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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순간에도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에세이는 잘 안 읽었다. 에세이는 '소설처럼 심장 뛰는 이야기도 없고, 시집처럼 꼬리가 긴 여운도 없으며, 전공서적처럼 확실한 정보도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에세이 책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런 내 예상에 적중했다.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흥미로운 스토리도 없었고, 뇌에 주름이 질만한 지식도 없었다.
그런데, 그래서 마음이 쉬어졌다. 책을 이어서 읽을 때 앞 스토리를 떠올려야 하는 부담도 없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또 다른 정보를 집어넣느라 머리에 쥐가 나지 않아도 되었다.
자꾸 펴보고 싶었다. 마음이 그동안 초조하고 불안했구나, 쉬고 싶었구나, 하는 사실을 이 책을 만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이 책에는 아름다운 형용사로 꾸며진 말이 많다. 그래서 호흡도 느리고 읽는 내내 감정이 평화롭다. 더 이상 노래 부를 힘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 추천한다. 가끔씩 우리에겐 커피 한 잔과 함께 에세이집의 위로를 마시는 시간이 필요하다.
● 잘 받고 잘 주기
나는 도움 받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번거로워지는 것 같아 불편하고, 그것이 민폐와 빚으로 느껴져 채무자가 된 것만 같다. 막상 상대방은 내게 베푼 것을 잊어버렸는데도, 나는 그 도움을 돌려주기 전까지 마음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갑갑하고 신경 쓰였다.
그런데 내 그런 태도가 상대방을 더 불편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 주는 것을 뿌듯해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선 그런 기분을 느낄 기회를 빼앗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종종 상대방의 기쁨을 훼손시켰다. 받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주는 것도 잘하는 법. 잘 받고 잘 주면 되는 것을 나는 지나치게 민감했다. 잘 받고 잘 주면 되는 것을, 그 간단한 순리를 익히는 일이 왜 그리 어려웠던지. (p22)
● 최선을 다 했어
준비한 일이 수포로 돌아간 것만 같을 때 우린 좌절한다. 특히나 그 일이 ‘최선을 다한 것’이라면 말로 다하지 못할 상실감에 빠진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나의 최선과 다른 사람의 최선이 만나 부딪친 자리에서 때론 꽃이 피고, 때론 눈물도 자란다. (p101) 그도, 나도 최선을 다했고 이번엔 그의 최선에서 꽃이 핀 것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내가 옳을 땐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니 어리석은 사람이니 굳이 나누지 않는다. 그저 괴로운 사람, 괴롭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 (p60) 해결방법 없이 그저 괴로울 뿐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 ‘감사’의 감각
위기는 대부분 ‘감사하는 힘’을 잃었을 때 시작됐다. (p132) 내 집 한 칸을 소원하다가 막상 생기면 더 큰 평수를 원한다. … 행복의 정규직이 되지 못한 건 누가 방해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한 결과였다. 행복에 대해 겸허해지기로 했다. 드릴 기도라곤 오직 “감사합니다”뿐임을 깨닫자 더 자주 행복해졌다. (p242-243)
행복의 기준은 원래 바뀐다. 감사하는 마음은 금세 잊힌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되살려야 하는 것은 감사의 감각이다. 불공평하다고 끊임없이 투덜대고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스스로를 망가뜨릴 뿐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난롯불 같은 에세이를 만난 것에 감사하다.
● 느낌이 흘러가고 있어
느낌은 흘러간다. 그런데도 한순간의 느낌에 속아 나를 놓쳐 버린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 느낌에도 분명 생로병사가 있으니 현재의 느낌 속으로 충분히 육박해 들어가 느낌의 한 생애를 이해할 것. (p142-143)
그럼에도 괴로움이 가시지 않는다면 느낌의 한 생애를 이해하자. 느낌도 시간 속에서 생로병사를 겪는다. 속 아픈 괴로움도 주기에 맞춰 곧 옅어질 테니, ‘너도 그렇게 흘러가겠구나.’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럼 모든 상황에서 여유가 생기고 시선이 성숙해진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 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그래도 다시 그 희망을 좇으며 우리 그렇게 살았다. (p11)
그러니 우리 또 그렇게 살아보자. 최선을 다했다가 지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보기도 하면서, 이런 편안한 책을 읽으며 위로와 감사의 감각을 느껴보기도 하면서.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세요.☺
+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 전설(임수정)이 한세주(유아인)에게 전달했다! 내가 읽었던 책이라 너무 반가웠다 ㅎㅎ 더 많은 사람을 위로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