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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ㅣ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원제는 커다란 순무, 어려운 아보카도지만 만약 내가 제목을 짓는다면 하루키가 좋아하는 달리기와 고양이가 합쳐진 궁극의 조깅코스, 장어집 고양이라고 짓고 싶은데 전혀 연관성이 없다. 뭔가 상큼하게 한국판이 제목을 잘 뽑은거 같지만 바다표범의 키스는 읽고나니 니글니글하다.
제목은 수필집에 있는 제목들이다. 원제 역시 마찬가지로 앙앙에서 연재된 글 52편으로 이루어졌다. 전편 무라카미 라디오는 까치에서 나온 책으로 삽화가 빠져있다. 읽을때는 허전함을 느낀다거나 그런건 없었지만 좋아했던 수필집이라 닳도록 읽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읽고 있으면 하루키와 수다떤다는 느낌이 있다. 언제가 하루키 수필집에서 뜨게질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한적이 있는데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글이 짧기 때문에 읽는 상대도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건지 내가 하루키를 좋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고나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맞아 그래그래, 하면서 스스로 맞장구를 치거나 아 그렇구나, 공감하거나 심각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 미덕이다.
아무튼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었을때 삽화 없이 읽었지만 이번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는 삽화가 그대로 있어 어쩐지 무라카미 라디오 시즌 1도 삽화가 있는 상태에서 읽고 싶어, 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처음 삽화를 접했을 때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에 익숙해져서 영 적응이 안됐다. 그리고 조금은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동판화로 작업을 한 것이라고 한다. 동판화라 인식하고 다시 보니 신기하고 예술품같은 느낌이 들고 여백의 미가 느껴져 좋았다.
책의 내용은 하루키가 애정을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만 써서인지 힘도 많이 들어가있지 않고(하긴 에세이인데 힘을 주면 쓸 필요는 없다) 읽는 사람도 힘을 주며 읽지 않을정도의 말랑말랑함이 있다. 책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 그밖에 작가나 기타등등-
게다가 책 말미에는 코멘트같은 것이 있는데 그 코멘트 중에 하루키 핸드폰 고리가 스타벅스 미니컵 모양 스트랩인데 신칸센에서 두고 내렸다는 코멘트가 있는데 그 글을 읽고 언제가 동생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는데 스타벅스에서 줬다는 스타벅스 미니컵 모양의 핸드폰고리를 달라고 해서 내 핸드폰고리에 달아놓았다. 빠심!
그 코멘트 위에 있는 글인데 '이제 그만둬버릴까', 라는 내용은 비틀즈의 멤버들이 레코드사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툇짜를 맞았는데 코메디 음반을 주 업무로 하는데 조지 마틴은 '좀 거칠긴 하지만 묘하게 마음을 끄는 데가 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계약을 한다.
하루키 역시 '당신 작품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지만 뭐 한번 해보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비틀즈와 계약한 사람도 그렇고 하루키의 작품을 뽑은 심사위원도 그렇고 문제는 있지만 역시 중요한것은 어떻게 끄는 가?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요즘 내 화두와 맞물려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건 비틀즈는 멤버들은 자신들과 계약할 사람들을 계속 찾아다녔다는 것과 하루키는 써서 냈다는 것일 것이다. 결국 노력하자라는 평범한 생각으로 마무리를 졌지만- 어째서 이런 글에 코멘트로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모든 글들이 그래서 오히려 뚱단지 같아 읽기에 재미가 더해진다. 책을 좋아했다 라는 에세이 말미에는 제법 진지하게 글을 썼지만 말미에는 야쿠르트의 다나카 히로야스가 방망이를 잡는 법은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 돌리는 것 같더군요로 마무리. 언제가 임창용 이야기도 해줄까?
비채에서는 이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냈는데 팬으로서는 그런 잡문집이 상당히 기쁘고 좋았지만 두께감 덕분에 들고다니면서 읽기는 불편하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두께도 적당하고 하드커버라 함부로 들고다녀도 겉 표지가 구겨질 염려도 없고 딱 좋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긴 이야기보다는 짤막한 이야기가 적당한데 지하철에서도 읽기 좋은 수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