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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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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흥미진진한 스릴러이기도 하고, 치졸한(?) 남자의 실패한 연애담이기도 하며,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욕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또 어떤 측면에서는 캐럴라인에 대한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어쨌든 읽기 시작하면 쉽게 놓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이며,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처음으로 되돌아와 다시 읽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는데, 물론 앞에서 나열한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이방인들-오, 스트레인저-에 대한 의미심장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는 종류의 공포란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집단으로 전염되는 걸까? 고교 시절, 친구와 어둑한 길을 가던 중 왠지 장난을 치고 싶은 짖궂은 마음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길이 실제로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스산한 계절이었고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는데, 내가 '뱀이다, 뱀!'하고 소리를 질렀다. (뱀이 나올리 없는 대단지 아파트 사잇길이었다) 친구는 정말로 놀랐고, 나뭇가지를 진짜 뱀인줄 알고 한 번 더 놀랐다. 나는 나뭇가지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친구가 정말로 놀랐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덩달아 진짜 뱀 아니야? 생각할 만큼 같이 놀랐다. 친구는 나뭇가지를 발로 건드려 보고, 찔러 보고, 여러 차례 확인한 다음에야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내가 장난을 쳐놓고 순간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는 마법은 무엇때문인지 몰라 한참을 어리둥절해 했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기억은 누구가 갖고 있으리라.

 

<리틀 스트레인저>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으로, 자신들 소유의 대저택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에 얽힌 사건들로 진행된다. 이야기는 화자인 닥터 패러데이가 대저택 헌드레즈홀의 유일한 하녀 베티를 진찰하기 위해 그곳에 들르게 되었던 때에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베티는 닥터 패러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선생님, 이 집은 제대로 된 집 같지가 않아요! 너무 크다고요! 어딜 가려고 해도 1마일은 족히 걸어야 해요. 게다가 너무 조용해서 소름이 쫙 끼쳐요. 낮에는 그래도 괜찮아요, 일도 하고 베이즐리 아주머니도 계시니까. 하지만 밤에는, 저 혼자 있단 말이에요. 쥐죽은듯 조용하니 아무 소리도 안 나고! 무서운 꿈도 꾸고...... 그리고 그것만이라면 어떻게든 참겠는데, 마님이랑 아가씨랑 도련님이 자꾸 불러서 저 뒤쭉의 낡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고요. 모퉁이도 잔뜩 있는데, 거길 돌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는지 선생님은 모르세요. 어떤 때는 이렇게 벌벌 떨다 꼴까닥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27p

 

베티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소녀로 자신의 두려움을 의사에게, 또 베이즐리 아주머니에게, 전쟁을 겪고 돌아온 귀족 가문의 도련님 로더릭에게, 또 장녀 캐럴라인에게 털어놓았을 것이다. 꼭 이 집에 무엇이 있는 것 같다고. 그때까지 헌드레즈홀에 살던 식구들은 헌드레즈홀을 그런식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베티가 만들어낸 공포의 작은 불씨는 전후의 상처와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재정 상태가 엉망인 대저택을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로더릭에게 가 닿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헌드레즈 홀에선 우연히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이를 로더릭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되고 우연과 우연이 겹쳐지며 공포의 불씨는 점점 커져만 간다. (물론, 이 우연들 속에는 베티의 말을 이용한 누군가의 '의도'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절대 그런 식으로 경계를 풀어버리지 않았어요. 이제 놈이 올 때면 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쭉 경계해요. 대부분의 날은 괜찮아요. 놈이 오지 않는 날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나를 놀래고 괴롭히는 걸 좋아해요. 그냥 앙심을 품은 교활한 어린애 같아요. 나를 노리고 함정을 파는 거죠. 지난번엔 내 방문을 열어놓는 바람에 거기 부딪쳐 코피가 났어요. 서류를 이리저리 옮기는가 하면, 내가 다니는 길에 뭔가를 슬쩍 밀어놓죠. 결국 나는 그런 것에 걸려 넘어져 목이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나한테 뭘 바라는 거라면 괜찮아요. 내가 그걸 내 방에 붙잡아두는 한 그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현재로선 그게 가장 중대한 사안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감염의 근원이 우리 어머니와 누이에게 닿지 않도록 하는 것." -243p

 

로더릭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이상하고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은 실제로 로더릭이 저택을 떠나고 나자 대저택 곳곳에서, 또 정원에서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 이상한 일, 그러니까 그놈을 '공포'로 바꿔 읽어 보면 흥미로운 문장이 된다. 그놈은 대저택에 사는 로더릭과 그의 누나 캐럴라인,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에어즈 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을 콕콕 짚어 건드리며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공포를, 말로 형용하지 않았던 공포를 입밖으로 꺼내놓는 순간 이상한 마법이 시작된다.

 

그녀의 표정이 다시 처연해졌다. "하는 소리야 늘 똑같지. 어디 있어요? 왜 안 오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에어즈 부인은 그 말을 흉내내듯 속삭였다. 그 속삭임은 그녀가 내뱉은 흐릿한 입김과 함께 한동안 허공에 머무는 듯했다. 그러다 적막에 삼켜져 사라졌다.

나는 기가 막혀 잠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심지어 조그만 채마밭이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땅뙈기가 위험으로 가득찬 것만 같았다. 단 하나의 비좁은 출구 역시 또하나의 숨막히는 외딴 공간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뭔가 정원 안에 우리와 함께 있는 듯한, 뭔가가 뽀득뽀득 새하얀 눈을 밟고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그것이, 그게 무엇이든 어쩐지 낯익은 듯한 기괴한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리를 향한 그 수줍은 발걸음에는 돌아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꼭 어린애들이 술래잡기를 하듯 뭔가가 내 등을 때릴 것만 같아서 등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560p

 

공포는 대저택이라는 공간과 함께 살아숨쉬며 대저택과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만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방인들, 베티와 닥터 패러데이는 모든 사건이 끝난 후에 아무렇지 않게도(!) 대저택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들을 추억한다. 공포의 씨앗을 뿌린 걸 끝까지 모르는 자와 그걸 이용한 자는 살아남아 대저택 근처를 서성이거나 대저택 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 진짜 공포는, 바로 이런 결말에 있다. 살아남은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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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관장 2015-12-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보이지만,
언급해주신 시작과 끝의 이방인들에 의미를 주신것도 납득이 되네요...

공포의 씨앗(베티) -> 공포의 이용(패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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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무너지는 에어즈 가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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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고딕 호러?로 연상되는 이상한 현상과 캐럴라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지만....

기린 2016-01-11 22: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상한 현상에 대한 의문 때문에 책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