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이 세계를 걷는 나만의 방식
한수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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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은 별 이유가 없어서일 수 있다. 그냥 그 순간 내가 마음에 안 든 것이다. 그러니 연애가 잘 안 되든 사랑에 실패하든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 어딘가에는 내가 좋아하고, 또 나를 좋아해줄 남자(여자)가 있을 거라는 말씀.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말씀.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저 시즌오프 세일을 노리며 다 늘어나고 보풀이 핀 옷으로 버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 바로 이 말씀이다. (p53)

  

      에세이는 간단하고 재미있으면서, 우리가 현재 그리고 미래에까지 새겨놓아야 할 것들을 담고 있다. 초반에는 말투나 표현들이 다소 차갑거나 거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뒤로 갈수록 우리는 그 점에 매료되어 에세이를 읽어나가게 된다.

      삶의 중요한 것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도, 이 책은 그 일을 참 쉽게 하고 있었다.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에세이를 읽으면, 가끔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하고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자신의 경험과 배움을 유쾌하게 풀어냈고, 그 유쾌함 덕분에 나는 특별한 거부감 없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다. 유머러스한 풀이는 그저 아 이런 경험도 해봤구나. 괜찮다!’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매사를 즐겼던 이 책의 저자야말로, 매순간을 깨달음과 소중한 경험으로 바라보는 이 작가님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승리자 같았다. 내가 보기에 한수희 작가님의 삶은 누구나 질투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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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나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 나를 거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겨우 기어 나오면 우리는 아주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제 바닥이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의 감정을 헤아리고,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게 된다. 상대를 질식시키지 않으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는, 적절한 거리 말이다. (p61-62)

 

      처음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를 기억한다. 그때 난 같은 사람 사이에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무척 외롭고 서운했었다. 마치 누구와도 남남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모두 각자 다른 경험과 생각, 취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다름을 경험으로 깨닫고 나서야 나는 사람 간 거리두기법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법칙을 이해한 뒤부터, 나는 사람과의 줄다리기를 계속 하고 있다. 너무 가까워지면 예의가 없어지거나 사생활이 부서졌고 너무 멀어지면 관계의 줄이 툭 끊어져버렸다. 내가 한 친구에게 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상한다.’고 토로했을 때, 그 친구는 그것이 인류 평생의 숙제라고 답했다. 공감이 된다. 아마 사람들과의 적정선을 지키는 건 내 인생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다. ‘거리 두기에 실패했을 때의 감정은 바닥으로 추락한 것과 비슷하지만 그렇게 나는 본능적으로, 지식적으로 거리 두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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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다 보면 나보다 훨씬 더 진지한 자세로 달리는 진짜 러너들이 휙휙 추월한다. 그럴 때 5초 정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만 5초 후면 회복된다. 나는 누구보다 잘 달리기 위해서 달리는 게 아니니까.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거니까. (p133)

 

      세계일주가 아니라 단지 아시아를 여행하고 싶어서 돈을 벌고,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감명과 배움을 얻기 위해 독서를 한다. 한국 최고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글을 쓰는 게 좋아서 계속 쓴다. 1등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1등만을 쳐주는 이 사회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단지 달리면 된다. 뒤에 있던 누군가가 앞서 달려도 나는 내 달리기를 즐기면 그만이다. 나는 달리고 싶어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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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처음에 그린 원에서 비껴 나고 있었다는 것을.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며 걷고 있었다는 것을. (p10)

 

      이 책은 빙빙 원을 그리며 같은 자리만을 도는 것 같을 때 펴보자. 용기내서 딱 이 책의 저자만큼 하는 것도 좋겠다. 훌쩍 혼자 인도로 떠나고, 한적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하기 싫은 일을 그만 두는 것. 그게 무엇이든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두려움이 드리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원이 아니라 나선으로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원을 그리며 걸은 적이 없다. 적어도, 소수점이 찍힌 아주 작은 각도로라도, 우리는 나선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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