓰고, 같이 편하게 뒹굴 수 있는 남자들 덕분에 동아리가 굴러간다고 자기들끼리 으쌰으쌰했다. P.91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여성들을 비하하는 무슨무슨 녀, 라는 말들이 한창 유행하던 즈음이었다. 웃으라고 한 말인지, 우습게 보고 한 말인지, 된장녀라는 말의 뜻을 알기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P.115 

 

여전히 손끝이 저리도록 애틋했다. 하지만 김지영 씨의 일상도 전쟁이었고, 긴장을 놓으면 당장 피투성이가 될 순간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안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P.119

 

별 뜻 없었던 행동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김지영 씨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P.127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대에게 건내는 행위와 말이 의도치 않게 해석될 수 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P.132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P.136

 

입주 도우미는 아이를 돌보는 사람일 뿐 아니라 김지영 씨 가족의 모든 생활과 살림과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중략) 함께 잘 살아갈 타인을 구하는게 가능할까? P.143

 

 "이번 기회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많이 도울게." 정대현 씨는 진심이었고, 그런 남편의 뜻을 잘 알면서도 김지영 씨는 불쑥 화가 났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사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P.144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P.149

 

삶의 어떤 고난도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P.159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중략)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P.165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밖에 없거든."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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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 돈 걱정 없는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부채 관리 전략
백정선.김의수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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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라는 직함 때문인지 재무제표를 비롯한 재무정보를 볼때는 뭔가 허리에 힘이 들어가고 더 꼼꼼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중에서 나는 특히 더 '손익계산서'나 '현금흐름표'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재무상태표가 현재 순간의 자산과 부채의 상태를 보여주기에 일목요연한 느낌은 있지만, 현금흐름표 등의 정보가 그 기업의 과거와 미래를 보다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이익을 사내유보금으로 축적하기 바쁘지만, '대마불사'가 통용되던 과거에는 기업의 덩치를 키우기에 바빴다. 그런 기업들은 부채를 끼고 기업을 확장을 해나갔다. 투자로 치면 갭투자와 다름없다. 그러다가 사업이 실패하거나, 예정된 수익이 나지 않으면 그 기업은 이자부담까지 이중으로 떠안아야 했다. 그나마 사업이 실패해서 망하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때로는 매출을 올렸음에도 그 매출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도산하는 케이스도 생겼다. 이른바 '흑자도산'이다. 그런 케이스들을 여럿 봐왔기 때문에, 나는 '현금흐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돈은 혈액과도 같다. 돈이 돌아야 기업은 살아갈 수 있다.


가계도 기업과 같다. 가계의 재무관리를 함에 있어서도 나는 '현금흐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전한 현금흐름이란 더 많은 돈이 유입되고, 최소한의 돈이 유출되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대출의 속성'을 파악하며 살자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대출의 속성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무리하지 않는' 투자 및 재무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가계에서 자기자본을 유출시키는 소비성 부채는 줄여야한다는데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신혼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고정생활비는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식비, 교통비, 통신비, 공과금 등등을 합쳐도 그렇다. 아이생기고 조금 소비가 늘긴 했지만 아주 큰 수준은 아니다. 물론 비정기적인 이벤트성 지출에 대해서는 더욱 대비할 필요가 있겠지만, 여유자금을 두면서 동시에 꼼꼼한 계획으로 그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



저자는 소비를 줄이고 관리하는 방법으로 아날로그 소비(가급적 소비하는 느낌을 느끼게 하는 것)부터, 불필요한 것을 자제, 아이의 행복을 생각하는 교육비 지출, 노후설계방법 등을 조언한다. 얼마전 사교육 및 교육비 지출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정답은 없겠지만 자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가성비와 효율을 고려하여 아이의 행복을 함께 고려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부모들이 정말 많더라. 분명 사교육이 가진 효과적인 면이 있을 것이나, 효율성과 아이의 행복을 함께 고려했을 때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노후 대비와 관련해서는 이런 조언이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꿈은 미래로부터 거꾸로 꾸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하면, 원하는 장면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생각한 뒤,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 그 전에는 무엇을 해야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또 그 전전에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적어가면서 현재로 내려오면,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노후에 대한 대비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정을 이루었다면 배우자와 함께 그런 고민들을 공유하고 대화해야한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우리는 최적의 소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빚이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소비를 아무리 현명하게 줄여나간다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일정수준 이상의 지출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소득을 늘린다는게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한 시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소비를 줄임과 동시에 소득을 늘리는 것을 병행해야만 '가난'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이 지점에서부터 나는 이 책의 저자와 생각을 달리한다.




투자에 대출을 활용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저자와는 달리, 나는 자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투자의 측면에서의 레버리지는 요령껏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풍족한(풍족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노후시기에 비해서) 젊은 시절의 소득은 일종의 미래의 부를 현재가치로 환산하여 당겨받는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노후에 누릴 수준을 결정한 후에 그때 필요한 자금을 계산할 때 현재금액을 미래가치로 환산하는 역계산을 한다. 이 말은, 단순히 재무관리를 잘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것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려면 미래에도 현재의 돈이 동일한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인플레이션만큼의 이율이 보장이 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순 저축이 인플레이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요즘 어린 학생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소비습관 개선을 통해 종자돈을 모으는 수준의 저축을 권장하고, 그 이후에는 돈을 굴리는 재테크 방법을 공부하여 투자하길 권한다. 너무 무리한 투자말고 자신의 소득의 수준에서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는 수준으로는 재테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지점까지 고민이 진행되면 봉착하는 문제가 고정수익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무리하지 않는 선으로 대출을 이용해 투자를 해야만하고, 그래서 재테크를 반드시 공부해야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무리하지 않는 선'과 관련된 투자원칙이 있다. 그 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현금흐름이 무조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나의 주변 투자자들도 이렇게 조언을 한다. 부동산 투자 영역으로만 한정지어 이야기해보면 고정적인 근로소득이 확보되는 젊은 시절에는 리스키하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차익형' 투자를 하고, 나이들어서 '수익형' 투자를 하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대출을 생활화하여 이른바 대출을 활용해서 갭투자를 하거나 집을 지어 팔거나 등등의 차익형 투자를 한다. 나 역시 차익형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비중이나 순서에서 지인들과는 차이가 있는 편이다. 이를테면 대출을 일으켜 수익형 투자를 하는 것, 그리고 그 고정수익으로 감당되는 범위에서의 레버리지와 약간의 시세차익, 그리고 저축액을 활용해서 새롭게 차익형투자를 시도하는 것이다. 당연히 투자의 판단은 본인의 몫이고 그것을 위해서 재테크 공부가 선행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다만, 오직 차익만을 바라보고 빚을 내서 투자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손가락 빨면서 오르기만을 바라며 현재의 현금흐름을 악화시킨다는 게 나의 기준에서는 투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현금흐름에 집중한 투자 및 가계의 재무관리는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다만 그만큼 리스크관리를 할 만큼의 공부도 필요하고, 또 미래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포기한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금리인상에 대한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대출을 점차 상환하는 방향으로 나 역시 전환하고는 있다. 효율성이 아닌 안전성을 고려한 결과다. 온전히 리스크 헷지가 가능한 나의 자산으로 만들 때 진짜 내 것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생각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미안함의 말을 전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어떻게든 가난을 끊고, 경제적으로 환산되는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켜, 원하는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것. 누구나 바라고 심플한 것 같지만, 그만큼 냉정한 것이 자본주의이다. 저자는 책에서 생계 및 과소비를 위해 대출을 하는 이들을 위해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기본적이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 이 책은 여러 도움을 줄 것이다. 명심하자. 대출은 남의 돈이거나 혹은 미래의 나의 돈이다. 그것을 현재에 쓰는 것일 뿐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돈은 온전히 자신의 돈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진짜 나의 삶을 살 수 있다.









독서 중 생각 메모


구조적으로 전과 같은 고성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1) 구성원(인구)가 줄어드려는 추세다. 시장경제의 참여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공급과 수요를 담당할, 특히 수요적 측면에서의 양적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2) 경제규모가 계속해서 커지기 위해서는, 인구의 감소로 인한 규모 축소를 능가할 만큼의 새로운 혁신으로 시장영역을 개척하거나, 근로자에게 더 많은 소득을 제공하여 1인당 소비규모를 키우거나, 그게 아니면 인플레이션이 증가하여 명목적으로나마 화폐가치 대비 경제규모를 크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두 어렵다.

3) 시장창출과 생산효율 증대를 위한 기술발전은 오히려 노동시장을 위협한다. 위협받는 노동시장으로 인해 근로소득은 줄어든다. 따라서 이것으로는 수요가 창출이 안된다.


결국 기대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자본소득을 늘리는 것 뿐이다. 자산의 급상승은 이러한 자본으로 경제를 부양하려는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특이 케이스가 아니면, 인플레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돈을 풀었거나, 경제 규모가 커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경제 규모가 급격히 확장될 확률이 적다면, 인플레는 천천히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산시장의 차익실현의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가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차익만을 바라보고 무리해서 레버리지를 당겨 갭투자를 하는 이들이 위험한 이유이다. 차라리 저금리 상황에서 고정금리 대출을 통해 수익형에 투자하고, 그것을 통해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이 현재로서는 훨씬 더 유리한 투자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경기가 나빠지면 수익형 투자 역시 공실 등의 리스크를 떠안게 되겠지만, 변수 없는 투자가 어디있으랴, 이 정도는 투자자가 알아서 판단하고 극복해야 할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책속의 한 줄, 한 문장 (발췌하며 읽기)


프롤로그


제1장. 빚은 어쩌다 우리 삶의 필수가 되었나?

- "부동산은 우리 가계의 핵심 자산이기 때문에 저는 '드디어 집이 팔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가장 고맙고 반갑다." 고 했다. 집이 팔리기 시작한 이유는 우리 경기가 호황을 맞고,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서가 아니다. 바로 치솟는 전세 값에 지쳐서 거액의 빚을 떠안고 집을 사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P.24 (라기 보다는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 뿐이다. 인플레이션을 헷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곧 실질적인 자산의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채를 끌어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저금리 상황이다. 최경환 총리시절도 그랬다. 부채의 부담이 덜하다고 느껴지니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도 쉽게 빌리는 상황이 반복되어 유동성 확대를 가속화하게 된다)

- 게다가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추진한 정책이 LTV와 DTI 규제완화였다. (중략) 최 부총리가 이 정책을 밀어붙였을 때 누구나 가계 빚이 크게 늘 것이라고 우려했고, 현실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사상 최대의 가계 부채 증가로 나타났다. (중략) 신용카드 한도를 거의 다 쓴 사람에게 은행에서 한도를 늘려 줘 놓고서는 '저희 은행은 고객들께 카드를 더 긁으라고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격이다. P.24

- 주택담보대출은 (중략) 장기적 속성이 강하다. 긴 시간의 현금흐름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고 신중하게 거액의 대출을 받는 이들은 정말 드물다. P.30

- 아무리 정부의 정책금융이라고 해도 결국 빚은 빚일 뿐이다. (중략) 이자부담은 줄어들지만 빚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이자가 줄어든 것이다. 이 상품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줄어든 이자 부담을 원금을 갚는데 최대한 활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줄어든 이자를 소비로 돌린다. P.33

- 주택연금은 '집값이 오르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연금을 지급했다가 소유주 부부가 모두 세상을 떠나면 집을 처분하는데 그때까지 받은 연금액보다 집값이 낮으면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P.36

- 흔히 부채에 관해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만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추궁하지만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 즉 상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준 책임에 대해서는 별로 묻지 않는다. P.37

- 묻지마 대출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곳이 부동산 시장이고,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가 중도금 대출, 흔히 집단 대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P.38 (보증공사 및 은행의 집단대출 심사를 강화해버리자 이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오히려 로또분양을 양산해냈다. 강남권을 위시해서는 후분양제가 도입되려는 움직임이다. 선분양제의 폐혜가 시장교란을 만들어왔었던 것일까)

-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최대한 활용해서 똑똑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략) 결론부터 말하자면 '헛똑똑이 소비'다. 알고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고, 나도 모르게 빚을 지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다. P.41

- 30대에 부채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물론 결혼과 자녀다. 20대의 빚도 완전히 털지 못했는데 가정과 자녀를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게다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는 부채의 폭을 더더욱 키운다. P.47 (대출 검토의 시작은 현금흐름의 계산부터 시작한다)

- 부자들은 주택담보대출을 받더라도 이유가 다르다. (중략) 부자들은 더 돈을 벌 목적으로 대출을 받는 반면, 서민들은 당장 생계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 실정이 잘 나타난다. P.61 (대출의 사용처가 회수 가능한 '자산불리기'인지, 휘발되는 '소비'인지가 중요하다. 소비수준을 감당할 소득수준을 가지거나, 소득수준에 맞춘 소비를 하거나)

- 아직까지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위기는 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기는 이미 우리에게 와 있다. 과거에는 집값이 뛰고 부동산 거품이 끼면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돈이 많아지고, 소비가 늘어나서 경기가 호황을 누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정부도 경기 부양을 위한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으로 부동산 부양책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집값이 뛰어도 여전히 경기 전반은 차갑기만 하고, 소비 심리도 살아나지 못한다. 오히려 막대한 가계 부채에 눌려서 가계는 소비를 줄이는 판이다. P.67 (부의 효과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줄이고 있다. 극복하는 방법은 소득을 늘리는 것, 즉 진짜 경기가 좋아지는 것 뿐이다)

-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설령 세계 경기가 나아지더라도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이미 구조적으로 어렵다. 오히려 저성장 국면은 장기화되고 금리는 올라서 가계 부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도처에 깔려있는 실정이다. P.76

- 한국 경제는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섰다. 정부의 부양책으로 잠깐 경기가 좋아질 수도 있고,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자금이 어디론가 쏠리면 부동산이든 주식 시장이든 불이 붙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의 밑바탕이 허약한 상태에서 타오르는 투기의 불꽃은 잠깐에 불과하고 꺼지면 잿더미만 남는다. P,81


제2장. 나를 빚지게 만드는 것들을 파악하라

- (신용의 속성은 곧 부채) 예금으로는 신용등급을 올리려고 해봤자 잘해봐야 3등급에서 4등급이다. 결국 대출로 신용 등급이 결정된다. 은행 직원들도 은근히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카드를 만들라고 권한다. (중략) 은행도 나름대로 논리는 있다. 신용이라는 것은 예금을 얼마나 넣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빌린 돈을 잘 갚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출이나 신용카드 결제 실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P.89 (대출권하는 은행, 할부시스템, 리볼빙, 소비권장사회, 핀테크로 소비감각x)

-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 돈을 찍어 내는 데 필요한 비용도 사라지고 국가에서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통제하기가 쉬워진다. 게다가 국가나 기업은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기를 원한다. 소비를 많이 해야 내수 경제도 살고 경제성장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현금 없는 사회, 핀테크 사회는 소비를 편리하게 하므로 더 많은 소비를 일으키는 데 효과적이다. (중략) 돈을 쓸 때 느껴지는 마음의 장벽을 어떻게든 없애는 것이 관건이다. P.98 (통화승수가 올라간다는 것, 즉 화폐의 통용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통화량의 증대를 의미하고, 곧 경제규모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완벽한 신용사회가 되면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높아진다. 다만 개인의 입장에서 소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질 수 있다. 과소비가 조장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소비를 절제하려면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가상보다는 실물과 가깝게 지내라. 핀테크보다는 그나마 신용카드가 낫고,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가 낫고, 체크카드보다는 현금이 훨씬 낫다. P.99

-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어렵게 취직을 해도 오래 못 가는 이유 중에 하나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면, 성장해서도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헤매기 쉽다. 느리고 답답해 보여도 어려서부터 스스로 미래를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통해서 참을성 있게 자녀가 스스로 미래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도록 돕는 자세가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P.143


제3장. 빚지는 습관을 개선하라

- 무작정 안 쓰는 식으로 해결하려면 지속하기도 힘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빚이 별로 줄지 않아서 좌절할 수 있다. 따라서 재무 전문가에게 제대로 진단을 받고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부채를 줄여야 한다. P.168

(1) 부채 현황 리스트를 작성하라 : 정확한 부채 리스트가 작성이 안 되면 빚을 갚는 시간은 훨씬 길어진다.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내 부채가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고 그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 다음 얼마를 벌고 얼마를 지출하며, 빚을 털어 내기 위해서는 한 달에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 과연 현재의 수입 지출 구조로 가능한지 파악해야 한다. 한편으론 왜 빚을 지게 되었는지, 왜 빚이 이렇게까지 늘어났는지를 곰곰이 되짚어 보아야 한다. P.172

(2) 부채의 유형별로 나눠라 

(3) 알맞은 출구전략을 찾아라  일단 사전 채무조정을 통해 악성 부채를 좀 더 나은 조건의 부채로 바꾸어야 한다. (중략) 이것으로 해결이 어렵다면 신용회복이나 부채 청산을 위한 좀 더 강도 높은 제도를 활용해야 할 수도 있다. 첫째,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개인워크아웃. 둘째, 국민행복기금의 채무조정 지원.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한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 면책이다. P.183

(4) 빚은 한 사람에게 모으고, 한 건으로 모아라 : 여러 사람에게 있는 빚은 한 사람에게, 여러 건으로 되어있는 빚은 한 건으로 몰아라. P.184

(5) 무조건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욕구를 분출시켜야 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예산을 짜는 일은 필수다. P.212

- 빚지지 않는 재무 시스템을 만드는 6단계 전략 : 1) 월급만으로 한 달 산다(기존 이월된 신용카드 등의 지출액을 리셋하는 과정) 2) 내가 얼마 쓰는 지 알고 쓴다(수입과 지출의 균형점 파악) 3) 통장 쪼개기로 목돈만들기(단/중/장기별 쓰임새에 맞는 돈 모으기) 4) 월급통장 0원으로 만들기(3단계의 구성에 따라 자동으로 월급이 들어가도록 하기) 5) 매달 점검 6) 당장 실행 P.213

- 저축성 보험은 장기로, 보장성 보험은 중기로 P.246 (Toss 앱을 활용하면 가입된 보험, 또래에 비해 과잉보험인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제4장. 재무 체질 개선으로 노후파산을 막아라

- 노후를 위해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 이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노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무엇을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 다음에는 자기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재테크 문제는 그 다음이다. P.256

- 지출을 통제할 때 숫자부터 줄일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중략) 먼저 생각할 것은 ‘얼마’가 아니라 ‘어떻게’다. 우리는 삶을 위해 돈을 쓴다. 소비를 통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누리는지, 얻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P.266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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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의 현금흐름을 파악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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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부동산 인테리어 - 독일병정의 월세 더 받는
김종민 지음 / 스마트북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어렸을 적에 '작은 차이가 명품을 가른다'라는 문구의 필립스 광고가 있었다. 살면서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 문구가 정말 맞구나 싶을 때가 많다. 서비스의 제공자와 수용자, 공급자와 수요자, 갑과 을 등의 대부분의 경제활동의 관계는 '거래'의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그런 경우에 합의점은 '가격'이나 '시간'이나 '효율' 등의 적정선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이 때 당사자간 '만족'의 여부가 중요한데, 이 만족이라는 것은 일정한 '기대'에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의 가격을 지불했으니 이정도 수준은 되겠지', '이 정도 시간이 들어갔으니 이 정도 성과는 되겠지' 등의 기대감 말이다. 제공되어지는(혹은 제공할 수 있는) 성과가 기대감보다 클 때 당사자는 만족하게 되고, 그 만족의 여부로 일이 성사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기대감이 하나의 임계점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작은 차이가 명품을 가른다'는 문구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누군가는 자기만의 필살기를 개발하려는 차별화에 힘쓸수도 있고, 누군가는 효율성면에서 따라올 수 없을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디테일에 더 신경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은 차이'가 아주 크게 결과로 나타나는 시장이 바로 주택임대시장이다. 재테크의 방법으로 주택임대업을 일정부분 병행해보니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수익률이었다. 개인적으로 나의 부동산 포트폴리오는 차익형투자가 절반이고 수익형투자가 절반인 상황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특히나 수익형 부분에서는 '수익률'이 투자 성패를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수익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투자금과 공실여부이다. 보통 투자자들이 투자를 고민할 때 대상물건에 대한 개략적인 임대소득에 대한 계산은 마치고 들어가게 된다. 그럼 결국 임대소득은 아주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얼마나 싸게 잘 사서, 공실없이 소득을 얻느냐가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고민이 될 수 있다. 이때 인테리어 리모델링은 경우에 따라서 아주 훌륭한 '작은 차이'로 작용한다. 투자 판단 과정에서부터 인테리어 비용을 이해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진행한다면 전체 투자금을 줄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공실리스크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익형 주택을 매수할 때 보통 거리가 멀어서 관리하기 힘든 지역이라면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집을 매수하는 것을 선호하며, 인테리어가 되어있지 않은 구주택을 매수하게 되는 경우 최소한 화장실과 기본적인 도배, 장판, 전등 정도는 교체를 하는 편이고 여력이 된다면 조금 더 비용을 들어서라도 거주하실 분의 편의를 생각해서 최대한 깨끗하게 수리해둔다.

주택임대시장에 국한해서만 아니라, 실거주를 위한 주택의 영역에서도 '작은 차이'로서의 인테리어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임대와 마찬가지로 비용절감의 측면과 더불어 개인의 주거만족도에 관련해서도 그렇다. 실제로 2016년 나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실거주집을 매수하면서 샷시를 제외한 나머지 전체에 대해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었다. 소유로 가지는 첫 내집이라 마음만은 최고급으로 꾸며놓고 살고 싶었지만 역시나 돈이 부족했고,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리모델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성비였다. 총 투입가능 금액 상한선을 정해두고 접근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포기할 수 있는 부분과 포기해야만 하는 부분이 나뉘어졌다. 두번째 기준은, 기본에 충실한 심플함이었다. 다양한 장식보다는 무던한 컬러감으로 조화있는 배경을 원했고, 넓은 공간감과 높아보이는 천장을 원했다. 몇 가지 기준을 정한 뒤에 그것을 예산에 맞추려고 했다. 문제는 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인테리어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던 나는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을 진행했다. 아는 바가 없으니 해결방안 자체가 부실했고, 한정된 예산과 조건들 때문에 선택지는 더 좁혀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움까지 느꼈던 기억이다.



그러다가 다행히도 관련 업종에 종사하시는 친한 전문가 형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직접 시공을 하지는 않지만 비용을 절감해가며 최대한 만족스러운 내 보금자리를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잠을 줄여가며 검색을 하고 공부를 했다. 모르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지인 형님께 여쭤보면서 그렇게 나는 인테리어에 대한 전반적인 절차와 과정을 익혀갈 수 있었다. 먼저 인테리어가 필요한 항목들을 열거해두고, 공사에 필요한 시간을 계획하고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각 항목에 대한 견적을 받으러 다녔는데 지인의 조언으로 3~4곳의 업체에 문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1곳은 아파트 근처, 1곳은 다른 지인의 추천, 1곳은 인터넷 검색, 그리고 나머지 1곳이 <똑똑한 부동산 인테리어> 책을 쓰신 독일병정님의 인테리어 업체였다. 항목별로 상세조건을 조율해가며 나의 조건에 부합하는 업체를 선정하려고 했다. 퀄리티를 고려하면 독일병정님의 업체를 선정하고 싶었으나, 결국 예산의 문제로 지인 추천의 업체를 선정하였다. 그 중에서도 도저히 비용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베란다 바이오세라믹'을 비롯한 몇몇 부분과, 친한 형님이 리바트에 근무하셔서 직원가 및 특가로 싸게 구매할 수 있었던 '싱크대, 붙박이장' 등은 제외하는 것으로 하였고, 최대한 기존의 것을 살려서 리모델링을 하는 것으로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주변 이웃들이 와서 구경할 정도로 리모델링 공사는 잘 마무리되었고, 비용 역시 30평대 아파트에 1800만원 이하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 공사와 관련해서는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이 글은 책의 리뷰에 관한 것이니 기회가 된다면 다른 글에서 언급하기로 하자.



그 때 견적을 의뢰했던 인연도 인연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경험이 유독 많이 떠올랐던 건, 만약 실거주 리모델링 공사를 하던 때나 혹은 임대용 투자물건을 고민했을 때 이 책을 읽은 후였다면, 과연 고민을 적게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그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테리어 외 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관한 고찰이나 저자의 경험담도 이 책에 실려있다. 개인적으로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자주 참고하긴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통하기 보다는 독일병정님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kjm2336)를 직접 방문하여 여러 포스팅을 참고 하시는 게 더 좋은 방법일 듯 싶다. 대신 이 책을 통해서는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셀프 리모델링자를 위한 전반적인 설명과 상세예시' 만이라도 얻어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특히 그 때의 나처럼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인테리어를 해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그리고 이왕이면 싸고 좋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부분은 정말 피가되고 살이되는 내용이 될 것이다. 꼭 셀프 인테리어가 아니더라도 인테리어 공사를 앞두고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하고, 어떤 항목에 대하여 어떤 브랜드를 두고 고민해야하는지 조차 몰라서 많은 시간을 공부했던 경험을 빚대어볼 때, 액기스만 전달해주는 이 책이 참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큰 틀을 파악한 이후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이기에 공사와 관련된 큰 틀을 숙지하고 접근하면 비용도 상당부분 절감할 수 있을 뿐더러,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항목별 브랜드와 가격선을 참고하면 공사 과정에서의 협상주도권 역시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디자인 적인 감각이 부족하더라도 여러 예시 사진들을 통한 컬러톤과 디자인을 참고할 수 있으며, 친절하게도 책에서는 디자인 컨셉과 컬러를 선택할 때의 순서와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조율해가면서 더 높은 효율성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집은 기본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같은 가격에 비슷한 위치라면, 누구든 결국 더 깨끗하고 더 살기좋게 개량된 집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더욱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고민이 필수적이다. 이제 주택임대시장에서 공실을 없애기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리모델링은 이제 거의 필수사항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실거주를 위한 사람에게도 효율성있는 리모델링은 집을 선택하는 것만큼 거주자의 만족도를 채워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작지만 큰 차이. 똑똑한 인테리어를 한다는 것은 마치 국수 위에 맛있는 고명을 올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똑똑한 부동산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서는, 똑똑하게 부동산 투자를 생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독일병정님의 <똑똑한 부동산 인테리어>가 효율성있는 부동산 투자를 고민하는 현명한 투자자들을 위한 현실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책 속의 한 줄, 한 문장 (발췌하며 읽기)


프롤로그
- 똑똑한 부동산 인테리어 투자란 (중략) 주택 매수 비용은 그냥 집값이 아니라, '집값+인테리어비용'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매수시 신중을 기할 줄 아는 것이다. 물론 그 집이 입지가 좋고 미래 가치가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될 때는, 인테리어 비용이 더 든다 한들 문제가 안 된다. P.12
- 모든 인테리어의 공정을 내 손으로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공부하고 어느 정도 스스로 할 줄 알면, 내가 사는 집은 물론 임대한 집을 고치고 꾸미는 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P.15

Part 1. 독일병정의 돈 되는 부동산 이야기
- 똑똑한 부동산 투자란 결국 부동산과 인테리어 둘 다를 공부하고나서 집을 매수하며, 임대를 놓을 경우 임대사업자로서의 기본을 갖추는 것이다. P.33
- 오래된 아파트 매수시 유의점 : 난방배관(누수포함) / 욕실UBR / 창호 / 문과 문틀
- 오래된 빌라 매수시 유의점 : 보일러교체유무 / 외벽단열상태 / 난방배관(누수포함) / 욕실누수 / 향과 도로 소음 P.36
- 좋은집 체크리스트 P.37
- 부동산의 공급과 수요 간 차이에서 가수요가 붙는 것이다. 가수요는 수요의 욕구가 아닌 이익 개념의 욕구다. 즉 투자를 통해 이익을 보기 위한 욕구다. 가수요는 잠시 붐을 일으키지만 경기 변동과 위기 속에서 무너져왔다. P.50
- 가수요가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가격 자체를 왜곡시킨다. 특히 서울, 부산, 세종시 등 신규분양시장의 가수요 변화는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P.51

Part 2. 월세 더 받는 똑똑한 인테리어 투자
- 오래된 주택의 누수 문제는 정말 흔해서 (중략) 떄로 보험상품을 들라고 권한다. (중략)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 실거주 집의 문제 보상 / 임대인배상책임보험 : 임대 준 집의 문제 보상 P.68
- 인테리어 업체 선정 노하우 : 1)상세한견적서 2)고품질제품취급업체 3)기술력검증업체 4)선택권을 고객에게 주는 업체 P.70
- 년식별 30평대 기준 대략적 공사비용 기준과 항목별 브랜드 열거 P.76

Part 3. 현장 전문가가 알려주는 알쓸한 인테리어
- 마이너스분양주택 리모델링 / 실거주 리모델링 / 임대용 리모델링의 상황별 예시 및 Tip

Part 4. 누구나 쉽게 하는 셀프인테리어
- 집의 구조 및 인테리어에 대해 공부하면 좋은 점 : 매수시 하자나 문제점 발견 및 대처 용이 / 매수 전 인테리어 견적 가늠 / 개별 인테리어 진행시 합리적 계획 및 진행 / 효율적 임대 관리 / 셀프인테리어로 효율성 극대화 P.191
- 셀프인테리어 주의점 : 기본인테리어 공정(철거>목공>타일>필름페인트>도배>전기>바닥>가구) / 공정 관리 / 공사 업체 조율 / 자재 수급 / 기술자 관리 P.192
- 셀프인테리어 진행 방법 : 공정나누기(설비/목공/도배바닥/가구) P.193

Part 5. 독일병정의 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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